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배우 이명행, 최재웅

[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규정지을 수 없는, 확신할 수 없는, 명확한 답이 없는.' 

배우 최재웅과 이명행은 현재 본인들이 출연 중인 연극 '3일간의비'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3일간의비'는 2003년 토니상 수상자인 미국의 유명 극작가 리차드 그린버그의 작품이다. 극은 1995년과 1960년대라는 두 시대적 배경을 자식 세대와 부모 세대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여기서 '워커', '핍', '낸'을 맡은 배우들은 각각 그들의 부모 '네드', '테오', '라이나'를 동시에 연기한다. 

낡은 일기장에 적힌, 간결하다 못해 매정하기까지 한 문장들. 아들 워커는 아버지 네드의 일기장 적힌 그 삶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무심할 수가 없다. '네드의 일기장'은 워커에게는 부모 세대들의 일상의 편린을 더듬어가게 하는 하나의 단초가 되며, 관객들에게는 자식 세대와 대비되는 부모 세대를 마주할 기회를 제공한다.

연극 '3일간의비'는 관객들의 역할을 수동적인 것으로 한정짓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만큼은 관객들이 저마다 다른 곳에 초점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낳을 자유를 부여받는다. 연극은 세 남녀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뿐 아니라, 각각 부모-자식 간의 미묘한 관계까지 얽어놓아 주제나 핵심 메시지를 하나로 압축시키기 어렵다. 최재웅 배우와 이명행 배우는 각자 비교적 명확한 분석과 아낌없는 애정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었다.

지난 달 20일, 연극 '3일간의비'가 공연되고 있는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근처에서 워커-네드 역을 맡은 배우 최재웅, 핍-테오 역을 맡은 배우 이명행을 만났다. 이들은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3일간의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연극 '3일간의비' 프레스콜 사진 ⓒ 문화뉴스 권혁재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이후 6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연극 무대에 다시 서는 소감, 그리고 연극 무대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가 궁금하다.

└ 최재웅(이하 최) : 관객들에게는 연극과 뮤지컬이 분리돼 보일 수 있지만, 무대에 서는 사람 입장에서는 똑같은 '공연'이다.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연극을 전공했다. 그러나 워낙 노래부르는 걸 좋아하니까 뮤지컬을 주로 해왔던 것 같다.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는 거창한 수식어는 부담스럽다. 이번 '3일간의비'는 인연이 깊은 악어컴퍼니 때문에 함께하게 됐다. 

대본을 읽었을 때 다른 작품과는 느낌이 달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봤을 때는 재미없었다. 하지만 재미없으면서도, 재미있는 작품이 있지 않나. 그런 작품이더라. 극적인 재미는 딱히 없는 작품이다. 그러나 TV 프로그램 중 극적 재미가 없음에도 재미를 가지고 계속 보게 되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동물의 왕국'이나 '인간극장' 등. '3일간의비'는 죽음과 관련된 극적 사건이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도 없지만, 드라마와는 다른 어떤 재미가 있는 것 같다. 

프레스콜 때 캐릭터 연구를 주로 대본 바깥에서 찾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다시 대본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 과정이 궁금하다. 왜 대본 바깥에서 찾다가, 다시 대본으로 돌아왔나?

└ 최 : 선생님들은 작품 해석할 때, '대본에 답이 다 나와 있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예전에는 가설을 많이 만들었다. '이 캐릭터는 이래서 이렇게 된 걸 거야' 라는 식으로. 물론 대본에 근거한 가설이다. 그런데 그게 위험하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하게 됐다. '지금까지 대본 분석을 제대로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최근에는 '대본에 나와 있는 정보가 이렇게 많은데 내가 왜 굳이 바깥에서 찾으려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대본을 많이 봤다. '쓰릴미'도 오랫동안 해온 작품이지만 최근 다시 대본을 정말 많이 보고 무대에 섰다. 

이명행 배우를 떠올리면 '따뜻함', '사랑'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실제로 그런 캐릭터들을 꽤 맡기도 했고, 특유의 아우라로 다양한 캐릭터를 '이명행화'시킨다. 캐릭터 구축과정이 궁금한데.

└ 이명행(이하 이) : 모든 배우들이 그럴 텐데,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캐릭터 구축에 쏟는다. 내가 가진 지식, 육체적인 모든 것을 캐릭터에 맞춰낸다. 방금 말한 지점은,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 '사랑'에 근거한 것이라 생각한다. 작품 해석할 때 그런 필터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 같다. 삶의 가치관이 캐릭터와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원래 모난 사람이 아니라서 관객 분들이 편하게 볼 수 있게 만들어드리는 것 같다.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힘들지 않은지? 

└ 이 : '3일간의비' 바로 전에 '프라이드'를 했다. 그때가 육체적으로 꽤 힘들었다. 보통 두 공연에 동시에 서지 않는다. 연습이 겹칠 수는 있어도, 공연을 겹쳐서 한 적은 없다. 그런데 이번에 극단 고래 이해성 대표님이 '불량 청년' 초연 때부터 나를 염두에 두고 계셨다고 하셔서 연극열전에 사정을 말씀드렸다. 겹치는 기간이 길지 않으니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고 하시더라. 연락을 주신 두 분이 모두 고마워 두 공연을 함께 진행하게 됐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공연 두 개에 동시에 서는 일이 정말 힘들더라. 

얼마 전 오현경 선생님께서 故 윤소정 선생님을 보내셨다. 최근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오 선생님께서 '오히려 연습실에 있어서 힘이 난다'고 하시더라. 내가 감히 선생님과 같은 위치에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나도 배우로 지내보니 배우는 연습실과 무대 위에서 얻는 에너지가 제일 크다고 느끼고 있다. 육체적으로는 힘든 시간이었지만, 무대 위에서의 피드백이랄까, 얻어가는 에너지가 많아서 정말 행복했다.

