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잠시나마 마음의 벽을 뛰어넘는 순간이 온다.

22일부터 25일까지 씨어터 RPG 1.7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이하 내공어)가 공연된다.

관객 참여형 공연이라는 말은 흔히 쓰는 단어지만, '내공어'만큼 그 단어가 어울리는 작품은 없다. 여타 작품들처럼 관객이 극에 도움을 주는 형태가 아니라 관객 없이는 극 자체가 성립이 불가능한 구조기 때문이다.

 

이 극은 각 스테이지 별로 준비된 배우들이 짧은 상황극을 선보인다. 그런 뒤 관객이 함께 참여해서 게임을 하고 상품을 얻는 등의 보상이 기다린다. RPG 게임의 퀘스트-성장 구조를 패러디했다. 이를 통해 백스테이지와 극장 투어를 하면서 게임을 하는 형태다. 관객들은 배우나 관계자가 다니던 곳에 직접 들어가보고 그 순간을 즐기면서 평소 느끼지 못한 '극장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극장은 우리에게 공연을 보기 위해 가는 곳이고 그 과정에서 관객이 만나는 '좋은 극장'은 좋은 화장실, 넓고 편리한 로비 등을 갖췄는지 등의 기능성에 집중된다. 하지만, '내공어'를 하는 동안에는 극장 자체가, 혹은 극장에서 보이는 풍경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소인지를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관객은 '순간이동권'을 획득하지 않는 이상 계단만을 이용해 건물 곳곳을 직접 발로 밟아야 한다. 게임과도 연계된 효과적인 표현법이다.

 

이번 '내공어' 1.7 버전은 소극장에서 시작해 분장실, 연습실, 카페, 사무실을 거쳐 대극장으로 진입하는 구조다. 출발과 끝은 같으나 나머지는 별개의 장소로 연속성을 띄지 않는다. 하지만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소극장과 대극장을 포함해 전체 장소는 '벽'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진다. 분장실에서는 공연을 올리는데 있어 불안감을 가지는 배우들과 조연출의 '소통의 벽', 연습실은 언어가 다른 안무가와 느끼는 '소통의 벽', 카페에서는 연출과 작가가 느끼는 '소통의 벽', 사무실에선 극장 직원들이 느끼는 '소통의 벽'이 존재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중에서 가장 소통이 잘되는 공간은 영어로 말하는 안무가와 함께하는 연습실이란 점이다. 안무를 가르쳐주는 형식의 단순함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서로가 몸으로 직접 자세를 낮춰 '벽을 뛰어넘는' 것을 선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과 글은 실재하는 공간, 실재하는 인간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하다.

 

공연을 올리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는 조연출(과 관객들)은 스피드 퀴즈, 연상 게임 등 각종 게임을 통해 이 소통의 벽 앞에 직접 마주서야 한다. 급기야는 마지막 스테이지인 대극장에서 직접 그 벽을 무너뜨리고 늘 관객으로만 존재하던 자신이 사실은 극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맛볼 수 있다. 관객을 위해 박수를 보내는 배우들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코믹했던 극의 톤과 달리 자못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삶 속에선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제론 번번이 그 벽 앞에서 두려워진다. 주인공에게는 많은 기회와 힘이 있는만큼 주어지는 책임감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공어'와 함께한다면 나와 나 사이에 있는 '소통의 벽'을 잠깐이나마 넘어볼 수 있지 않을까.

 

덧붙여 사무실은 배우들의 연기에 가장 주목하게 되는 공간이다. 극장 내 성폭력 예방 교육을 두고 어디서나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를 다뤘는데 스테레오타입으로 볼 수 있는 여자 후배에 대한 남자 선배의 강압적인 모습이 아니라 여성 캐릭터 세 명의 이야기인 점이 흥미롭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연기를 보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얼굴을 찌푸리는 등 불편함을 유발해 보였다. 이런 이야기가 유머로 소비되기에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내공어'가 이런 것들마저 해결해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김태형 연출, 황희원 연출, 지이선 작가가 관객들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엔 충분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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