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당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낸다면?

영화 시나리오를 전공한 기자의 평소 꿈 중 하나도 '내 이름이 찍힌 책을 내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오모리현의 떨어지지 않는 사과 이상으로 사람들의 사연이 많다. 전쟁과 민주화 등 압축된 근현대사를 겪어온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래. 내가 살아온 삶이라면 책 몇 권으로도 모자라지"라고 말한다. 이렇게 온 국민이 다이나믹하게 살아온 우리나라에는 스마트폰이 일상화되며 글을 잘 쓰는 사람도 더욱 많아졌다. '하상욱' 등의 작가를 필두로 기존의 틀을 깬 'SNS시인'이라는 말도 새로 생겼을 정도다.

하지만 실제로 출판되는 책은 많지 않은데 그 이유를 알려줄 작가 김이율을 지난 16일 오후 MHN 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김이율 작가는 30권 이상의 책을 낸 베테랑 작가다. 광고회사 '제일기획' 제작본부 카피라이터, 블루웨이브 출판사 대표 등을 거쳐 현재는, 선율아카데미 책쓰기스쿨 대표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으로 등단했으며,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본공모전에서 수상했다. 2016년 청소년 북토큰 독후감 대회 심사위원장, 같은 해 세계 책의 날 초청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 '가슴이 시키는 일', '가끔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익숙해지지 마라 행복이 멀어진다', '죽을 수도 살 수도 없을 때 서른은 온다' 외 다수가 있다.

이처럼 카피라이터로, 출판사 대표로, 작가로 쉴새 없이 살아온 그의 성실성은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격언을 떠오르게 했다.

 

만나서 반갑다. 최근에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ㄴ '책쓰기 코치, 김이율의 포스트홀릭'을 주간 연재하며 평소처럼 에세이나 자기계발서, 희곡 등을 작업 중이다. 또 책을 내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선율아카데미에서 책쓰기 스쿨을 진행하고 있다.

기자는 학생 시절, 시나리오를 쓸 때 '인물의 깊이가 부족하다'거나 '모든 인물이 다 비슷하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인터뷰를 기대했다. '글 잘 쓰는 비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웃음).

ㄴ 글쓰기의 초심자가 벗어나기 힘든 게 캐릭터들이 다 자신 같은 거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을 관찰해서 캐릭터를 대입해서 쓰는 게 낫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쓰는 글이기 떄문에 자기 성격이 인물에 반영된다. 설명을 더 하자면 일상적인 이야기를 쉽게 풀어쓰면서 그대로 끝나면 일기가 되지만, 중간, 마지막에 자기 생각이 들어가고 어떤 의미 부여를 하면 산문, 에세이가 된다.
희곡은 좀 다른 것 같다. 문학작품이 아니라 무대에 올라가는 차이지만, 평범한 일상어를 쓰면서 구성력이 중요하다. 신춘문예 준비하는 분들도 가르치고 있는데 이것도 또 다르다. 원고지 100매, 단막극을 기준으로 한다. 신춘문예가 아닌 경우 희곡은 보통 장막극을 뽑는다. 장막은 250~300페이지를 쓴다. 구성 자체가 달라야 한다. 단막은 인물도 3, 4명 정도로 압축되고 장막은 오히려 적을 수도, 많을 수도 있게 자유롭다.
신춘문예에서 중요한 건 단일 사건, 단일 메시지를 담는 거다. 짧은 공연인데 많이 담으려고 하면 메시지가 갈 수 없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단막이 쉬운 줄 알고 쓰는데 장막극은 대사가 많고 주제가 좀 분산돼도 힘이 가는데 단막에선 그렇게 하면 주제의식이 흐려질 수 있다.

