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소규모 교회, 사정이 어려운 야구부 등 '낮은 곳으로만 임해'

▲ 이만수 감독은 자신을 불러 주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는다. 특히, 규모가 적고 도움이 간절한 곳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프로야구 초창기에는 해외로 전지훈련을 나가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나 그 '드물었던 일'을 해낸 구단이 있었다. 삼성 라이온즈가 그러했다. 삼성은 타 구단이 남해나 제주도로 동계 전지 훈련지를 정하는 동안, 따뜻한 해외로 선수들을 보내 실력 향상을 도모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메이저리그 선수들과의 교류도 있었고, 그 안에서 서로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메이저리그 선수들 눈에도 꽤 의아한 모습을 보이는 이가 있었다고 한다. 오전, 오후 일정에 맞춰 훈련하는 것도 그렇고, 야간 자율 훈련하는 것까지 어디까지나 '일상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도 모자라 새벽 자율훈련까지 하는 선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소위 말해서 '또라이'가 아니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 선수가 누구냐고 물어보자 돌아온 대답이 매우 걸작이었다.

"저 선수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타격 트리플 크라운(타율, 홈런, 타점 1위)을 차지한 이다."

그러자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물론, 코칭 스태프까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만수야말로 진짜 프로"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는 일까지 잊지 않았다. 야구와 교회, 마누라밖에 몰랐다던 '헐크' 이만수 감독. 현역 시절부터 프로다운 모범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었던 그는 기록에서나 야구장 밖에서나 늘 최고의 사나이였다.

헐크 이만수, 최고였던 그가 낮은 곳으로 임하는 이유

물론 그는 팬들에게도 기쁨을 주는 데 인색하지 않았던 '진짜 프로'였다. 홈런을 친 이후 각 베이스를 깡총 뛰어다니던 모습에서 팬들은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선사했고, SK 코치 시절에는 인천 문학구장이 만원 관중으로 들어서자 속옷만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이른바 '팬티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프로야구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이만수에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프로야구의 존재 목적이 '팬'이라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내던지는 일도 가능했던 것이다.

그랬던 이만수 감독은 SK 퇴단 이후 더욱 놀라운 행보를 선보였다. 야구 불모지나 다름없던 라오스로 발걸음을 옮겼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직접 야구 장비를 준비하고, 스스로 감독 겸 코치가 되어 선수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라오스에 야구장을 건립하기 위한 모금 운동까지 자청했다. 또한, 야구부를 창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학교들을 돌며, 재능 기부를 하는 일까지 잊지 않았다. 대개 이만수 감독이 학교를 찾는다는 전화가 학교 측으로부터 먼저 오면, "사실이냐?"라며 되묻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야구로 받은 사랑은 야구로 돌려줘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이만수 감독에게 '가르치는 대상'에는 제한이 절대 없다. 그저 야구만 좋아하면 된다. 어린아이들부터 60대 어머니뻘까지 예외는 없다. 사진ⓒ김현희 기자

이러한 행보가 계속될 무렵, 이 감독은 필자에게 '좋은 행사를 진행하려 한다.'라며 SNS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양지 평안 교회에서 초청을 받아 야구 교실을 진행한다는 내용이 그것이었다. 장소는 용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운동장으로, 서울에서 꽤 먼 거리였다. 그러나 이만수 감독의 재능기부 행사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 이끌려 필자는 무작정 용인으로 향했다. 그 안에서 행사 시작 전부터 야구 장비를 손수 챙기던 이만수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어이구, 김기자 오랜만이오!"

여전히 밝은 모습으로 악수를 청하는 이만수 감독. 참가 규모는 생각 외로 작았지만, 그러한 것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야구의 재미를 알게 해 줄까 라는 생각에 가득 찬 듯했다. 그리고 T 볼 장비로 어린 아이들과 40~50대 어머님/아버님들에게도 야구를 가르치는 모습에서는 프로 시절의 진지함까지 엿보이는 듯했다.

"김기자, 야구는 저렇게 해야 하는 거야. 저렇게 웃으면서 야구를 즐기는 모습이 얼마나 보지 좋아! 내가 야구를 통해서 팬들의 사랑을 먹고살았으니, 이제 그 사랑을 이런 재능 기부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 내 몸이 다 할 때까지 난 이 일을 계속할 거야."

1982년, 프로야구 창단과 함께 한국 영화계는 이청준 작가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낮은 데로 임하소서'를 출시한 바 있다. 이는 사실 '가장 보잘것없는 자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예수 그리스도)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신약 성경의 말씀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신앙인이라 해도 이를 실천하는 것 역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만수 감독의 행보를 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성경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는 몇 안 되는 야구인이자 종교인이라 생각한다. 대내적으로는 좋은 야구인이면서도, 대외적으로는 가장 낮은 곳에서 봉사를 몸소 실천하는 집사님의 모습을 보이는 이만수 감독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신이여, 선한 헐크를 늘 돌보소서(Lord, save HULK, 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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