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겸 연출가 김소희 인터뷰

   
 

[문화뉴스] 배우와 연출가로서 뜨거운 1월을 보내고, 열정적인 2월을 보내는 중인 연극인 김소희를 만났다.

연희단거리패 대표로 활약 중인 그는 현재 게릴라극장서 앵콜 공연 중인 '갈매기'의 연출을, 30스튜디오서 앵콜 공연 중인 '하녀들'의 '마담' 역을 맡았다. 사랑받는 두 작품의 연출과 배우를 오가며 지친 기색을 보일 법도 하건만, 그는 여전히 생생한 기운을 내뿜었다.

1998 서울국제연극제 신인연기상부터 동아연극상 신인연기상(2006), 여자연기상(2008), 연기상(2014), 대한민국연극상 여자연기상(2008) 등을 수상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연희단거리패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지만, 이제는 연출가 김소희로도 그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달 24일 종로구 창경궁로에 위치한 30스튜디오서 만난 김 대표는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우리도 뭔가를 드려야 한다. 우리는 지원을 받았으면 그만큼 드려야 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며 염치와 체면을 중요시하는 연희단거리패의 신념을 얘기했다. 아직도 '옳고 그름'에 대해 뜨겁게 논의한다는 그들의 일상 이야기에서,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공동체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그동안 연희단거리패는 한 해의 라인업을 미리 기획하면서, 작품의 흥행에 집착하기보다는 한국 연극계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을 한 발 앞서 고민해왔다. 공공극장이 해야 할 일들을 민간단체로서 감당해오며 겪은 문제와 고민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한 편의 인터뷰 기사로 그들의 모든 애환을 녹여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가장 최근 겪었던 문제를 짚어보며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봤다. 극단 운영에서부터 연출과 연기에 이르기까지 '연극인 김소희'의 생각을 들어보자.

 

 

   
 

후배 연극인들의 부탁으로 게릴라극장을 1년간 다시 운영하게 됐다. 게릴라극장의 1년 운영은 어떻게 진행되나?

ㄴ 지금도 매물로 나와 있다. 1년 더 마음을 먹고 라인업을 짜니까 9월까지는 금방 채워졌다. '갈매기'는 2월까지 앵콜까지 한다. 사실 1, 2월 계획을 못 세웠다가 앵콜 공연까지 급하게 결정됐다. '갈매기'는 배우들이 금방 준비할 수 있고 관객들도 많이 찾는 공연이다.

3월부터는 오동식 연출의 '변두리극장'을 하고, 4월에는 젊은 연출가들의 신작이 이어진다. 이채경 연출이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를 맡아 실험적인 뮤지컬을 꾸려간다. 올해가 윤동주 탄생 100주기다. 지난 번에 공연한 '서시'를 이번에는 음악을 다 바꿔 새로 연습하고 있다. 이후에 내 연출작 '두개의 달'을 재공연한다. 이윤택 선생님이 그 작품을 좋아하셨다.

그 다음에는 오세혁 작가의 연출작, 이해성 연출작, 젊은 연극제 등이 들어온다. 이어 매년 게릴라극장을 찾으셨던 박근형 선생님이 '골목길 프로젝트'로 6주를 사용하신다. 8월 중순부터 9월까지는 명계남 선배와 오동식 배우가 '동물원 이야기'를 새로 하게 됐다.

 

매물로까지 내놓았던 게릴라극장을 다시 운영하기로 결정내리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ㄴ 사실 게릴라극장은 재정적 문제만 없으면 연극하기에 잘 지어놓은 극장이라 (매물로 내놓았을 때) 굉장히 아까운 극장이라고 생각해왔다. 발단이 된 건 극단 고래의 이해성 연출님이 연극 '빨간 시' 대관을 위해 게릴라극장에 오셨을 때다. 셋업하시다가 갑자기 나한테 전화했다. 원래 전화하던 사이는 아니었는데 전화를 주셨더라.

