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문화 人] '그것만이 내 세상' 이병헌 "대학로 일주일 촬영, 아무도 날 못 알아봐" ①에서 이어집니다.
이번에 함께 촬영한 박정민을 상당히 칭찬하던데, 그만큼 그가 이뻐보였나? (웃음)
└ 함께 촬영할 때에도 정민이의 연기에 놀랐고 대단한 후배라는 말을 많이 했지만, 시사회에서 완성본에서 그가 펼친 연기를 보고 나니 더욱 놀라웠다. 실제 촬영장에서 "힘들어요" 한마디 안 하고 현장에서 묵묵하게 임하는 박정민의 조용하고 점잖은 모습들만 봐왔는데, 완성본에서 선보였던 연기와, 이를 표현하고자 노력과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 감동했고, 고생 많이 했을 것 같다고 공감했다.
그래서 박정민이 집에서 혼자 울기도 했다고 하더라.
└ 그럴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더 매우 짠했다. 평소에 힘든 걸 겉으로 드러냈으면 기분 풀어주고 했을 텐데, 현장에서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결과물을 보니까 진짜 힘들었을 것 같다.
박정민이 "이병헌 선배와 연기하는 건, 꿈"이라고 표현하면서 존경하던데, 현장에선 그런 티 안냈는지?
└ 전혀. 현장에선 선배들이 말하면 잘 웃고 잘 들어주는 스타일이다. 그런 점이 오히려 더 믿음직스러웠고 의젓해 보였다. '그것만이 내 세상' 촬영이 끝나고 이후 '남한산성'이 개봉했을 때, 정민이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받았다. '남한산성'을 보고 자기가 느끼거나 감동받은 점 등 긴 글을 썼다. 왜 이렇게 감성적으로 장문으로 보냈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솔직하게 말했다고 답하더라. 그래서 네가 이렇게 글을 남겨주니 와닿는다고 덧붙였다. 평소에는 티 내지 않으니까 무섭더라. (웃음)
박정민을 비롯해 다른 후배들도 그런 반응을 보일텐데, 기쁘기도 하지만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하다.
└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건 고마운 일이긴 하다. 나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후배 배우들이 나를 '꿈이다', '롤모델이다'고 할 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게 되더라.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고, 나를 자유롭게 표현해내야 후배들이 나에게 기대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나 싶다. 내가 위축되는 순간, 후배들 또한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부담감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어떤 작품에서 연기하게 될 때, 큰 도화지에 자유롭게 여러 가지 시도해보고 싶은데, 부담감을 가지게 되면 나를 온전히 펼쳐내지 못할 것 같고 그 큰 도화지도 작아질 것 같다.
가벼운 질문 하나 던지겠다. 극 중에선 박정민과 게임 대결에서 매번 패배했는데, 실제로 둘이 붙으면 누가 이기나? (웃음)
└ 촬영 때문에 비디오 게임을 하게 되는데 옛날 생각나더라. 정민이를 비롯해 스태프 몇 명과 대결했는데, 할 때마다 내가 다 이겼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진태였다. (웃음)
실제로 게임할 때 무의식중에 입과 몸이 조작 방향에 따라가는 버릇이 있다. 처음에 모니터링 할 때 그 모습을 보고 약간 오버하는 게 아닐까 고민했다. 하지만 실제로 게임이 몰두하는 사람 중 나와 같은 버릇을 가진 이들도 봤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조하의 행동과 표정에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안 접해본 사람들은 '갑자기 왜 저러지?' 생각할 수는 있겠다.
극 중 박정민, 최리와 같이 나온 장면도 인상적이었는데, 실제 동네에서 볼법한 형·동생 조합 같았다.
└ 셋이 있을 때, 진짜 친한 동네 형·동생이 노는 것 같았다. 내가 어렸을 때도 저럴 때가 있었던 것 같다는 착각이 생길 정도로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정겨웠다. 극 중에서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과 정서가 좋았다.
두 후배에게 특별히 한 말이나 에피소드는 있었는지?
└ 최리 씨의 배역인 '수정'을 대본으로 처음 접했을 때, 수정이 또한 '그것만의 내 세상'이 있는 4차원적인 매력을 지닌 친구였다. 항상 "나는 연예인이 되면~"을 가정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이나, 난데없이 화내다가도 "내 허리라인 어때?"라고 진태에게 묻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수정이가 주는 재미에 많이 웃었고, 내가 만약에 그 나잇대 여자배우였다면 탐냈을 만큼 좋은 역할이었다.
조하가 씻고 나오는데, 수정과 진태가 게임을 하며 신나있던 장면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조하가 관심 있어 슬쩍 다가와 구경하는 와중, 과자 있길래 집다가 수정이가 몸 닿을까 봐 진저리치는 대사와 행동을 볼 수 있는데 전부 애드리브였다. (웃음) 그런 모습들이 배역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줬다. 그런 애드리브 덕분에 나름대로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
한지민과 함께 찍는 장면도 특이한 게, 다른 영화라면 보통 러브라인으로 엮지만, 여기에선 전혀 없더라. 그래서 좋았다.
└ 오히려 '한가율'은 진태와 그런 느낌이 강했다. 편집된 장면 중에 진태의 갈라쇼 출연이 결정된 이후, 한가율이 진태를 집에 데려다 피아노 교육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뭐가 될 거야?"라고 물어보면 진태는 "한가율 예뻐요"라고 답했다. 이에 "앞으로 뭐하고 싶어요?" 물으면 "한가율과 결혼하고 싶어요" 라고 말했다. 그래서 오히려 이 두 사람이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여기서 수정까지 포함해 삼각관계일 수도 있다. (웃음)
당신이 조하와 실제 본인의 모습과 닮았다고 말했는데, 어떤 점에서 닮았나?
└ 특정한 어떤 부분이라고 정하기엔 너무나도 많았다. 나의 지인들이 영화를 보고 상당 부분이 닮았다고 말해주더라.
실제로 피터팬 같다는 말을 듣는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 맞다. 사실 아티스트처럼 창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 상당히 중요한 것 같다. 어른과 아이라는 게 우리 스스로 구분 짓는 경계며, 특히나 우리 사회에선 어른스러워지고 철들어야한다고 강조하고, 그렇게 해야 칭찬받을 수 있으니까 아이처럼 장난치고 싶은데도 참게 된다. 그러면서 가지가 하나 둘씩 잘려나가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떤 어르신과 대화를 나눌 때, 그 분에게서 아이 같은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 때부터 이 사람과 더 이야기하고 싶다고 흥미가 생기더라. 누군가 어른스러워야한다는 틀을 만들지 않았다면 나는 아이처럼 생각하고 말했을 것이다.
끝으로, 현재 촬영 중인 '미스터 선샤인'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 궁금하다.
└ 드라마 촬영은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 두 세 번 정도 촬영했다.
드라마 파트너인 김태리를 지난 번 만났을 당시에, 제법 고생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 초반 촬영이라 강행군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현재 촬영하는 데 있어, 날씨도 춥고 대부분 지방에서 촬영되고 힘든 장면이 많아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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