라이나는 네드에게 "넌 'Flàneur(산책자)'가 아니라 'designer'가 되어야 해"라고 말한다. 네드는 결국 디자이너가 됐지만, 아들은 플라네르가 됐다. 극 전반적으로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역할은 각각 아주 상반된 캐릭터를 보여준다. 한 배우의 상반된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각각 더블 캐스팅된 배우들 자체도 모두 상반된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최재웅과 윤박의 네드와 워커는 어떻게 다른가? 

└ 최 : 배우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다르다. 똑같은 말과 대사를 각각의 배우가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거나, 호흡, 억양 등을 다 똑같이 해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박이(윤박)는 기술적으로 완성되지 못했어도 진실함이 느껴지는 배우이다. 대다수의 배우들은 상대역과 대사를 맞추며 연습한 대로 무대에서 연기하는 게 쉽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윤박은 무대 위에서 상대역의 대사를 열심히 들으려고, 그리고 그 상대역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려고 노력하는 배우인 것 같다. 물론 다 외운 대사이고 호흡이지만, 그 안에서도 느끼고 생명력을 가지려 노력하는 것 같다. 

이명행과 서현석의 핍과 테오는 어떻게 다른가?

└ 이 : 이건 단편적 느낌이다. 현우는 매력이 굉장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관객들이 현우를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나는 관객들을 내게 몰입시키기보다, 텍스트에 나와 있는 상황에 몰입하게 만드는 편인 것 같다. 

 

 

 

네드는 말을 더듬는다. 대사 실수에 대한 부담감이 적지 않을까 생각한다. 네드 역할 맡으며 겪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 최 : 무대 위에서 말을 더듬으면 크게 티가 난다. 네드는 무대 위에서 계속 말을 더듬어야 하는 역할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더듬을까를 계산했지만, 요즘 연습할 때는 자유롭게 더듬고 있다. 

사실 지금도 말하면서 (말을) 더듬고 있다. 말을 끌기도 하고, 생각이 정리된 후에 터져 나오기도 한다. 일상에서 더듬는 순간들을 느끼고 무대에서 그대로 표현하고자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했다. 그래도 부담스럽다. 무대에서 일부러 더듬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관객이 (내 대사를)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싶기도 한다. 근데 신기한 건 내가 말을 더듬으니까 관객들이 더 잘 듣기 위해 노력해주시더라.

네드와 워커 모두 독백을 통해 등장한다. 독백이지만 방백이기도 하다. 본인을 소개하는 기능도 있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다. 특히 핍은 "네, 드디어 제 차례군요"라면서 아주 직접적으로 관객들에게 대사를 던지는데, 연기 초반부터 '관객'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낯 뜨겁기도 할 것 같다. 독백이자 방백인 이 대사들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본인만의 방식이 있다면?

└ 최 : 이런 경험을 많이 겪은 편이다. 무대서 관객과 대화 나누거나, 내레이터 같은 역들을 꽤 한 편이다. '헤드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가 관객과 긴밀히 호흡해야 한다. '판타스틱스'에선 해설자와 비슷한 역할을 맡았다. 우리 관객들은 이런 역할이나 장면을 특히 부담스러워한다. 제삼자로서 무대 위 인물들의 이야기를 지켜보기 원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나도 관객일 때, 배우가 말을 걸면 부담스럽고 싫다(웃음). 다행히 배우로서 그런 역을 많이 해봐서 이번 역할들이 부담스럽지는 않다. 특히나 이 작품 같은 경우는 정보가 굉장히 많다 보니 방백이 많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정보를 전달해야 관객들이 내용을 이해하기 편하다. 워커는 집과 아버지, 그리고 엄마 얘기로 인물에 대한 정보를 극이 시작되자마자 전달한다. 이 작품의 독특한 매력이다. 

오만석은 어떤 연출가인가?

└ 최 : 상당히 뛰어난 연출가다. 재미없는 작품을 굉장히 깔끔하게 각색했다. '3일간의비' 각색본 보기 전까지는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대사가 굉장히 많은 작품인데. 매칭을 정말 잘하셨더라. 

그리고 배우 경험이 있는 연출가니까 연기적인 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연출가의 디렉팅이 배우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만석이 형은 본인이 배우니까 어떤 감정을 요구할 때 배우가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준다. 그게 오만석 연출의 큰 장점이다.

또한, 연습실 전체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건 연출가인데, 연습실 분위기를 편하고 재밌게 만들어 주시니 작업 능률이 오른다. 배우들이 스스로 하고픈 것 드러내도록 격려한다. 

└ 이 : 배우 호흡을 잘 살펴준다. 배우가 어떻게 자기 흐름을 가져가는지 잘 알고 있다. 각색을 만석이 형이 했는데, 대본 보면서 한 번 놀란 게 있었다. 대본 리딩할 때, 눈으로 보며 대사 중간 중간 끊어 읽기를 표시하거나, 나한테 맞지 않는 말을 맞게 고치는 부분들이 있다. 만석이 형이 각색 과정에서 (호흡의) 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이미 쉼표를 찍어줬더라. (오 연출이) 직접 읽으면서 대본을 각색하니, 배우들이 읽을 때 막힘이 없다. 

배우들은 대사에 쓰인 문장부호들 많이 신경 쓰나?

└ 이 : 꼭 그렇지는 않다. 작가와 작품마다 다르다. 텍스트대로 하라고 하는 분도 계시지만, 만석이 형은 배우들이 하고픈 대로 변형해도 된다고 열어두더라.  

[문화 人] 최재웅-이명행, "'3일간의비'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 연극" ② 로 이어집니다.

key000@mhns.co.kr 사진ⓒ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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