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DJ 래피 nikufesin@mhns.co.kr. 글 쓰는 DJ 래피입니다. 두보는 "남자는 자고로 태어나서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인문학은 '인간을 위한 학문'이며 문사철을 넘어 예술, 건축, 자연과학 분야까지 포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읽고 쓰는 사람입니다.

[문화뉴스] 윌리엄 서머셋 몸(William Somerset Maugham)은 천재 화가 폴 고갱의 생애에서 모티프를 얻어서 '달과 6펜스'를 썼다. 이 책에 보면 화자가 주인공인 스트릭런드에게 '이제부터 노력해서 화가가 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자 스트릭런드는 "내가 말하고 있지 않소.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단 말이오. 나 스스로도 도저히 어쩔 수가 없소. 물에 빠진 사람은 수영을 잘하건 못하건 허우적거리며 헤엄을 칠 수밖에 없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대로 물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오" 라고 말한다. 여기서 스트릭런드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내게도 '음악에 빠져 사는 것' 그 자체가 늘 중요했다. 원래는 록 보컬이 되고 싶었지만, 방향이 좀 틀어지기는 했어도 '음악에 빠져 사는 것' 자체가 중요했기에 별 상관없었다. 인생이란 이렇듯 처음 설정했던 대로 잘되지 않는다. 이 명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태어나는 것만 선택의 영역에서 벗어날 뿐(우리는 우리의 자의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므로),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는 죽는 날까지 선택에 선택의 연속인 것이다. 살면서 맞이하게 되는 어려운 선택지 중의 최고봉은 아무래도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일 거다. 사람들은 끝없이 그 사이에서 고민한다.

내 경우를 예를 들어 얘기해보겠다. 래피의 '업(Vocation)'은 '음악'이라는 넓은 범주를 모두 포함하는 상위 개념이며, 교수라는 '직(직함. Occupation)', DJ라는 '직', 방송인이라는 '직', 강사라는 '직', 작곡가라는 '직' 등이 그 아래 하위 개념으로 자리한다. 많은 사람이 '업'을 먼저 고려하지 않고, '직'을 먼저 고려하다 보니, 결국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고, 좋아하지 않다 보니 잘할 수 없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묶이게 된다. 바로 이것이 '업과 직의 전도 현상'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일을 하며 자기 일에 만족하지 못한 상태로 그냥 살아간다. 아니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진다'는 표현이 맞겠다.

직(職, Occupation)은 곧 내가 점유하고 있는 직장 내 담당 업무이며, 이것은 언제든 내가 아닌 누군가로 쉽게 대체가 가능하다. 시간이 가면 결국 퇴직으로 끝난다. 반면 업(業, Vocation)은 평생을 두고 내가 매진하는 주제다. 업은 쉽게 다른 누군가로 대체하기가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연륜이 쌓인다. 업은 결국 장인정신과 연결되는 것이다.

   
 

리처드 바크는 '갈매기의 꿈' 도입부에서 갈매기 떼를 이렇게 묘사했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매일 아침 부둣가로 이동해서 사람들이 던져주는 빵 부스러기를 받아먹는다. 하지만 '조나단 리빙스턴'이라 불리는 한 특별한 갈매기가 있다. 조나단에게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었다. 조나단은 날개는 단순히 빵 부스러기를 받아먹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지 않았고, 날개를 통해 할 수 있는 여러 비행술을 혼자 연습했다. 조나단의 아버지는 오히려 그를 나무란다. "네가 나는 이유는 먹기 위해서라는 걸 잊지 마라." 하지만 조나단은 막무가내였다. "먹지 못해서 뼈와 깃털만 남아도 상관없어요. 전 다만 공중에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 조나단은 급강하, 공중제비, 저공비행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비행 방법을 시도해본다. 그의 비행을 보며 동료들도 모두 부질없는 짓이라 손가락질했다. 그런 행동은 어시장에서 생선 대가리를 낚아채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나단은 결국 동료들에게 외면을 당한다. 오히려 더 담대하게 높은 하늘로 올라가게 된 조나단 리빙스턴은 깨닫는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라는 사실을.

어떻게 살 것인가. 당신이 어디에서 일하는지가 아니라,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당신의 소속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하다. 직업이 아니라 직업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에서 직업을 누려야 한다. 직업이 아니라 '일'을 욕망하고 이를 성취해야 한다. 우리는 스펙을 쌓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을 해야 한다. 직업은 그 후의 일이다. '그 일'에 맞는 직업이 선택되어야 하는 것이다.

직업을 소유하지 않고 그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 행복한 '일', 매일 하고 싶어 설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돈 때문에 '일'이 아닌 '직업'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잘할 수 있는 일'에 깊게 몰입할 수 있고, 몰입하면 더 잘하게 되고, 더 잘하면 더 인정받고 보상받는 선순환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당신이 항상 하고 싶고, 잘할 수 있고, 그 일을 하고 있는 동안 행복과 보람을 느낀다면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만화 '원피스'에서 주인공 루피는 초반부에 이렇게 말한다. "할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하고 싶으니까 하는거야. 해적왕이 되겠다고 내가 정했으니까, 그러기 위해 싸우다 죽는 거라면 별로 상관없어"

 

※ 본 칼럼은 아띠에터의 기고로 이뤄져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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