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5일 영면 후 7년, 꼭 기억하길!

▲ 2009년 생전 당시의 이화수 대리(사진 맨 좌측). 당시 어린이 날 경기에서 아주 운 좋게 촬영됐다. 사진에 등장하는 선수 모두 현재는 넥센에 없다. 그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다.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 그라운드에는 선수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선수들을 지도하는 코칭스태프를 비롯하여 구단 프런트도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 스포츠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프로야구에서 선수 및 감독, 그리고 프런트가 '한 방향'으로 가야 호성적을 낼 수 있다. 그만큼 프런트가 갖는 역할은 프로야구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일례로 1996년,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넥센 히어로즈 전신)가 10년간 사장, 단장, 감독이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채 한국시리즈에서 무려 네 번이나 우승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선수들은 그라운드라는 '보이는 공간'에서 제 구실을 다 한다. 이에 반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수들을 지원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바로 프런트다. 이 중 홍보팀은 구단 홍보를 비롯하여 언론 공보 활동, 언론사/선수단 인터뷰 주선, 주요 행사 소개 등 소속 구단이 내/외부적으로 '예쁘게' 보일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이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열심히 그라운드 안팎을 돌아다닌다. 그라운드의 완벽한 '조연'이면서도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야말로 '소금' 같은 존재들이다. 이러한 홍보팀 직원들 중 가장 환한 미소로 다가왔던 이가 바로 넥센 히어로즈 홍보팀의 故 이화수 대리다.

넥센 홍보팀의 '스마일 맨', 이화수 대리,
6월 25일 기일, 이제는 먼 얘기가 된 것은 아닌지 안타깝네요.

이화수 대리는 생전, 목동야구장에 들어설 때마다 가장 먼저 기자단을 반기는 이였다.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고개를 숙여 "어서옵시옵소서!"라는 특유의 말투로 친근감을 표시했던 사람이었다. 밝은 웃음이 트레이드마크였던 그는 만나는 사람 누구나 기분을 좋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니기도 했다.

늘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는 선수들이 경기 중 흥분하거나 평정심을 잃으면, 옆에서 선수들을 달래주는 역할도 자처했다. 일례로 넥센의 효자 외국인 선수이기도 했던 '클리프 브룸바'가 스트라이크 판정에 대해 주심에게 항의를 한 이후 흥분한 상태로 더그아웃에 돌아오자, 이 대리가 그를 달래기 위해 애를 쓰기도 했다. 당시 중계 화면에는 흥분한 브룸바와 함께 옆에서 그를 달래는 이 대리의 모습이 잡히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선수들과 함께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공보활동을 통하여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2009년 당시, 메인 스폰서가 없어 구단 경영에 대해 근심이 많았던 그는 한편으로는 "우리 사장님과 단장님, 참 대단하신 분 같아요. 메인 스폰서 없이 구단이 운영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들거든요"라고 말하면서 "언젠가는 메인 스폰서 구해지겠죠?"라며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지니기도 했다. 또한, "우리 사장님께서 저희에게 참 재미있는 문자를 많이 보내주셨어요. 메인 스폰서 구해지면, 꼭 그 문자 보여드릴게요. 그걸로 기삿거리 만들어도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라면서 또 한 번의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끝내 그 문자를 보여주지 못한 채 떠났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운 오늘이다.

2009시즌 종료와 함께 이화수 대리와의 만남 역시 '웃음'과 함께 끝이 났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해를 넘기기 전에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2009년 12월을 멋지게 끝마친 것과 마찬가지로, 남은 것은 멋진 모습으로 2010년에 다시 만나는 일이었다.

그랬던 그에게 '병가' 소식이 들려온 것은 결혼식 이후 얼마 가지 않아서였다.

"6월 이내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대답과 함께 밝은 목소리를 전달해 주었던 이 대리는 이후에도 꾸준한 문자 연락을 주면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암'이라는 중병에 걸렸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때였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그가 목동구장으로의 '컴백'을 약속했던 6월이 왔다. 하지만, 6월 중순까지 이 대리는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돌아오는 시간이 조금 늦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비보가 전달됐다. 2010년 6월 25일 오후 9시, 넥센 구단 측이 보도 자료를 통하여 발표한 내용은 이화수 대리가 암 투병 끝에 영면했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서른 둘의 이화수 대리는 그렇게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6월에 목동구장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 대신 부고 소식을 전해 온 것이었다.

'넥센'이라는, 8년 째 인연을 함께 하고 있는 현재의 메인 스폰서가 생겼을 때, 병중에 있으면서도 누구보다도 기뻐했던 그였다. 그러한 기쁨을 누려보지도 못한 채 먼저 갔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워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7년 전 이화수 대리가 보여 주었던 환한 미소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미안해진다. 오늘이 기일임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잊고 살았다는 점이 말이다.

이화수 대리. 분명 야구팬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넥센의 홍보팀 일원으로서 늘 선수들과 함께했고, 늘 구단과 함께했다. 그리고 넥센의 팬들로부터 '받은 것이 더 많다'고 이야기하는, 또 다른 '야구인'이기도 했다. 아마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이화수 과장'이 되어 여전히 본 기자와 농담 따먹기를 했을지 모를 일이다. 직급과는 관계없이, 늘 '넥센'의 이름으로 모인 이들 앞에서는 무장 해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2017년 6월 25일, 故 이화수 대리의 기일을 맞아 다시 한 번 그를 추모하고자 한다. 아울러 매번 보도 자료를 배포할 때마다 '홍보팀'의 일원으로 맨 마지막 칸에 이화수 대리의 공간을 남겨 둔 김기영 팀장에게도 감사 인사를 건넨다.

※ 이 글을 故 이화수 대리에게 바칩니다.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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