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가 좋아 야구에 빠지다... 태극마크가 '최종 꿈'

▲ KBS '다큐멘터리 3일'에서 연천 미라클 선수로 등장하여 관심을 모은 배우 서휘. 향후에는 야구와 연예, 다방면에서 재주를 드러내 싶어 한다. 사진제공=샘마루 엔터테인먼트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 일반 대기업의 경영 전략 자료를 살펴보면, 가장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표현이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다. 직장 여성들의 절대 숫자가 증가하면서 생활 패턴이나 사회 구조가 변경되고, 이로 인하여 기업에서 제공하는 재화나 용역에도 변화가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스포츠 분야만큼 이러한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곳도 드문 편이다. 배구나 농구는 여성 스포츠에서 꽤 수준 높은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으며, 아직 많은 발전이 필요하겠지만, 축구 역시 각종 국제 대회 선전 이후 점차 이름을 알려가고 있다.

그러나 유독 야구만큼은 아직 '여성 스포츠'와는 약간 거리를 두는 듯한 모양세다. 야구와 비슷한 종목인 소프트볼이 어느 정도 여성 스포츠로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아니, 선수로서의 위상 뿐만이 아니라 1990년대 까지만 해도 그라운드에 여성이 등장한다는 것도 꽤 드문 일이었다. 그러다가 서울방송(SBS) TV 개국과 함께 윤영미 아나운서가 야구 중계방송에 투입된 것을 비롯하여 LG 트윈스가 야구장 최초 패션쇼를 개최한 것이 꽤 큰 변화로 다가왔다. 이제는 야구장에서 여성 팬들을 구경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으며, TV 중계방송에도 많은 여성 인재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기도 했다.

'야구선수'로 불리고 싶은 여성 인재들,
박지아, 서휘, 박민서가 야구에 빠진 이유는?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야구계에 새로운 트렌드가 창출됐다. '보는 야구'에 한정될 것만 같았던 여성의 역할이 이제는 '하는 야구'에도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수한 상황 속에서 여성 야구 국가대표팀이 발족됐고, LG 그룹의 후원 아래 여러 차례 여성 야구 국제대회가 국내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김라경(17)처럼 투-타 모두에 재능을 보이는 여성 야구 인재가 탄생한 것은 꽤 큰 성과였다.

그리고 여기, '문화뉴스 스포테인먼트팀'에서 직접 만난 여성 야구 인재들도 있다. 이미 몇 차례 언론 보도를 통하여 유명세를 탔지만, 대부분 '야구 선수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여성이라는 존재'라는 측면이 부각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본지에서는 이러한 젠더(gender) 이슈보다는 야구 선수라는 부분을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다. 야구선수 이전에 배우 겸 모델로 활동했던 박지아, 아직까지 모델이라는 칭호가 더 어울리는 연천 미라클의 서휘, 장충 리틀 야구장에서 대형 홈런포를 가동했던 성동구 리틀 야구단의 박민서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이제는 배우보다는 야구 선수로 부름을 받고 싶습니다."

시간이 될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 목동 야구장에 등장하는 박지아(25)는 올해 유독 '야구선수'로 불러 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라운드에 등장할 때마다 늘 야구공을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도 꽤 인상적. 그만큼, 야구를 하지 않을 때에는 야구를 보면서도 야구공에 대한 감촉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 간혹 선수들과 함께 캐치볼이라도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누구보다도 진중하게 연습에 임한다. 여성 선수로는 꽤 수준급인 80~90km의 속구를 던지며, 포크와 투심, 슬라이더를 던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주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다. 

현재 그녀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여성홍보위원으로도 활동중이다. 처음에는 야구에만 전념하고 싶어 해당 자리를 고사하려 했다. 그러나, 늘 어려운 사정에 놓일 수밖에 없는 여성 야구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자 고심 끝에 그 자리를 수락했다. 그래서 시간이 가용될 때마다 '여성 야구'를 위한 일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그러한 그녀에게 가장 큰 꿈은 '국가대표팀 합류'다. 특히, 내년(2018년)에는 멕시코에서 'WBSC 세계 여자 야구 월드컵'이 열린다. 협회 일정에 따르면, 내년 2월에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리는데, 박지아 역시 선발전에 무조건 참가한다는 입장이다. 올해에 이어 그녀가 또 다시 태극 마크를 달고 마운드에 설 수 있을지 지켜볼 만하다.