답변이 너무 명확하다. 따로 가르치기도 하는데 책쓰기 비법을 이렇게 공개해버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ㄴ 비법은 중요치 않다(웃음). 직접 쓰고 그걸 피드백 받는 과정이 중요하다. 막상 써보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배우지 않고 혼자 깨닫기는 어려운 것 같다. '글쓰기'는 혼자 할 수 있지만, '책쓰기'는 혼자 쓰는 게 아니다. 컨셉, 출판 과정, 책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일종의 영업까지 담긴 복합적인 과정이다.
어머님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쓰면 책 한권도 더 쓴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쉽지 않은 게 그런 이유다. 책을 내겠다는 건 사회적인 이름을 갖겠다는 거다. 자기 마케팅이나 비지니스 적인 가치를 높이려는 영업적인 마인드가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글 쓰기는 내적인 감정을 풀어내는 거지만, 글에서 책으로 넘어가는 단계가 있다. 누구나 욕망은 있다. 욕망이 글이라면 그걸 분출하는 게 책이다. 책은 혼자 쓸 수 없다. 예컨대 희곡도 혼자 쓸 순 있지만, 공모전에 당선됐어도 배우와 연출가를 만나야 된다.

 

이런 것들이 '프로' 작가의 마음가짐인 것 같다.

ㄴ 그렇다고 한가지에 올인할 필요는 없다(웃음). 발만 담구되 꾸준히 생산해야 한다. 저도 몇년 간은 직장생활을 하며 글을 계속 써왔다.

그럼 그런 것들을 정리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다 새롭게 선율 아카데미를 설립한 계기가 있다면?

ㄴ 저랑 같이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오평선 대표가 있다. 진로진학상담가고 자녀교육서를 냈던 분이다. 그분이 딱딱한 책은 재미 없으니까, 산문집을 내고 싶다고 해서 코칭을 해줬다. 그런데 내용이 좋다며 자기가 배운 걸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면 안되냐고 묻더라. 이전 회사도 그만 두고 같이 코칭을 만들었다. 그래서 오평선의 '선', 김이율의 '율'을 따서 선율(SY)아카데미가 나온다.

그래서 실제로 일을 벌려 보니까 어땠나?

ㄴ 누굴 가르쳐본 적이 없어서 두려운 마음에 시작했는데 중요한 건 내가 갖고 있는 노하우, 지식을 그냥 이야기만 해주면 되더라. 써온 원고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고. 중요한 건 '컨셉'이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출판사에게 선보여야 하는 거니까 출판사 편집장이 봤을 때 출간계획서가 확실한 책을 짚는다. 초보 작가들의 책을 내려고 해도 책 한 권을 만드는데 상당한 돈이 들기에 그 중 가장 상품 가치가 있고 돋보이는 책을 집어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컨셉을 공유하고 다듬어서 출판사에 기획서를 보낸다. 1기 중에 한 명은 책이 벌써 나왔다. '내가 나를 안아주고 싶은 날'이라는 이은숙 작가의 산문집이다. 힘든 출판 시장인데도 좋은 평을 얻어 초판 3천부를 찍었다. 좋은 선례가 됐다.

출판에 이르기까지 이은숙 작가의 어떤 면이 돋보였는지.

ㄴ 숙제를 잘 해왔다(웃음). 성실했고 또 중요한 건 감이다. '균형감각'이라고 봐야 한다. 자기 글에 대한 퀄리티도 높이고, 독자도 생각하고, 출판사도 생각해야 한다. 처음 쓰는 사람은 보통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다. 글을 잘 쓸지언정 밸런스가 안 맞으면 책이 안 된다. 예를 들면 연극도 마찬가지다. 희곡을 잘 써도 관객 호응이 없거나 연출가를 만나지 못하면 그 희곡은 죽는다. 내 생각을 대중과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써야 한다. 대중의 입맛에 맞춘다기보다는 내 글에 대한 소중함과 동시에 독자가 좋아할 만한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모든 일이 비슷한 것 같다. 나, 클라이언트, 대중을 모두 생각해야 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직장 생활을 하며 작가를 병행했다. 직업이 카피라이터일 때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ㄴ 아이디어를 매일 쏟아내지만, 휴지통에 들어간 게 많다.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고 괴로웠지만, 구성력에 대한 끊임 없는 연습이 됐다. 15초 광고지만, 완성한 작품이기 때문에 하루에 열 개도 넘게 기승전결이 갖춰진 완성한 작품을 만드는 건 마찬가지다. 희곡이나, 소설이나, 카피나 결과물의 양은 다르지만 거기까지 가는데 쓰는 에너지는 동일한 것 같다. 컨셉을 내고, 대중성도 찾고 클라이언트도 만족하고 판매 실적까지 연결돼야 했다.