이 연출님이 '극장이 너무 좋은데 여기 팔렸냐'고 물었다. 연극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큰 돈이 없으니까 안타까워하시면서 '이거 팔았으면 새 주인한테 계속 극장 건물로 사용해달라고 부탁하려고 전화했다'더라. 나도 게릴라극장이 정말 아깝다 생각했다. 극장의 분위기, 규모 등 여러 조건이 굉장히 좋다. 예술적 기운도 있고 미장센도 있다. 은행 대출 이자, 유지비, 세금 등을 계산해서 운영비가 얼마 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더니, 여러 방법을 생각해봐달라고 말씀하시더라. 40대 연출가들이 모여서 얘기해보겠다는 것이었다. 한 극단이 감당하기 어려우면 같이 할 수 있는 뭔가를 기획해보겠다고 하더라.

사실 팔지 않기 위해 우리도 여러 방면으로 알아봤었다. 서울문화재단의 극장 장기 임대 사업에 참여하는 것에 문의해보니 우리는 직접 사서 지은 건물이기 때문에 임대 지원 자격에 해당이 안 된다고 하더라. 여러모로 지원 사업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대학로엑스포럼' 같은 곳에도 말해볼까도 얘기가 오갔다. 그러나 현재는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연극인들이 모두 바빠서 얘기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게 어떻게 될지 아직 가닥이 서지는 않았지만, 1년간은 어찌됐든 운영을 해보려고 한다. 다행이도 급하게 준비한 '갈매기'가 연이어 매진 중이다. 이익을 남기려고 극장을 운영하는 게 아니니까 사실 '갈매기' 정도만 돼도 극장이 운영은 된다. 운영만 되면 어떻게든 이끌고 나갈 것 같다.

게릴라는 젊은 연출가들이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극장이다. 그래서 많은 젊은 연출가들이 좋아한다. 그동안 여기서 좋은 공연들이 많이 오르기도 했다. 오세혁, 故 김동현, 김재엽, 박근형 등의 인기작들이 여기서 처음 관객들에게 선을 보였다. '갈매기'를 통해 절망하지 말자고 내부적으로 다짐한다. 다양하고 우수한 레퍼토리를 선정하다보면 많은 관객들이 찾아주는 극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게릴라가 팔릴 뻔했다. 극장 대신 원룸이나 의상실 건물이 생길 뻔했는데, 주저하다보니 결국 팔리지 않더라. 오히려 잘된 것 같다. '갈매기'에는 젊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하녀들'도 마찬가지다. 이 젊은 배우들이 관객들과 뜨겁게 만나야 되는 시기인데, 게릴라를 통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정성스레 더 잘 만들어서 열심히 운영해보고자 한다. 당분간은 희망적으로 운영하려 한다.

 

 

   
오는 26일까지 게릴라극장서 앵콜 공연되는 연극 '갈매기' ⓒ 연희단거리패 

 

오프대학로에 위치한 두 극장, 30스튜디오와 게릴라극장의 컨셉과 정체성이 궁금하다.

ㄴ 30스튜디오는 '스튜디오'다. 금, 토, 일요일만 공연을 한다. 다만 '백석우화' 때는 관객들이 서서 보겠다고까지 해서 목요일 추가 공연을 배치했고, 나중에는 수요일까지도 공연하게 됐다. 그렇게까지 갑자기 좌석을 열어도 매진되곤 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공연을 하지 않더라도 극장 카페가 열렸으니, 관객들이 아무 때나 연극 세계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 연극인들과 관객들이 서로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자, 북카페나 서점이기도 하다. 또한 연극 관련 세미나나 개인 발표 공연의 장소로 빌려주기도 한다. 짧은 전시회나 국악공연 등 다목적 공간으로 사용된다. 현재 연희단거리패의 연습실도 스튜디오 건물 내에 위치해 있다.

30스튜디오의 개관은 연극의 의미를 극장 안에서만 찾는 게 아니라 확장될 수 있음을 알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연극을 하는 것이 '누군가를 만나러 오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지어졌다. 그래서 우리한테 카페 '꽃을 바치는 시간'(30스튜디오 1층에 위치)은 매우 중요한 존재다. 예술에 대해 어느 이야기든 할 수 있는 공간이자, 연극인들이 어떠한 작당이든 기획할 수 있는 곳이다.

