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강경민 칼럼니스트]  낮과 밤이 같아지는 한국의 춘분(春分) 다음날인 3월 21일부터 23일은 투르크언어권(Turkic)의 새해 ‘나브루즈(Наурыз, 또는 네브루즈 Nevruz)이다. 나브루즈는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 중앙아시아 5개국, 타타르스탄, 바쉬키르스탄, 다게스탄 등 러시아연방내 투르크계 또는 무슬림계 연방공화국, 이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파키스탄까지 투르크언어권 민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독립국가 또는 구성원 중 하나로 살고 있는 지역에서 한 날 동시에 나브루즈를 기념한다.

[사진 = 튀르키예공화국문화부] 투르크어권(Turkic) 나브루즈 문화 행사 포스터 (2017년)
[사진 = 튀르키예공화국문화부] 투르크어권(Turkic) 나브루즈 문화 행사 포스터 (2017년)

대단히 넓은 지역에서 기념하는 새해이기에 민족이나 언어별로 ‘나브루즈, 나우르즈, 네브루즈, 노루즈…. 등등’ 부르는 명칭도 비슷한 듯 다양하다. 나브루즈는 2009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12개국의 공동 인류문화유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매년 3월 21일을 UN 공식 International Day로 기념하고 있다.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 기원하는 나브루즈

나브루즈는 투르크언어권내 지역에서 기념하는 새해이지 투르크 민족 만의 고유한 계절 명절로 볼 수는 없다. 이는 태양와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를 믿던 고대 페르시아에서 매년 춘분이 되면 빛이 어둠을 이긴다고 믿었던 것에서부터 기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브루즈에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페르시아사에서 아마도 기원전 3천년 전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문명시기에도 존재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 해의 첫 날과 봄의 시작’을 의미하는 나브루즈의 단어 뜻의 기원이 고대 페르시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의 기록도 흥미롭다. 서기 224년, 아르다시르 1세(Ardashir I)가 즉위 후 나브루즈를 축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나브루즈가 수백년을 사이에 두고 소멸되지 않고 국가의 명절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브루즈는 고대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제국(기원전 550 – 330년)의 공식적인 지위를 받은 국가 고유 기념일이기도 했다. 아케메네스 제국 멸망 이후에 여러 민족이 근동지역 거쳐갔고, 5세기 말경 이슬람의 등장 후 지역 내 이슬람의 확산과 투르크계 민족의 이슬람화를 과정을 지나면서 나브루즈는 지역내 토속 문화로 받아들여진다.

[사진 = Yandex 얀덱스픽처] 불(태양)을 숭배하던 배화교의 흔적이 남아 있는 나브루즈
[사진 = Yandex 얀덱스픽처] 불(태양)을 숭배하던 배화교의 흔적이 남아 있는 나브루즈

 

죽음에 대한 새로운 생명의 승리, 나브루즈의 의례

나브루즈는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와 탄생, 새로운 생명의 출현과 육체적이며 영적인 정화를 상징한다. 낡거나 오래된 것들은 버리고 싹이 튼 밀싹으로 집을 장식하고 전통 명절 요리를 준비하는 것은 나브루즈를 기리는 민족과 지역의 공통된 의례이다.

새해로서 나브루즈의 또다른 의미로는 “봄”인데, 봄을 맞이하는 모습은 우리의 새해와 비슷한 면도 있는 듯하다. 나브루즈 전날이 되면 새해의 빛을 맞이하기 위해 집과 집 주변을 청소한다. 일부는 투르크 문화권에서 영원함을 의미하는 코발트색의 청록색으로 대문을 칠하기도 한다. 달걀에 그림을 그리거나 철을 주조하기도 하는데 이는 부할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행위이다. 튀르키예의 흑해와 지중해 등 산과 바다가 마주하는 지방에서는 끈에 소원을 적어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언덕 위의 나뭇가지에 묶으며 복을 빌기도 한다. 

