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문득, 위즈덤 프로젝트, 봄의 주막, 난파선

[문화뉴스 MHN 서울프린지] 오는 19일부터 22일까지 4일간 진행되는 다양한 예술인들의 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로 20회를 맞은 프린지 페스티벌은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52팀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다채로운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하지만 이 많은 팀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면 프린지(FRINGE)의 알파벳 철자가 지닌 키워드를 쫓아 공연을 보는 것은 어떨까?

세 번째로 'I' Identity (자아 정체성)

평범함이 미덕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개인의 주체성은 쉽게 지워지기 마련이다. 내면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해가며 수많은 개인은 오로지 타인을 닮기 위해 분투한다. 어느새 나는 텅 빈 공허이자 뜻을 잃은 채 덩그러니 남은 기표일 뿐이다. 하지만 파편화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 기반이 흔들리더라도 우리는 살아있기에 내 안의 길을 찾아 나가는 여정을 멈출 수 없다.

7월의 끝자락, 숨을 태우는 열기 속, 분투하고 방황하면서도 삶의 주체로서의 자아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그린 4개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소외와 좌절을 천형처럼 짊어진 이들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까닭은 바로 이 이야기들이 우리를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젝트 문득의 '직면의 섬(Confrontation to the reality)'

 

'프로젝트 문득'의 연극 '직면의 섬(Confrontation to the reality)'은 타인의 이야기가 내 것이 될 때 느끼는 경계와 공감, 또 그 사이에서 발견하는 낯섦을 이야기한다. 언젠가부터 나 자신도 내 사유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타인은 의미 없는 관찰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일상 속에서 우리는 사실 많은 것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은 채 흘러가게 내버려 둔다. 하지만 돌이켜볼 때 의미 없이 흘려보낸 타인의 일은 곧 우리가 직면하고 번민하는 많은 일과 다를 바 없다. '직면의 섬'이 주목하는 개인의 자기 인식은 여기서 시작된다.

본 연극은 밀폐된 박스형태의 1인용 극장이라는 독특한 형태를 취한다. 개인적 극장이라 불리는 이 공간은 단 한 명의 관객과 단 한 명의 배우를 위한 장소가 된다. 5~7분 동안 배우는 지극히 사적인 사건을 독백한다. 이곳에서 관객은 낯선 사람이 겪는 사건에 관계된 인물이란 지위에 갑자기 놓인다. 이를 통해 느끼게 되는 경계와 공감, 그 사이에서 오는 낯선 감정을 마주하며 관객은 타인의 삶의 맥락에 자신을 놓아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45분의 시간 동안 이어서 상연되는 공연의 내용은 6명의 배우가 말하는 사건들은 수많은 개인이 공감하며 고민하는 문제들이다. 청춘이 직면하고 있는 현재의 불확실성, 회색지대(Gray Area), 자기 합리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수반되는 보호와 굴레(안정과 억압)의 양가성, 관계 안에서의 통제와 조정, 안정성에 대한 집착이 그것이다.

'직면의 섬'의 경우 거리극과 퍼포먼스, 버스킹 등 열린 공간에서 동 시간 다수에게 노출되는 형태의 공연들이 이뤄지는 길 한가운데에 1인용 박스 극장을 설치한다. 이는 관객들은 개인적인 닫힌 공간(개인적 극장)에 진입함과 동시에 경기장이라는 열린 공간 위에 위치하게 한다. 이를 통해 새롭게 구성된 페스티벌의 풍경을 다시 한번 낯설게 보게 한다는 점은 이 작품이 가지는 또 하나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아, 배우와의 거리 그리고 이야기가 나와 너무 가까워도 절대 부담 갖지 마시길. 그것이야말로 이 극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니 말이다.

#당신이_모르는_당신만의_이야기 #지극히_개인적인_극장 #프로젝트_문득 #직면의_섬

 

위즈덤 프로젝트의 '밀실'

 

'위즈덤 프로젝트'의 '밀실'은 회복 불가능한 일,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련의 과정을 주제로 한 낭독극이다. 어느 날 갑자기 밀실에 갇힌 안나는 그곳에서 만난 순자를 만나게 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밀실,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숨겨진 암호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것은 패배자로서 존재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다. 회복 불가능한 일을 겪은 이들에게 선택이라는 배려는 세상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그들은 그저 그 이후를 견뎌내야 할 뿐. 그들은 스스로를 '피해자'가 아닌 '패배자'라고 지칭한다. 스스로 패배자가 되어버린 이들과 그 인간 내면의 페르소나를 감각하는 과정을 통해 '밀실'은 인간 내면의 진정한 자아를 묻고 그것을 찾아보고자 한다.