▲ 주요 대회가 있을 때마다 목동야구장에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박지아. 그녀 앞에 놓인 야구공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사진ⓒ김현희 기자

KBS 다큐멘터리를 통하여 대중적인 관심을 끈 선수도 있다. 박지아와 마찬가지로 배우를 겸하고 있는 서휘(24)가 그 주인공이다. 한때 그룹 LPG의 멤버로 가수 데뷔가 먼저였지만, 배우로의 변신을 시도하여 멋지게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한 그녀의 소속 구단은 놀랍게도 독립 야구단 '연천 미라클'이다. 남성 선수들처럼 숙박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연예 활동을 겸하고 있어 야구를 하는 시간이 극히 제한적이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은 다른 선수들 못지않다. 다행히 미라클 김인식 감독이 "야구에 열정적이라면, 여성이건 남성이건 전혀 관계없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그녀의 합류도 꽤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김 감독의 지도 방침 때문인지, 서휘와 함께 재미교포 출신의 여성 야구 선수 어제인(27)도 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박지아와는 달리, 그녀는 야구를 시작한지 겨우 1년이 지났다. 당연히 더 배워야 할 것도 많다. 무엇보다도 그녀 자신이 이러한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유희관(두산)이나 크레이그 킴브렐(보스턴 레드삭스)를 롤 모델로 삼고 꾸준히 피칭 연습을 하고 있다. 작은 체구에 공을 꾸준히 던지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지만, 태권도 4단에 학창 시절 육상부를 했던 경험이 현재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녀 역시 2~3년 후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 전에 배우와 야구선수, 두 분야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내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보는 야구'보다 '하는 야구'를 더 좋아한다는 그녀의 마음가짐만 변치 않는다면, 그 꿈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 투수와 타격 모두에 재능을 드러내 보이는 성동구 리틀 야구단의 유망주 박민서. 부상 없이 성장한다면, 최연소 태극 마크도 가능하다. 사진ⓒ김현희 기자

지난해 초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상당한 활약을 펼쳐 준 성동구 리틀 야구단의 박민서(13)는 사실 본지 스포테인먼트팀에서 올해 첫 인터뷰 대상자로 선정하여 만남을 가졌던 유망주다. 중학교 진학 이후에는 팀의 4번 타자 겸 마무리 투수를 맡으면서 그 기량이 한층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빠른 볼 최고 구속도 110km에 육박한다는 후문.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장충 리틀 야구장 담장 밖을 넘기는 타구를 만들어냈다. 딸의 경기가 있는 날마다 모든 경기 기록을 정리하는 아버지 박철희 씨에 따르면, 올해 그녀의 타격 성적은 84타석 63타수 26안타(18사사구), 1희생타, 1홈런을 기록했다고 한다. 타율은 0.413, 출루율은 무려 0.536에 이른다.

이에 박민서를 지도하고 있는 성동구 리틀 야구단의 정경하 감독은 "향후 한국 리틀야구에서 여자 선수가 4할이 넘는 고타율로 팀의 4~5번으로 활약하며 메달을 딴 기록은 당분간 깨지기 힘들 것이다."라며, 남자 선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그녀의 활약에 높은 점수를 주기도 했다. 그랬기 때문에, 올해 그 누구보다도 매스 미디어의 주목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유희관(두산)과 함께 잠실 야구장에서 컨드롤 대결도 펼칠 만큼,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한 그녀 역시 태극마크가 가장 큰 꿈이다. 원래대로라면,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대표팀에도 도전해 볼만했으나, 아쉽게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남성 선수들과의 신체적인 차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본인이 할 수 있는 점을 잘 파악하여 최선을 다하려 한다. 부상 없이 리틀야구단에서 꾸준히 기량을 쌓는다면, 김라경이 보유하고 있던 최연소 여자 국가대표팀 합류 기록을 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한국 여자 야구의 현재이자 미래인 박지아, 서휘, 박민서가 야구에 빠진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그저 야구가 좋았고, 야구로 인하여 새로운 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국제 여자 야구 대회에서 셋 모두 태극마크를 달고 나타나는 날이 있기를 기원해 본다.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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