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영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스스로 이룰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뒤에 있는 모든 사람이 도와줬기 때문에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상을 준 것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2017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문라이트' 수상 소감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영화 '문라이트'가 16일, 15만 관객(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KOBIS 기준)을 돌파했다. 15만 관객 돌파는 무엇보다 기존 흥행의 척도인 거장 감독, 스타 배우 그리고 압도적인 회차와 시간표 없이 유명하지 않은 배우와 감독, 상대적으로 적은 상영관과 좌석 수임에도 순수한 영화의 힘으로 이룩한 기록이다.
 
'문라이트'는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흑인 아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푸르도록 치명적인 사랑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의 힘은 단순히 아카데미 이슈로 인한 한시적인 효과가 아닌 SNS에서 퍼지는 신드롬에 가까운 입소문과 전 세대 공감 그리고 우리, 평범한 모든 꿈마저 안아주는 위로와 사랑의 영화로 이런 감동을 한 관객들의 'N차 관람'으로 흥행을 이끌었다. 
 
본지 석재현 기자는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문라이트'는 다인종 국가 미국사회에 걸맞은 소재(유색인종 감독이 다룬 유색인종의 성장기), 극적 요소를 가미시키기보단 잔잔하고 담담하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냈던 것이 모든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지 않았나 싶다"며 "그래서 이 시상결과가 결코 이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미국에 사는 유색인종들이 원했던 '드라마'가 아니었을까?"라고 밝힌 바 있다.
 
   
▲ 황석희 번역가 ⓒ 문화뉴스 DB
 
한편, 지난 2일 본지와 전화통화를 한 '문라이트'의 황석희 번역가는 "'문라이트'도 예매율이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5위까지 올라온 걸 봤다"며 "너무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 상황이 놀랍다. 원래 이 영화는 처음 수입사 '오드' 대표님이 구매하실 당시에 커다란 흥행 성적을 기대하시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황 번역가는 "대표님이 모험심이 강하시고, 하고자 하는 작품은 꼭 하셔야 하는 분이셨다. 나에게도 의견을 물어보고, 주변 분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봤다. 당시 좋은 답을 드리지 못했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골든글로브나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등 어떤 상을 받는다고 흥행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고, 관객이 외면하는 경우가 있다. '문라이트'라는 영화의 힘이 대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황석희 번역가는 '노예 12년'(2014년), '스포트라이트'(2016년)에 이어 '문라이트'까지 최근 4년 동안 3편의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영화를 번역했다. 그는 "다른 번역가분들과 다르게 메이저 스튜디오 작품을 덜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며 "아카데미나 골든글로브 작품상은 메이저 스튜디오가 가져가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스튜디오 작품은 주로 대중성 있는 작품을 많이 하는데, 나는 규모가 작은 작품을 많이 하는 편이다. 고르는 처지가 아니고, 황석희 번역가님께 어울리겠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위주로 작업한다. 운이 좋은 것이다. 그런 작품을 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밝혔다.
 
'문라이트'의 번역 후기를 묻자 황 번역가는 "번역이 너무나 어려웠다"며 "이런 영화를 처음 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흑인만 나오는 영화는 없었다. 백인이 주연이 아니라, 엑스트라로 나와서 한 두 마디만 하는 정도로 끝난다. 학교 선생님이나 식당 손님이 '이거 주세요' 정도밖에 없다. 이런 영화를 처음 번역했다. '노예 12년'을 봐도 백인들이 주구장창 나온다. 이 작품에 나오는 흑인 계층은 마약상, 슬럼가에 사는 '로우 라이프'다. 그러다 보니 출연자들이 흑인 슬랭을 썼다. 이 작품을 영문으로 자막 없이 다 알아들으실 수 있는 분은 진짜 영어잘하시는 분"이라고 전했다.
 
   
 
 
이어 황석희 번역가는 "예를 들어, '로우 라이프' 흑인 슬랭을 보면, 소유격이나 목적격을 쓰지 않았다"며 "'Their'나 'Them'을 써야 하는데, 전부 'They'를 쓴다. 대본이 있어서 참고했지만, '딕테이션'(받아쓰기)을 해서 나온 것이라 완벽하지 않았다. 원어민이 듣고 적었음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이다. 발음이 웅얼거리면서 나왔기 때문에, 대본도 엉망이었다. 슬랭 때문에 이렇게 고생한 작품은 없었다. 그나마 어린 시절 '리틀'과 '샤이론', '후안'의 아내인 '테레사'가 정제된 편이었다. 마지막 식탁에서 나온 '블랙'과 '케빈'의 대사는 매우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황석희 번역가는 최근 192만 관객을 동원 중인 마블 코믹스 배경 영화 '로건'을 번역했다. '데드풀', '엑스맨: 아포칼립스'에 이어 3번째 마블 작품을 번역한 그는 "다들 쿠키 영상이 있다고 소문이 나서 7분을 기다렸는데, 쿠키는 '번역:황석희'였다는 의견을 봐서 재밌었다"며 "영화 자체도 완성도가 높아서 재밌게 봤다. 지금까지 나온 히어로 영화를 모두 포함해서 세 손가락을 넣을 것 같다"고 소개했다.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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