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nksy, London Doesn't Work, 2006 ⓒ 마틴불

[문화뉴스 MHN 김민경 기자] 한국에서 그래피티가 요즘 한창 붐이다. 올해 초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위대한 낙서전과, 그에 이은 셰퍼드페어리를 조명한 전시, 그리고 현재 K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관람객, 예술가가 되다'시리즈까지... 게다가 아트 테러리스트라 불리는 베일에 싸인 그래피티 예술가 뱅크시 전시가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사실 외국에서는 여러해 전부터 그래피티에 대한 수요와 전시가 많아지고, 사회 비판적인 영향력이 커지는 실태다. 그래피티란 무엇이길래, 사람들이 그리 찾는 것일까? 기존의 예술로는 감지할 수 없는 무언가를 그래피티가 대신 해소시켜주는 것은 아닐지...

▲ 제우스 ⓒ 문화뉴스 MHN 김민경 기자

제우스의 흘러내리는 로고들은 기존 자본주의의 대표 브랜드들을 조롱하고, 또 한편으로는 지울 수 없는 사회의 한 단편이라는 것을 일깨우며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으킨다. 셰퍼드 페어리는 시적인 그래피티로 우리에게 정치, 환경, 사회문제를 일깨우고 정치철학적 문제에 깊이 우리 존재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뱅크시는 쥐로 대변되는 소수 약자들을 벽에 그리며, 또 사회에 폭탄을 던지고 이런 세상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역설하고 있다. 최근 뱅크시는 이스라엘 베들레헴의 팔레스타인 자치구에 이스라엘 국경선 장벽 바로 옆에 '절망의 땅'이란 대규모 설치물을 한시적으로 개관하기도 했다. 그림으로 저항하는 것을 넘어서 실제 체험으로 관람객들과 사회의 비판에 전면적으로 나서는 퍼포먼스를 시행한 것이다.

▲ 셰퍼드 페어리 ⓒ 예술의 전당

기존의 아름다움을 이상적으로 표현하는 미술에서는 더 이상 한계를 느끼고,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새태를 가장 극명하게 나타낸 것이 그래피티가 아닌지. 그래서 방식조차 누구도 몰래 벽에 '낙서'라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기존의 합법적인 방식은 어떤 해결방식도 내줄 수 없다는 것을 기존 100년간 입증했으니까. 우리는 머리에 폭격을 맞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선택지에 와 있다는 것을, 미리 회화로 예시하는 건 아닐까. 물론, 상업화 되고 기존 제도와 자본주의 논란에 종속될 운명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얼굴을 모르는 뱅크시의 선택을 보면서 그래피티 만큼은 그 야생성을 지닌 생명으로 최후의 보루가 되길 기대한다.

▲ Banksy, mild mild west, 2007 ⓒ 마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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