'밀실'은 낭독극이라는 익숙하지 않을 공연의 형태이다. 주된 공연의 형태를 낭독으로 취하였지만 앉아서 대본만 읽는 고루한 공연을 생각한다면 오해이다. 낭독극이라는 형태를 '밀실'이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대해주셔도 좋을 것이다. '밀실' 관람에 또 한가지 주목할만한 점이 있다면 이 극은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상연되는 몇 안 되는 18세 이상 관람극이라는 것이다. 이는 명확한 작의와 주제의식을 가감 없이 그려내는 '밀실'만의 힘을 느끼게 한다. "표면적인 소재만 보시면 다소 불쾌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있으실 거예요"라는 연출의 말처럼 극에 드러나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은 우리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곧 극의 두 주인공을 따라가며 어느새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극을 보는 마지막 팁은 '밀실'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보시라는 것이다. 이 극에서 밀실은 절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힘드시다면 그저 작품을 편하게 관람하시라. 배우들과 함께 극을 보면서 풀어가는 것도 좋은 관객 경험이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회복_불가능을_경험한_사람_모여라 #회복_시켜줄게 #심리스릴러 #위즈덤_프로젝트 #밀실

 

봄의 주막의 '역할놀이'

 

'봄의 주막'의 연극 '역할놀이'는 자살 전염병 '롤리트'가 퍼져서 인류 대부분이 자살해버린 세상을 배경으로 한 창작극이다. 조엘 폼므라의 '이 아이'와 게오르그 뷔히너의 '보이체크'에서 구성적 영감을 받았으며 거기에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세계관인 '세기말' '종말'을 곁들인 참신함이 돋보이는 극이다. 감정과 표정으로 전염되는 '롤리트'를 막기 위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 가면을 쓴다. 종말의 시대, 법칙과 가치는 혼재되고 불명확함만이 가장 명확한 사실인 아이러니에 놓인 인물들의 이야기. '역할놀이'는 여기서 시작한다. 입구의 가면장수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여러분은 '역할놀이'의 세계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이 극은 타인이 요구하는 나와, 내가 원하는 나 사이에서의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산다는 건 끝없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선택하고 해석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해석을 한다는 것은 곧 나에 대한 규정으로 이어진다. 언제나 그것이 명확할 수 없기에, 정확할 수 없기에 규정지음의 행위는 역설적으로 내 정체성에 대한 위협이 되기도, 더 나아가 주체성에 대한 훼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 왜 우리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명확하게 규정해야 하는 걸까? 이 삶을 그저 놀이로 치부할 수 있다면? 그래 가면을 쓰자. 여러 가지 역할(자식, 부모, 직업, 친구)의 가면을 쓰고 그저 이 판에서 놀아보자. 그렇다면 조금은 즐겁지 않을까. 대표적인 소재인 가면을 비롯해 극을 가득 채우는 수많은 상징과 비유를 해석해가면서 관람한다면 더욱 다채롭게 '역할놀이'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초년_극단의_패기 #관객과_배우의_일원화 #가면장수에게_물어보세요 #봄의주막 #역할놀이

 

난파선의 'What the Oedipus'

 

'난파선'의 'WHAT THE OEDIPUS'는 '앎의 의지'에 초점을 맞추어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을 새롭게 바라본 작품이다. 대표적인 고전 「오이디푸스왕」을 재해석한 '난파선'만의 날카롭고 참신한 시각이 두드러진다. 그리스 비극 속의 테베는 역병으로 인해 혼란으로 휩싸인 도시이다. 역병을 몰아내기 위해 오이디푸스왕은 역병의 원인을 추적해 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에 대한 두려운 질문을 마주하게 되는데. 모든 이들은 오이디푸스처럼 진실을 알고자 한다. 하지만 과연 내가 알고 믿는 것만이 진실의 전부일까? 'WHAT THE OEDIPUS'는 내가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 어떤 지점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나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볼 자신 있는지를 관객들에게 묻는다. 즉, 이 극은 끝까지 진실을 알기 위해 싸우는 오이디푸스의 의지를 통해 우리에게 진실의 힘으로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책임질 수 있는지를 자문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기를 말하고 있다.

'WHAT THE OEDIPUS'는 현재의 시점에 맞게 짧은 시간 동안 오이디푸스왕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게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재해석한다. 특히 '한 여자의 죽음'은 극을 관통하는 주요 소재가 되기 때문에 관객들은 프롤로그에서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 마치 스릴러물을 보는 것처럼 사건의 전말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그것을 해소하는 즐거움을 얻으며 극을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극을 보면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코러스이다. 원작 「오이디푸스왕」과 같은 그리스 희랍극에서는 코러스가 극 진행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WHAT THE OEDIPUS'는 이를 차용하여 코러스 다양한 컨셉으로 활용한다. 때문에 민중의 목소리로, 기억 재현의 요소로, 또 작품의 해설자로 다양하게 활용되는 코러스 역시 이 작품이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아무런 요구도 없습니다. 아무 걱정 없이 재밌게 봐주세요. 나머지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책임지겠습니다."라는 연출의 말이 그저 말뿐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이유를 관객 여러분이 직접 와서 경험해보시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진실 #앎의 의지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인가. #난파선 #What_the_Oedipus

문화뉴스MHN x 프린지페스티벌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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