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쇼박스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영화를 찾는 관객들 사이에서 송강호는 '그가 나오면 무조건 봐야 해', '송강호가 나오는 작품이면 좋은 영화야'라고 고정관념처럼 박혀있다. 그만큼, 송강호라는 배우가 대한민국 내에선 인정받고 있는 명품메이커 같은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밀정' 이후 약 1년 만에 공개되는 송강호의 새 작품 '택시운전사'를 향한 관객들의 기대치 또한 자연스레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2일에 개봉한 '택시운전사'는 개봉 첫날 652,383명이라는 관객 동원을 기록하면서 '군함도'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로 올라섰다. '국민배우'의 클래스가 첫 날부터 제대로 증명되는 것 같았다. 필자는 개봉하기 훨씬 이전인 지난 7월 중순, 삼청동 어느 한 카페에서 송강호를 만났다. 당시 그는 '택시운전사'로 관객들 앞에 선보일 준비를 함과 동시에 차기작 '마약왕' 촬영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 그의 인터뷰는 겸손함과 진지함, 그리고 위트가 넘쳤다. 지금부터 '택시운전사 김만섭' 송강호의 이야기가 시작되겠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선보이게 된 소감은 어떤가?
└ 현재 차기작인 '마약왕'을 찍고 있어 바쁜 스케줄을 보내고 있지만, '택시운전사'에 대한 반응들이 굉장히 열광적이고 해서 힘이 된다. 개봉하기 전에 '1980년 광주는 무겁다'는 선입견을 걱정했는데, 관객들이 역사를 통해 1980년 광주의 아픔을 극복했나로 봐주셔서 감사하다.

어떤 부분에 이 영화의 매력을 느끼고 정했는지?
└ 우선, 1980년 5월 광주를 다룬 예술작품들이 많이 있는데, '택시운전사'만의 차별화된 새로운 시선이 있었다. 위르겐 힌츠페터라는 인물의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피해자인 광주 시민이나 가해자인 군인이 아닌, 또 다른 한국인이자 제3자인 '김만섭'의 눈에 비친 '1980년 광주'라는 시선이 있어 새로웠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만섭의 실제 모델인 김사복 씨는 찾아보았는지?
└ 촬영하기 전에 여러 방도로 찾기 위해 시도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같은 이름을 가진 당시 기사분 몇 명 있었는데, 확인결과 다 아니었다. 제작진은 영화처럼 현실이 워낙 엄중하다 보니 그분이 가명을 쓰지 않았나 짐작했다.

만약, 그분이 살아계셨더라도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힌츠페터 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에 최소 40대 이상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살아계셔도, 아마 8, 90세가 되었을 것이다.

▲ ⓒ 쇼박스

'택시운전사'를 한 번 거절했던 걸 들었다. 장훈 감독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선택했는가?
└ 감독은 처음부터 내정되어 있었기에, 감독님 때문에 승낙한 건 아니다. 이 이야기 자체를 마주하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 보통 빨리 대답을 해주는 편인데, 영화 소재나 이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고민해보자'는 말도 못 하겠더라. '고민한다'는 말은 결국 '하겠다'는 뜻인데, 그렇게 말하고 나중에 안 한다고 말할 수 없기에 확실히 거절했다.

이 이야기 자체가 워낙 큰 사건이기에, 제작진 또한 대안을 빨리 찾는 작업이 아니었다. 마치 '변호인' 때와 비슷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날수록, '택시운전사'가 계속 생각나고 안 하면 안 되겠다는 열망이 생겨나, 결국 하게 되었다.

'택시운전사'가 지난 '의형제'에서 함께 했던 장훈 감독과의 두 번째 작품인데, 송강호가 지켜본 장훈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 나보다 8살 어린데도, 참 '담백한 사람'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있어 담백하다. 연출하는 사람이라면, 살을 좀 더 붙이려고 하고, 어떨 때에는 강조하고 싶고, 계속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게 기본적인 욕망인데 그런데도 자기 스스로 절제한다. 두 작품을 함께 해봤는데 나이에 맞지 않게 담백하다는 인상이 가장 크게 와닿았다.

▲ ⓒ 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장훈 감독님의 실제 성격은 상당히 내성적이고, 술을 잘 못 해서 대화가 없다. (웃음) 친하게 잘 지내는데 현장에서 많이 소통하는 건 아니다. 대신 토마스 크레취만하고는 아주 소통을 많이 하더라. 왜냐하면, 언어도 다르고 받아들이는 해석의 차이가 크게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데, 송강호의 작품 선택 기준은 무엇인가?
└ 선택의 기준을 정하라고 말한다면 '재미' 쪽이다. 근데 그 재미라는 단어가 상당히 포괄적이다. 아주 오락적인 재미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고, '택시운전사'도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재미라는 것이 유머나 '악녀' 같은 액션, 그리고 '택시운전사'가 주는 감동도 재미에 얼마든지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재미라는 것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다.