책을 많이 쓸 수 있었던 게 삼위일체를 갖추는 훈련을 많이 하게 된 셈이다. 그럼 신춘문예와 창작산실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던데 그 과정도 이야기해달라.

ㄴ 신춘문예는 희곡으로 됐다. 그 뒤 직장 생활, 작가 생활 하면서 산문집과 자기계발서를 위주로 쓰다. 2015년부터 다시 희곡을 썼다. '좋은 희곡 읽기 모임'의 회원이다. 그러면서 15년 만에 다시 희곡을 접하게 됐고 다시 대학로도 나가고 연극도 많이 보게 됐다.

최근 글쓰기에서 희곡보다는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 등에 편중되는 경향이 심해지는데 젊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하자면.

ㄴ 희곡은 '블루오션'이다. 사람들은 다들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가 되려고 한다. 그게 돈이 많이 모인다. 그러나 연극에서 돈 벌었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웃음). 대학로도 상업극, 정극으로 나뉘어진 가운데 전체적으로 이전보다 쇠락한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 좋은 작품이 있다면 극이 올라갈 수 있다. 그러니 공부하는 분들이 희곡 작가로 데뷔를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만 하다. 당장 돈은 못 벌수 있어도 중요한 현장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처음 글쓰기라는 취미를 갖게된 건 언제인가.

ㄴ 고2 때다. 저는 수업시간에 국어책 읽다가 기절할 정도로 소심하고 겁도 많았다. 사춘기 때 '내 성격은 왜 이럴까' 하고 우울한 시기를 보내다가, 어떤 상처받은 것에 대한 표현으로 글을 선택한 것 같다. 나를 표현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당시 옆집 여고생을 짝사랑 했었는데(웃음) 말, 외모, 자신감 모두 부족해서 편지로 표현하게 됐다. 그렇다고 당장 그때부터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진 건 아닌데 이런 재주를 가졌다는 걸 그때 느꼈다.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 시간이 흘러 대학생 때는 연극반에 들어갔다. 성격을 바꿔보려고 배우도 해봤는데 아니더라(웃음). 적성에 좀 더 맞는 글에 관심을 뒀다. 그러다 서른 살 때까지 계속 연극에 관심이 있다 보니 희곡을 써볼까 했는데 그게 덜컥 신춘문예가 된 거다. 그걸 계기로 서울로 직장도 옮기고 그러면서 작가 생활이 시작된 셈이다. 전 만약 말을 잘했으면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웃음). 하지만, 나를 표현할 또 다른 뭔가를 찾았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작가 지망'이 아니라 글을 쓰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ㄴ 어떻게 보면 글이라는 게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하거나 지식을 자랑하고 잘난 체하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내 자신에 대한 위로인 것 같다. 그 시간만큼은 혼자 하는 일이지 않나. 나 자신을 생각할 수 있고 글을 쓰면 분노도 삭힐 수 있고 부족한 게 있다면 그런 면도 끌어올릴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건 위로의 시간인 것 같다. 돈도 많이 안 들면서 가질 수 있는 취미고 그렇게 시작할때 쯤 되면 욕심도 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선율 아카데미로 오시라(웃음).

 

'말을 잘 못한다'며 시작한 그와의 인터뷰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화려한 언변은 아니지만, 글을 쓸때와 마찬가지로 진실이 담긴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기자도 다시 글을 써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편, 김이율 작가와 오평선 작가가 운영하는 함께 선율아카데미는 지난 2월 2일에 오픈한 진로와 진학 컨설팅, 성인·아동 책쓰기, 청소년 스피치를 담당하는 센터다.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찾아주자'라는 비전 아래 청소년이 꿈과 진로를 찾도록 도와주고, 글쓰기와 말하기의 기본역량과 적성에 맞는 개별역량을 키워서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다. 특히 글을 잘 쓰는 방법으로 '고관절 법칙'을 설명했다. '고관절'이란 '고백', '관점', '친절'의 약어다. '고백'은 동질감과 진실성을 표현하라는 뜻이고, '관점'은 늘 다양한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하라는 뜻이며, '친절'은 좋은 생각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은 글이 나온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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