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년 성적은 이제 뒷전, 객관적인 선발 기준 자체가 '모호'

▲ 지난해 아시아 선수권대회 대표팀에 선발됐던 유망주들. 최상의 전력을 갖췄으나, 눈에 보이는 오심으로 최악의 대회를 치러야 했다. 이 당시 이들을 이끌었던 이가 유신고의 베테랑, 이성열 감독이다. 이 감독은 올해에도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게 됐다.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 한때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이하 KBSA)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경험이 있다. 협회 창립 이후 처음으로 관리 단체로 지정되어 협회장이 중도 퇴진하는 불명예를 맛봐야 했으며, 각종 국가 지원도 중단된 여파는 각 학교의 추가 부담으로 이어져야 했다. 동문들의 지원이 불충분한 학교의 경우, 전국 대회 참가에 따는 비용을 모두 학부모들이 떠안아야 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옛 대한야구협회는 소프트볼과의 통합으로 체질 개선에 나섰고, 첫 통합 협회장으로 김응룡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을 선택하면서 점차 체계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시스템이 다시 가동되면서 비정상으로 운영됐던 협회가 점차 정상화 되었다는 점은 상당히 반길 부분이다.

물론 아직 협회 입장에서 보완해야 할 점은 많다. 그러나 케이블 TV 채널, IB SPORTS와의 중계권 계약을 통하여 조금 더 많은 야구팬들이 고교/대학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점 등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이에 아마추어 야구 선수들도 수준 높은 플레이를 선보이며, 프로야구 중계 시청률을 앞지를 수 있다는 희망도 보여줬다. 보통 구단이나 협회 등 1개 단체가 형성되면, 그 안에서 공(功)이 발견될 수도 있고, 과(過)가 발견될 수도 있다. 현재까지는 과오보다는 고교/대학야구를 부활시키려는 공로가 더 많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 점 만큼은 확실히 인정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개 단체에서 보여 준 100가지 정책 중 공로가 있는 것이 90이고, 과오가 있는 것이 10이라면, 그 '10의 과오'를 더욱 집요하게 공격하여 90의 공로를 덮어 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협회장님,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청소년 대표팀 감독 선발 기준이 무엇인가요?

그렇다고 해서 '10의 과오'를 그대로 덮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적은 숫자의 과오도 0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정상적인 단체이기 때문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기업에서도 식스 시그마(6 sigma : 100만개 제품 중 1개 미만 불량을 목표로 하는 전사적 자원 관리 기법)를 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협회는 전국의 고교 야구부 감독들이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할 만한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해당 보도 자료의 내용은 2017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 대표팀 사령탑으로 유신고 이성열 감독을 선임했다는 사실을 골자로 한 것이었다. 물론 일반 야구팬들이 보도 자료만 읽어보면, 크게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성열 감독은 젊은 시절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꽤 오랫동안 고교 야구 선수들을 지도해 왔다. 이성열 감독이 키운 프로 선수들을 조합하여 팀 하나를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경험이 많은 현직 고교 야구 감독이 대표팀으로 선발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크게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다만, 일선 고교 야구 감독들이 반발하는 것은 다른 데에 있다. 바로 대표팀 감독 선발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일선 감독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태극 마크를 달게 될 사령탑의 기준이 협회 입맛에 맞게 바뀌었거나, 그 기준 자체가 상당히 모호할 때가 간혹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필자 역시 2009년 이후 청소년 대회에서 대표팀 감독 선임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올 때마다 '납득했던 경우' 못지않게 '갸우뚱했던 경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는 어떠한 경우에서건 한 점의 의혹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2009년 국내에서 열린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는 박태호 당시 대구고 감독(현 영남대 감독)이 대표팀에 선임된 바 있다. 그리고 강승규 당시 협회장을 필두로 한 수뇌부에서 감독 선임 기준으로 둔 것은 '전년도 성적'이었다. 대구고는 정인욱(삼성)을 필두로 2008 청룡기와 봉황대기를 석권했던 경험이 있어 당시 사령탑이었던 박태호 감독을 대표팀에 선발한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일선 감독들의 반발이 적었던 것도 협회가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2010~11년 역시 비교적 원칙이 잘 지켜졌다. 2010년에는 전년도 청룡기 우승을 이끌었던 최재호 당시 신일고 감독(현 강릉고 감독)이 대표팀에 선임됐고, 2011년에는 변진수(두산)를 앞세워 전년도 황금사자기 우승을 이끌었던 이영복 충암고 감독이 대표팀에 선임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화랑대기를 포함하여 지방대회와 전국 체육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감독들 입장에서는 다소 서운하게 받아들여졌을 수 있지만, 나름대로 큰 권위를 지닌 서울 대회 우승 경험 감독들이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점까지 이해할 수 있다. 설령 성적순으로 감독을 선발했다 해도 본인이 고사하여 다른 인사를 감독으로 선임한 경우도 있었다. 이 역시 전국 감독자 회의 등을 통하여 충분히 의사소통 되어왔던 부분이기도 하다.

문제는 최근 3년간 보여 준 협회의 대표팀 감독 선임 기준이다. 언젠가부터 '전년도 성적'은 뒤로한 채 '협회가 원하는 기준'에 맞는 감독을 선임하는 것으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준'이라는 것이 객관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저 '협회에서 지녔던 기준이 아마도 이럴 것이다'라고 추정만 할 뿐이다. 2015년에는 설악고 이종도 감독, 지난해에는 유신고 이성열 감독이 태극 마크를 달았던 경험이 있고, 두 감독 모두 30년 이상 선수나 지도자로 야구를 했다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결국, 대표팀 감독을 선발할 때 전년도 성적은 더 이상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보았을 때 전국의 고교 야구 감독들이 반발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명확한 선발 기준을 공개하고, 이에 따라 협회가 일선 지도자들이 납득할 만한 설득 자료를 배포하면 그만인데, 최근 3년간 협회는 아쉽게도 그러한 노력을 소홀히 해 왔다. 이 과정에서 협회가 선정한 이성열 감독 역시 뜻하지 않게 논란의 중심에 놓이게 됐다.

그래서 묻고 싶다.

"김응룡 협회장님! 대표팀 사령탑 선임 기준이 정확히 어떻게 됩니까? 전년도 성적이 의미가 없다면, 아예 대표팀 전임 감독을 세우시는 것은 어떨까요? 그런데 그것도 일선 감독님들의 반응이 좋지 않다고 하네요. 이러한 잡음이 계속 생기면, 대표팀 선수 선발도 다수가 납득할 만한 인원으로 구성될 수 있을까요?"

덧붙임 : 본 필자는 현재 선발된 대표팀 사령탑의 업적이나 스펙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없이 훌륭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일선 지도자들 다수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고, 이해를 얻을 만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일 뿐이다. 아직까지 협회는 야구+소프트볼 통합 이후 이전과 비교하여 꽤 말끔하게 일처리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사안이건 간에 야구 관계자 다수를 납득시키는 것 또한 협회가 해야 할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필자가 목동구장을 출입하기 시작했던 2009년 이후 2년 연속 동일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경우는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이다(아시아 윈터리그 제외).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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