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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오랜 무명 생활을 거치다 2010년 나홍진 감독의 '황해'를 기점으로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변호인', '타짜: 신의 손', '아수라'에서 강렬한 악역 및 엘리트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눈도장을 단번에 받았다. 그래서 배우 곽도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엘리트', '악역'인 이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물론, 곽도원은 악역에만 능통한 건 아니었다. '곡성'에서 단독주연을 맡으며 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순경으로 모두를 숨죽이게 만드는가 하면, 지난해 '아수라' 출연진들과 함께 '무한도전'에 출연해 치명적인 매력으로 대중에 호감 이미지도 쌓았고,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모두를 웃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다양한 매력을 지닌 '볼매' 배우다.

그런 곽도원이 '강철비'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하는 외교안보수석 역으로 돌아왔다. 이전 작과 다르게 진지하면서도 울리고 웃기는, 이른바 북 치고 장구 치는 모든 면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필자는 '강철비'가 개봉했던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삼청동 모 카페에서 곽도원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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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소감은 어땠나?
└ 대체로 만족했는데, 부족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 2시간 19분이라는 상영시간 속에서 아쉬운 장면들이 몇몇 있었다. 예를 들면, 두 명의 '철우'가 너무 급하게 친해지는 듯한 느낌도 있었는데, 편집으로 한 두 장면이 빠지니까 그렇게 느껴졌다. 다행히 관객들이 좋게 넘어가 주셨던 것 같다.

어떤 부분이 완성본에서 빠졌는가?
└ 두 사람이 서서히 친해지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을 제한된 시간 안에 표현하고자 감정 등이 압축하다 보니 몇 마디 하지 않았음에도 친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게 나 자신에게 걸렸다.

대본을 받고 '강철비'를 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다. 그게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요즘 월드컵에서 한국이 무시당하는 것처럼, 현재 강대국 사이에 껴서 약소국 취급 받는 게 개인적으로 답답했다. 그래서 우리가 핵을 보유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호기심에서 대본을 선택했다. 그 점에서 '변호인' 때 함께 했던 양우석 감독님이 나를 또 찾아주신 것에 감사했다. 그만큼 내가 쓰임이 있다는 걸 느꼈다.

그렇게 말하니 곽도원에게 '변호인'에 대한 의미가 남다른 것 같다.
└ 양우석 감독님과 '변호인'을 통해 친해졌다. '변호인' 덕분에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막노동하셨다는 사실과 그리고 당시 거주하셨던 아파트가 광안대교에서 잘 보인다는 것도 알았다. '변호인' 대본의 80% 이상이 실제 이야기였고, 이를 치밀하게 준비한 부분과 박학다식함에 깜짝 놀랐다. 연예 빼고 다 모든 걸 알고 계신다. (웃음) 그래서 이번에도 감독님과 하게 되면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호기심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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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작품에도 수많은 엘리트 역할은 해왔지만, 이번에 '곽철우'의 직업인 외교안보수석을 준비하는 데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 다행히 감독님이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계셨다. 감독님으로부터 진보와 보수의 정의와 기원, 그리고 이 이념을 왜 한국에서만 쓰게 되었는지, 한국 근현대사와 냉전시대 당시 사회와 문화의 분위기, 북핵 문제와 이 영화의 줄거리 및 엔딩의 연관성 등에 대한 여러 전문가의 발언들을 강의처럼 듣고 촬영 전에 많이 익힐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곽철우가 가져야 할 안보와 사상이 무엇인지 등 그의 전사에 대해서도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일단 양 감독님께서 '강철비' 대본을 만들기 10여 년 전부터 웹툰으로 준비하고 계셨기에 재밌게 시작할 수 있었다.

혹시 '강철비'의 원작 웹툰 격인 '스틸레인'은 본 적 있는가?
└ 감독님께서 보라고 하시면서 "웹툰과 내용이 다를 것이다"고 하셨다. 일단 참고삼아 3화까지 봤는데 마땅히 참고할 게 없었다. (웃음)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도 작가한테 다 들었기 때문에 알고 있고, 무엇보다도 웹툰의 주인공 외모가 나랑 닮지도 않았다. (웃음)

사실 언론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기 전에 동명으로 연재중인 '강철비' 웹툰을 먼저 봤다. 외모는 닮지 않았으나 성격이나 행동은 당신과 곽철우는 제법 닮았다. (웃음)
└ 그렇게 봐줬다면 감사하다. (웃음) 웹툰도 작가가 쓴 글을 보고 그림체를 옮겼듯이, 나 또한 대사를 보고 연기하니까 감정 등이 닮을 수도 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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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철우라는 인물이 앞서 나왔던 남북관계 소재 영화에 등장하는 한국 측 인물들과는 많이 달랐다. 감정과 이성, 그리고 능력이 골고루 갖추고 있으면서 뭔가 편한 이미지였다.
└ '강철비'가 진지하면서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 감독님뿐만 아니라 배우들도 2시간 19분 상영시간 동안 전체 이야기에 맞춰서 강약 조절을 해야 했고, 이 부분에 대해 감독님과 조율하면서 연기 톤 높낮이나 발성, 감정 고조 등에 대한 전략을 짰다. 대본에는 곽철우의 세세한 감정까지 모두 설명되어 있었기에, 나는 그의 대사로 특정 지점을 설정하여 표출하는 게 배우로서 보여줘야 할 역량이었다.

