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처음부터 남성 4중창만 생각해서, 이런 질문은 사실 당황스럽습니다."

3일 오후 9시 결승 2차전을 앞둔 '팬텀싱어2'의 김형중 PD가 지난 10월 26일 열린 TOP12 기자간담회에서 '여자 팬텀싱어'는 왜 없는지 물은 질문에 나온 대답이다.

다소 과하게 말하면 '여자 싱어'는 논외였다는 의미다. 어째서 그렇게 됐을까?

▲ '팬텀싱어2' TOP12 기자간담회 현장

공연예술가, 뮤지컬 배우, 인디클래식밴드 등으로 활동한 안갑성 성악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악의 근본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여성이 성악계에서 제대로 활동하고,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00년 정도 밖에 안된다. 성악 자체가 당시 시대상 속에서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아직도 이것을 따라잡기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팬텀싱어2'는 성악 오디션이 아닌, 크로스오버 보컬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조금 다르게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흔히 크로스오버라고 부르는 것은 미국에서 퓨전 재즈에 기반해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다. 한 곡이 여러 장르의 음악 차트에 오른 것을 일컫는 표현이었다.

▲ ⓒJTBC '팬텀싱어2' 프로그램 홈페이지 캡쳐

그래서인지 '팬텀싱어2' 홈페이지의 프로그램 설명에도 '장르를 파괴한' 보컬을 뽑는다고 나왔지만, 현재 살아남은 12명은 대부분 성악가이거나 뮤지컬 배우 이충주처럼 성악에 기반을 둔 보컬이다. 또 최근 경향은 달라졌지만 상당수의 뮤지컬 배우들이 성악을 배우는 것을 고려해보면 현재 국내에서는 사실상 성악에 기반을 둔 퓨전 음악을 일컫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아무리 역사가 짧다고 하더라도 어째서 여자 싱어는 논외의 대상이었을까? 이것은 방송으로만 이들을 접하면 알기 어려운 흐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클래식, 뮤지컬 등 무대 예술을 경험한 사람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상품성' 때문이다.

이것은 얼마전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배우 아이비가 발언한 것과 함께 생각해보면 자연스럽다. 그녀는 여성 타이틀롤 작품을 보기 힘든 것을 우려하는 질문에 "정말 여자 원톱 공연이 적은 것 같다"며 입을 연 뒤 "배우 입장에서도 객석을 바라볼 때 거의 여자분들이 많이 오시는데 공연도 쇼비지니스지 않나. 아직은 여자 관객이 훨씬 많지만, 저희가 열심히 해서 남자분들도 여자친구, 가족 손 붙들고 오도록 열심히 하겠다"며 대답했었다.

▲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출연 중인 아이비.

실제로 굳이 구체적인 데이터를 들지 않아도 공연계는 여성관객이 움직이고 있다. 3S를 제외하면 문화 소비에 주저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관심이 가는 분야라면 지갑을 여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덕분에 연극에 비해 보다 상업적인 구조를 띈 뮤지컬에서는 남자 배우를 활용한 기획 의도가 노골적인 작품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이것은 시장을 바라보는 외부에 색안경을 씌웠고,  '쓰릴 미', '비스티' 등 좋은 극들도 남성 위주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을 낳기도 했다.

한 대학로 관계자는 "여자배우를 배제한 콘텐츠가 많아지는 건 결국 남자배우가 전면에 있어야 흥행이 되는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관계자나 관객들도 그 흐름에서 자유롭진 않다. 여배우의 역할이 충분히 인정받고 필요한 작품에서조차 그런 갈증이 완전히 해소되진 않는 상황이다. 여자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는 작품에서도 여자 캐릭터는 기능적인 역할이거나 비현실적인 여성상을 보인다. 이런 현상 속에서 일부 관계자는 여성 캐릭터를 신인 등용문 정도로만 생각하기도 하며 실력 있는 여배우의 설 자리가 점점 줄고 있다"고 현재의 상황을 진단했다.

그리고 "하지만 꼭 주인공이 아니어도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서 빛나는 여성 캐릭터들이 얼마나 관객들의 열광을 불러오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좋은 여성 캐릭터가 함께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좋은 여자 배우들의 활약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차갑다. 기세중, 에녹, 이용규 등이 출연하는 뮤지컬 '배니싱'은 트라이아웃 공연 과정에서 존재하던 여자 캐릭터가 본 공연에 오며 아예 사라졌다. '제6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여러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뮤지컬 '찌질의 역사'는 남자 캐릭터는 모두 1인 1역이지만, 여자 캐릭터는 모두 1인 3역을 맡는다. 이는 원작 웹툰의 분위기를 살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유미의 세포들'을 그린 이동건 작가는 최근 네이버 웹툰에서 '달콤한 인생' 에피소드를 재연재하는 과정에서도 "엄마에게 밥 차려달라"는 대사를 수정하는 등 시대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단순히 옛날 작품이니까 그대로 만들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안일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옥주현과 정선아가 더블 캐스팅으로 출연하는 보기 드문 여성 원톱 뮤지컬이다.

한발 더 나아가면 이것은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차별일까. 지난 봄에 공연된 연극 '슬루스'는 젊은 남자와 노인이 등장하는 원작을 젊은 남자 둘의 작품으로 바꿔버렸다. 4, 50대 이상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은 쉽게 찾기 어려워졌다. 다행히 '벤허'와 '타이타닉' 등의 작품이 그런 면에서 남경읍, 김봉환 배우등을 기용하며 긍정적인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지만, '상업성을 추구한다'는 명목하에 점점 더 사회적 약자를 주목하지 않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 역시도 아직은 '할머니'가 아닌 '할아버지'에 방점이 맞춰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봉환 배우의 상대역인 임선애 배우는 1969년생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은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결국 콘텐츠의 다양화에 답이 있다. 여성 관객 위주의 시장이기 때문에 앞서와 같은 남자 배우, 남성 캐릭터 위주의 공연이 주를 이룬다고 했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히트한 뮤지컬 중 손꼽히는 것이 '맘마미아'와 '위키드'다. 국내에서도 댄버스 부인과 나(i)가 주축이 되는 '레베카'가 매년마다 공연에 오르며 큰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의 공연 제작 방향, 소비 트렌드가 여성 관객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작자들의 노력 부족에 있다고 봐야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

끝으로 공연예술가 안갑성은 '여성 4중창이 왜 없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성 4중창이냐, 여성 4중창이냐를 논하기 이전에 '좋은 노래'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남성 4중창은 기본적으로 베이스-바리톤-테너의 3성부에 가깝다. 이는 여성 중창단을 꾸려도 마찬가지다. 여성도 알토-메조-소프라노의 3성부로 나눌 수 있고 결국 4중창을 위해서는 이들이 섞여야 한다. '남성 4중창'과 '여성 4중창'을 구분해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섞일 수 있는 좋은 음악, 좋은 기획이 우선시돼야 한다. 그것이 프로그램의 생명력 또한 더 길게 만들어줄 방법이 아닐까."

▲ 1차전에서 1651점으로 1등을 한 포레스텔라.

한편, '팬텀싱어2'는 3일 오후 9시에 결승 2차전을 치른다. 1차전에서는 포레스텔라(고우림, 강형호, 조민규, 배두훈)이 1651점, 에델 라인클랑(김동현, 안세권, 이충주, 조형균)이 1650점, 미라클라스(정필립, 박강현, 김주택, 한태인)이 1646점을 얻었다. 2차전은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치뤄진다. 1차전 반영 비율은 30%며 2차전 생방송 문자투표 70%를 합산해 최종 결과를 가린다.

some@mhnew.com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