나브루즈 전달 밤에는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집에 모여 저녁을 먹고 한 해의 복을 기원한다. 밤이되면 손님을 맞이 하지도 않고 손님으로 타인을 방문하지도 않는다. 마을 중심에는 모닥불을 태우고 그 위를 뛰어넘으며 지난 해의 액운은 날리고 한 해의 소원을 빈다. 한편, 나브루즈 전날 잠에 가족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7년간 집에 돌아오지 못하다는 미신도 있다고 하니, 나브루즈는 새해를 기념하는 날짜임과 동시에 ‘새해이니 가족과 함께 보내라’는 가족주의(Familism)적인 모습도 상당히 짙다.

[사진 = Yandex 얀덱스픽처] '새로움과 탄생'을 의미하는 나브루즈의 '싹이 튼 밀싹'
[사진 = Yandex 얀덱스픽처] '새로움과 탄생'을 의미하는 나브루즈의 '싹이 튼 밀싹'

 

2024년 타타르스탄의 나브루즈는 다민족과 다문화의 강조

여러 지역에서 지내는 계절 명절인 만큼이나 공통된 문화 이외에도 개별적인 문화와 행사도 다채롭다. 타타르스탄공화국에서는 공화국내 민족우호의집에서 수도 카잔 중심에 모여 축하 콘서트, 민속 놀이 체험, 전통 음식 페스티벌이 열려 카잔의 여러 투르크어권 문화의 민족의 나브루즈 문화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사진 = 타타르스탄공화국문화부]
[사진 = 타타르스탄공화국문화부] 러시아연방 타타르스탄공화국의 수도 카잔에서 열린 나브루즈 축제

2024년 나브루즈는 카잔 히포드롬(Kazan Hippodrome) 경기장에서 축제가 개막했다. 개막일에는 카잔내 거주 중인 타타르인, 아제르바이잔인, 아프가니스탄인, 바쉬키르인, 다게스탄인, 카자흐스인, 키르기스인, 타지크인, 투르크메니스탄인, 터키인(튀르키예인), 우즈베크인 등 많은 사람들이 대규모로 한 장소에 모여 둥글게 원을 돌며 춤을 추고 노래했다. 

2024년 나브루즈의 주말에는 모여 전통 극을 공연하고, 공예 마켓을 열어 민족 풍미가 담긴 공예품을 선보이고, 민족별 민속 놀이, 필라프(Pilav) 페스티벌, ‘Navruz Guzele’(나브루즈 규젤레)라는 이름의 미인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올해는 2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테러로 토,일 주말 동안 예정되었던 행사가 취소되었다.

[사진 = 타타르스탄공화국문화부] 러시아연방 타타르스탄공화국의 수도 카잔에서 열린 나브루즈 축제
[사진 = 타타르스탄공화국문화부] 러시아연방 타타르스탄공화국의 수도 카잔에서 열린 나브루즈 축제

 

핵가족화가 만든 나브루즈 문화의 변화

투르크언어권에서도 도시 중심으로 인구가 몰리고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최근에는 나브루즈에 모이지 못한 가족들끼리 온라인으로 축하 메시지를 주고 받기도 하고, 나브루즈 선물 세트며 꽃다발을 주고 받는다. 온라인 쇼핑몰에는 차, 비누, 달달한 맛의 디저트류 그리고 밀싹 등 나브루즈의 의미를 녹아내 만든 선물들이 다양하다. 시대에 모습에 따라 나브루즈의 문화도 변화 중이다.

[사진 = Freepik] 타타르(Tatar)와 바쉬키르(Bashkir) 민족의 나브루즈 식탁
[사진 = Freepik] 타타르(Tatar)와 바쉬키르(Bashkir) 민족의 나브루즈 식탁

 

칼럼니스트 강경민 (Канг Кён Мин) - 카잔연방대학교 국제관계대학에서 '이론 응용 비교언어학''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동대학 국제관계연구소 «알타이-투르크-중앙아시아학부»에서 ‘러시아어권내 투르크 민족 언어 관계, 투르크언어간 쌍방언어비교와 언어처리, 러시아-튀르키예 간의 국제관계 등 민족과 언어 관계를 연구한다. 이전에는 IT 대기업과 스타트업에서 라이브서비스 및 개발 PM으로 근무했다. 튀르키예(터키)의 현대문학가 얄바츄 우랄(Yalvaç Ural)의 “고양이는 언제나 고양이였다”를 번역했고, 틈틈이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동물권에 대해 기록 중이다. 

문화뉴스 / 강경민 eurasianote1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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