이 영화에서 민주화운동에 대해 이야기 안할 수 없는데,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건 언제쯤인가?
└ 어떤 특별한 계기를 통해 알았다기보단, 1980년대 후반으로 다다를수록 하나둘 진실이 드러났다. 힌츠페터의 취재자료를 통한 폭로도 있었고, 그 외 다른 통로도 드러난 진실들도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거쳐 온 많은 이들이 그렇게 진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송강호가 나오는 영화는 이럴 것이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 '택시운전사' 또한 그렇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다.
└ 그럴 것 같다. 아마 '변호인'의 영향이라 생각하며,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배우라는 게 단거리 육상선수는 아니다. 스포츠는 어느 지점에서 승부가 갈리고 결정되지만, 배우라는 직업은 자연인 송강호와 배우인 송강호가 평생 함께 가는 긴 여정이라 생각한다.

'변호인' 이후 '택시운전사'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연장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차기작인 '마약왕'은 이전 영화들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배우가 단거리 스포츠선수가 아니기에 긴 여정 속에서 그 구간에서 발생하는 지점이라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 ⓒ 쇼박스

한편으론, 무거운 소재를 사용한 '택시운전사'에 대해 "송강호 스타일로 밝게 풀어냈다"는 표현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 예를 들면, '1980년 광주의 이야기니까 무겁고 슬프다'는 선입견을 품고 볼 수 있기에 무조건 밝게 가야 한다고 접근한 건 아니다. 김만섭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살고 있으며, 그가 외국 손님을 태우고 광주로 갔을 때 느꼈던 감정,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 있는 희로애락이 섞여 있기에 자연스레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유머러스하게 접근하고 표현되었던 것도 있는데 일부러 계산하진 않았다.

소재가 연기하기 꽤나 까다로웠을텐데, 같은 또래로서 몰입하기 어렵지 않았는지?
└ 혜은이 씨의 '제3 한강교'는 밝은 노래인데, 그 노랫말 중 '행복 어린 거리로 떠나가는' 부분이 꼭 광주의 새벽 같았다. '제3 한강교'를 그렇게 불렀던 노래가 아닌데, '택시운전사'에선 광주 시민들이 갈망하고 원했던 사회로 감정적으로 다가왔다.

몰입하셨을 때, 부분적으로 다르지만 어떻게 잡아내셨는지?
└ 유턴할 때, 광주에서 새벽에 몰래 도망쳐 나올 때, 금남로에서 현실을 목격하는 장면 모두 상황이 다 다른데, 김만섭이라는 사람이 어떤 투사가 되어서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가장 자연스러웠던 시민의 모습이었지, 정의감이나 불의를 보고 신념이 생긴 모습은 아니었다. 그 점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다.

처음에는 무섭기도 하고 서울에 홀로 남겨진 딸을 생각해서 빠져나왔다가, 유턴할 때에는 한 인간의 도리 때문에 결심한 것이며, 시민을 도우다가 시민들이 살해되는 끔찍한 모습을 볼 때는 '시민들을 저렇게 죽일 수 있나!'하는 불합리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그리고 '피터'를 떠나보낼 때에는 '이 사실을 꼭 알려줘!'보다는 내가 태운 손님을 무사히 보내면서 느끼는 이별의 아쉬움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택시운전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장면을 꼽는다면?
└ '박중사(엄태구)'가 보내주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대본을 봤을 때 가장 감동적이었다. 실화인데, 이 영화가 명장면을 꼽는다면 주저 없이 이 장면을 택할 것이다. 가장 중요하고 인상적인 장면이고, 박중사를 맡은 엄태구 또한 매우 잘해주었다. 제작사 측에서도 "우리 영화 주인공이 엄태구인 것 같다"고 귓속말했을 정도다. (웃음)

이 영화는 광주시민의 아픔이지만, 넓게 보면 대한민국 전체의 아픔이고, 투입된 군인들의 아픔이기도 하다. 오래전에 본 다른 작품에서, 박중사 같은 군인들이 쓴 수필도 있고, 당시 기록들을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가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이분법으로 말하기보단, 우리 모두 피해자라고 말하는 게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한다.

옛날 택시인 브리사를 몰아본 소감이 어떤가?
└ 브리사가 너무 오래된 차량이라서, 국내에 없어 일본에서 수입해왔다. 금액이 1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외형이 너무 귀엽고 색감도 좋아 타봤는데, 내 몸집이 커서 그런지 되게 좁게 느껴졌다. (웃음) 그리고 에어컨이 안 되어 있어 덥기까지 했다.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브리사 차체가 작아서 연기하면 몸짓 등에서 어느 정도 제한되진 않던가?
└ 표현하는 데 어느 정도 제한된다. 두 명, 혹은 세 명의 대화가 택시 안에서 많이 이뤄지다 보니 카메라 앵글도 제한됐다. 그래서 지루함을 주지 않기 위해, 몸은 움직일 순 없어도 말의 리듬감 등을 주기 위해 애썼다.

운전과 연기를 동시에 하는데 어렵지 않았는지?
└ 베스트 드라이버라서 큰 문제는 없었다. (웃음) 하나를 꼽자면, 유턴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왜냐하면, 유턴하기에는 그 구간이 너무나도 짧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속 이어지는 도로가 아니라서 그 짧은 시간 안에 감정과 운전 모든 걸 끌어올려야만 했다.

도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면 여유로웠을 텐데, 그 당시를 그대로 재현한 옛날 거리가 길지 않아 그 구간에서 표현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있었다.

[문화 人] '택시운전사' 송강호 "1989년으로 되돌아가도, 여전히 연기할 것" ② 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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