게릴라극장은 아무래도 굉장히 실험적이고 연극적 개성이 강한 연극들이 찾아주는 극장이다. 젊은 연극, 젊은 팀과 계속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올해는 오세혁, 이해성, 박근형 연출가들의 팀들이 와서 공연한다. 젊은 연극제도 꾸준히 하고 있다. 더불어 연극계 원로들과도 원활히 만날 수 있다.

 

부산에 위치한 가마골 소극장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 이윤택 예술감독은 '기장의 문화 거점'으로 삼을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이 극장의 소개도 부탁드린다.

ㄴ 가마골소극장은 작년에 연희단거리패 창단 30주년 기념으로 개관하려고 했다. 그런데 자금이 부족해 건축이 중단됐다. 올 3월에는 31주년 기념으로 개관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원래 우리 극단이 부산에서 시작됐다. 그곳이 이윤택 선생님 고향이기도 하고, 선생님께서 다시 고향에 가겠다는 의지도 있다. 그래서 이 공간은 선생님이 직접 주도하시는 새 공간이다. 부산은 서울에 비해 연극을 접하기 어렵다. 소극장 공연들은 특히 더 그렇다. 가마골소극장은 부산 연극의 새로운 문화를 시도해보려는 극장이다.

또 안데르센극장을 위탁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가족극 위주로 공연한다. 어릴 때 관람하는 연극은 교육적 효과가 대단하다. 또한 그들은 잠재적 연극 관객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부산 기장에 '신바람', 밀양에 '반달'이라는 어린이극단들을 만들었다. 실제로 영국에 가면 노인들도 연극을 보러 많이 오곤 한다. 어렸을 때 연극을 자주 보고 자라다보니, 연극이 그들의 일상으로 스며든 것이다. 서울은 이미 어린이극단이 많고 지방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우리 극단이 지방에 갈 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가족극'이다.

한편, 젊은 팀들이 모여 만든 극단 가마골이 있다. 그 극단은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는 장으로 만들려고 한다. 우동집이나 아이스크림 가게 등을 할까 고민하는 중이다. 어떤 연극은 예술을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충족이 되는데, 어떤 연극은 그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관객들에만 포커스를 맞춘 연극을 계속할 수도 없다. 그건 연희단거리패의 방향이 아니다. 우리 극단은 생활공동체니까 운영을 위해, 또한 연극을 보다 우리 마음껏 하기 위해 경제적 자립이 되어야 한다. 30스튜디오도 카페가 잘 되면 금~일요일만 공연해도 하고 싶은 연극들을 감당할 수가 있다.

 

 

   
30스튜디오에 위치한 카페 '꽃을 바치는 시간' ⓒ 연희단거리패

 

카페나 우동집이 함께 있는 극장, 굉장히 흥미롭다.
ㄴ 30스튜디오 카페 '꽃을 바치는 시간'이 잘 되길 바란다. 쉽지 않겠지만 경제적 자립과 우리의 예술 활동이 한 건물 안에서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하고 있다. 어떤 지원 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게 가장 좋은 거니까.

이윤택 선생님이 극장을 이쪽(30스튜디오)으로 옮겨야 된다고 판단하셨던 것은, 연극 환경이 아마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측하셨기 때문이다. 아예 돈을 잘 버는 연극을 하겠다고 작정하지 않는 한 연희단거리패 성격 같은 집단은 연극을 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연극이 사회적으로 해야 되는 소명을 고민하는 집단이니까.

상업주의가 만연해있는 사회 속에서 우리 연극은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숙소와 사무실이 모두 모여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셨다. 어려워질 수 있는 환경에 대비하는 '연극 방공호' 같은 공간이다. 지어놓고 나니 관객들도 이 공간을 좋아하시더라. 관객들이 포스터를 보고 예매를 고민하는 순간부터 연극이 시작된다. 우리와 관계가 시작된 관객들이 공연보기 전 잠깐이라도 극장 카페에 머무는 시간, 여기서부터 연극적 환경에 모여 있도록 고안한 공간이다.

 

사실상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가장 통렬히 체감하고 있던 극단 중 하나다. 연극계 원로이자, 버팀목으로서 문화계 보이지 않는 못된 손에게 농락당하고 있었음에도 연희단거리패는 그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 동력이 무엇일까?