그리고 정치인이나 법조인 같은 공무원들을 가깝게 접할 기회는 대부분 뉴스 같은 매체뿐이었기에 딱딱하게만 느끼겠지만, 사적으로는 그들 또한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형, 이웃 사람이다. '동상이몽'에 출연했던 이재명 성남시장도 다른 가정의 남편들처럼 집안일을 돕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에 이웃 주민들에게 '그 아저씨'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외교안보수석이라고 해서 그의 삶이 항상 브리핑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곽철우 또한 공적인 모습과 일상은 분리되어있다고 상상하고 분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곽철우가 이 영화에서 숨을 쉬게 할 수 있는 인물이면, 어떠한 모습으로 보여야 할 지가 나에겐 숙제였다.

이번에 영어, 중국어까지 소화했는데 힘들지 않았는지?
└ 하필이면 곽철우가 옥스퍼드를 나왔다는 대사가 있어서, 실제로 옥스퍼드 출신인 분들이 들으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다. (웃음) 영어는 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데, 끄집어내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게다가 중국어는 짧은 문장도 성조까지 신경 써야 했다. 정말이지, 엘리트 연기가 힘들다. (웃음)

외국어뿐만 아니라 강의하는 장면도 남달라보였다. 특히, 그 장면이 곽철우의 많은 면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 사실 고백하자면, 대학교에서 한 번도 강의하는 걸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TED'나 '세상을 바꾸는 시간' 등을 참고하기도 했고, 강의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대학교 강의를 한 번 견학할까도 생각했다.

▲ 영화 '강철비' 스틸컷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강의하는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지 않던가? 그래서 내가 강의를 한다면 어떻게 할까 상상하면서 그 앞에 곽철우를 세워놓았다. 곽철우라면 강의를 듣는 이들에게 어떤 말을 강조할지, 강의할 때 그 만의 특징을 만들고자 최대한 연구했다. 그래서 곽도원이 하는 곽철우의 강연을 보여주려고 했더니 그 장면에서 내가 소화해야 할 대사가 너무 많았다. (웃음) 대사 분량만 무려 3페이지가 되었다.

하필 이 장면을 '강철비' 촬영 초반에 찍게 되어 부담이었다. 양 감독님이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초반에 촬영하자고 제안하셨다. 혼자 찍는 거면 모르겠지만, 알다시피 수많은 청강생도 있기 때문에 대사 틀려서 NG 내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다. 예전에 '변호인'에서 송강호 형이 법정 장면에서 대사로 NG 내지 말아야겠다고 부담을 느끼는 걸 봤는데, 그 마음을 이해했다.

다행히 대사를 틀려서 NG를 많이 내지 않았다. 그리고 청강생 역을 맡아준 보조출연자분들의 리액션도 좋았다. 그래서 매 찍을 때마다, 처음 듣는 것처럼 해줘서 무척이나 고마웠다. (웃음)

그런데 현실적인 건 강의실에서 졸거나 딴 짓 하는 학생들도 있는데, 여기에선 안 보이더라. 그만큼 곽철우는 명강사였는가? (웃음)
└ 나도 그 부분을 생각했었다. 정말 강의를 열심히 듣는 학생들이었다. (웃음) 그중 일부는 졸거나 핸드폰 쳐다보거나 하는 반응도 있어야 현실적인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몰입이 깨질 것 같아 일부러 그런 설정이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 영화 '강철비' 스틸컷

그리고 상대배우였던 정우성과의 케미가 상당히 돋보였다. 환상의 짝궁 같았다.
└ 지난해 처음 만났던 '아수라'에서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특히나, 영화를 준비하면서부터 촬영현장에서 굳건한 믿음이 생겼던 것 같다. 우성이와 '아수라'를 하면서 크게 느낀 건, 서로가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만 고스란히 받으면 되겠더라. 그래서 둘이 함께 연기할 때 행복했다.

그리고 우성이는 정말 준비를 많이 해오는 배우라고 느꼈고, 준비해온 만큼 그릇도 큰 친구다. 그래서 믿음이 갔고, 재밌게 찍었던 것 같다. 하나 더 놀랐던 게 있다면, 현장에서 느꼈던 분위기가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다. 현장에서 서로에게 믿고 기대면서 한 컷 한 컷 찍었던 그 순간들이 오롯이 카메라에 담겨서 다 묻어나더라. 그래서 두 사람의 케미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문화 人] '강철비' 곽도원 "지드래곤 '삐딱하게', 처음에는 빅뱅 'FANTASIC BABY' 였다'"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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