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시립미술관(SeMA)

[문화뉴스 MHN 권혜림 기자]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영국문화원과 함께하는 '불협화음의 기술: 다름과 함께 하기'를 9월 12일부터 11월 1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개최된다.

이 전시는 영국문화원의 8,500여 점의 작품 중에서 약 26점을 선별한 전시로, 1980년부터 현재까지 계층, 민족, 경제, 정치적 차이로 인해 불거진 영국 사회의 '불협화음'에 자신만의 언어와 목소리로 접근을 시도하는 다양한 배경과 연령대의 동시대 작가 16명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연대기적 구성에 따른 영국 사회의 역사적 서사를 풀어내기보다는 이를 배경 삼아 자신이 속한 사회의 시급하고 첨예한 이슈에 접근하는 작가들의 시선과 발화, 즉 작가들의 예술 실천에 더욱 집중한다. 이를 통해 전시는 당대의 사회적 변화와 공명하는 예술 실천의 흐름을 살피며, 나아가 이러한 사회를 향한 작가들의 활동이 개인의 인식과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실천 양식이 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이번 전시는 한영 상호교류의 해를 기념하여 영국의 공공 소장품인 '영국문화원 소장품'을 중심으로 전시 되었으며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영국에서 일어난 문화, 사회, 정치적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다양한 예술적 실천의 양상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선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어떤 작품이 있는지 미리 살펴보자.

1. '사우스 요크셔 커뮤니티 분점의 UNITE 조합을 위한 배너', 2014, 에드홀

▲ 에드 홀_South Yorkshire Community Branch. Banner for UNITE the Union - in action - 2013 ⓒSeMA

중요한 정치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1980년대 초, 에드 홀은 그가 속한 노동조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시 에드 홀은 람베스구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16,000여 명의 직원을 대표하여 람베스구의 'UNISON' 지부장으로 활동하면서 배너를 만들기 시작했다.

1999년에 람베스구 행사의 일환으로 홀은 브릭스턴 폭발에 항의하는 배너를 포함한 UNISON의 부스를 설치했는데, 이때 제레미 델러를 만난다. 이를 계기로 제레미 델러는 2000년 테이트에서 열린 전시 'Intelligence'에 에드 홀의 브릭스턴 폭발 배너를 포함했다. 홀은 2005년 제레미 델러와 알란 케인이 기획한 프로젝트인 '포크 아카이브'를 위한 배너를 제작하기도 했다.

현대미술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을 지속하면서도 홀은 배너 제작자로서 지난 30년간 그가 동조하는 가치에 힘을 보태는 차원에서 여러 압력 단체, 노동조합, 시위 등을 위해 500여 개의 배너를 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포크 아카이브'에 포함된 배너 외에도 기후 변화에 맞서는 캠페인, 강둑길에서 펼쳐진 긴축 재정 반대 행진, '쇠사슬 제작자들' 페스티벌, 전쟁에 반대하는 변호사들의 모임, 국민연금을 위한 캠페인 등을 위해 제작한 배너 15점을 함께 전시한다. 

2. '사자와 유니콘', 2012 고화질 비디오(11분 30초), 에딘버러 프린트메이커스 커미션, 레이첼 맥클린

▲ 레이첼 맥클린_MACLEAN RACHEL - P8546 - The Lion and The Unicorn 1 ⓒSeMA

레이첼 맥클린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제작한 풍경에 첨예한 사회적, 정치적 사안을 환상의 내러티브로 구성하여 담는다. 영상, 인쇄물, 사진 작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작가 자신이 기이한 복장과 짙은 메이크업으로 직접 제작 · 연출한 것이다.

'사자와 유니콘' 역시 역사적인 내용과 유희적인 동물 캐릭터, TV 인터뷰 등의 장르에서 끌어온 요소들이 이질적인 조합을 이루고 있다. 사자와 유니콘은 영국 왕실 문장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각각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며, 이 둘의 관계는 작품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2014년에 있었던 스코틀랜드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와 브렉시트로 인해 또다시 커진 독립의 목소리는 영국으로 묶인 두 국가의 꺼지지 않는 독립과 통합의 갈등을 은유한다. 

3. '포근한 담요', 2014 태피스트리 290 x 800 cm, 작가와 런던 빅토리아 미로 갤러리 제공, 그레이슨 페리

▲ 그레이슨 페리_PERRY GRAYSON - COMFORT BLANKET ⓒSeMA

도예, 판화, 자수, 영상 등 매체를 가리지 않는 그레이슨 페리는 권위적인 개념미술을 거부하고 친밀한 수공예품으로 사회를 풍자하는 비평적인 서사를 만든다. 전시된 작품 '포근한 담요'는 8미터가 넘는 대형 태피스트리 작품으로, 10파운드짜리 지폐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에는 기념비적인 모습을 통해 혼성적인 동시대 영국의 초상을 담아내는 한편 국가 이미지의 과대포장이나 편견을 드러내면서 그의 많은 다른 작업처럼 '영국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풍자를 교차시키고 있다.

4. '끝나지 않은 대화', 2012, 3채널 디지털 비디오, 컬러 및 사운드(45분), 존 아캄프라

▲ 존 아캄프라_AKOMFRAH JOHN - P8519 - THE UNFINISHED CONVERSATION X47160 04 ⓒSeMA

1980년대 영국 사회는 인종갈등을 비롯하여 파업이나 반핵, 게이 해방, 페미니즘 운동 등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반정부적 운동이 이루어진 격변기였다. 당시 존 아캄프라는 400년이 넘는 이민의 역사를 탐구했으며, 특히 1982년에는 블랙 오디오 필름 콜렉티브를 창설하여 1998년까지 영국 내 흑인의 정체성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2012년에 처음 선보인 '끝나지 않은 대화'에서는 영향력 있는 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의 삶을 따라 정체성이란 완결된 정점이나 존재라기보다는 무엇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개념을 살펴나간다. 1951년 자메이카에서 영국으로 넘어온 스튜어트 홀은 신좌파를 구축한 인물 중 하나로, 영국의 문화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지식인이다. 영상에서 홀은 개인과 사회의 정체성을 찾는 일을 논의하는데, 정체성과 민족성은 고정되지 않으며 '영영 끝나지 않는 대화’'같다고 말한다. '끝나지 않은 대화'는 사회 안에서 다르게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다름을 인지한 그 사회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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