ㄴ 이윤택 선생님께서 '어떤 게 멋진 삶이다'라며 워낙 세계관, 인생관이 있는 삶을 줄곧 말씀하셨다. 우리 집단은 그것에 근접해 있다. 인간은 그 축적된 행동으로 보인다. 밀양연극촌 벽에는 '나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문구가 붙여져 있다. 선생님이 이런 입체적인 분이셔서 나와 타인, 나와 사회, 그런 것에 뻗어 계신 분이다.

여기 오래 남은 사람들은 늦게까지 일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일하는 사람들이다. 굉장히 부지런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극단 생활하는 게 정말 빡빡한 삶이다. 몇몇 남자 단원들은 군대가 더 편하다고 말할 정도다(웃음). 일이 정말 많다. 일을 하지 않으면 유지가 되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조인곤, 김미숙, 이승헌 등의 단원들은 다 그런 성향에 동의하거나, 실제로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남게 된 것 같다.

염치와 체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우리도 뭔가를 드려야 한다. 우리는 지원을 받았으면 그만큼 드려야 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부끄러운 짓이라고 생각한다. 이윤택 선생님이 그런 면을 우리에게 가르치셨고, 또 본인도 그런 면에서는 확고하시다. 그 부분에 있어서 같은 결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남아있다. 그래서 세부적, 실제적인 의견에서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전체적 기본 방향에 있어서는 멤버들 간 큰 이견이 없다.

우리의 대화는 주로 '이것이 의미 있는 일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20세기적인 것 같기도 한데, 이게 옳으냐 아니냐, 부끄러우냐 아니냐에 대해서 얘기들을 상당히 많이 한다. 그래도 이윤택 선생님 덕분에 방향이 꽤 빠르게 정해진다. 지속적으로 같이 사니까 이윤택 선생님께 연극만 배운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나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들을 계속 배우지 않았나 한다.

우린 아직도 배우들한테 '신념' 얘기를 많이 한다. 연기가 분명한 기술이긴 하지만, 연기라는 기술을 부릴만한 각자의 내용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 문제로 젊은 배우들한테 상당히 스트레스를 준다. 늘 묻는 질문이 '너는 네 삶 속에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냐'는 것이다.

 

 

   
오는 19일까지 30스튜디오서 앵콜 공연되는 연극 '하녀들' ⓒ 연희단거리패

 

'하녀들'을 30스튜디오의 첫 프로그램으로 선정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극중극 쏠랑쥬와 끌레르가 펼치는 연극놀이는 마치 연희단거리패가 연극을 현실의 대안으로 삼은 모습과 비슷한데.

ㄴ '하녀들'을 부조리극에 대한 강의와 함께 진행할까 하다가 공연만 하게 됐다. 일단은 규모가 작은 작품이면서 우리의 레퍼토리 작품 중 하나다. 연극을 하다보면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자꾸 신작을 좋아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관객들이 다시 보고 싶어 하는 레퍼토리들도 많다.

우리는 공연을 계획하며 이 작품이 지금 우리 사회와 맞아 들어가는 부분이 있는지 고민해본다. 지금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지 살펴본다. '하녀들'은 그런 부분이 상당히 맞아떨어졌다. 지난 해부터 언급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문제들을 보자. '왜 이렇게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을까', '왜 모였을까' 싶었다. 나도 광화문에 자주 갔다. 거기 가면 사람들이 싱글벙글 웃고 있다. 어찌나 질서를 잘 지키는지 유모차가 지나가면 다들 질서정연하게 비켜준다.

그러나 지금껏 인심이 그렇지 못했다. 원래는 굉장히 각박하고 야박하고 얄팍하고 격이 없는 사회였다. 몇 년간 그게 극심해진 것 같다. 돈 얘기만이 자연스러워지고, 뻔뻔스러운 태도도 당연시됐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걸 발견했다. 삶의 멋이 없고, 격이 없는 사회 속에 살다가 광화문에 가면 사람들한테서 격이 느껴진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아서 계속 갔다. 이렇게 평화로운 얼굴로 수십 만의 사람들이 함께 축제처럼 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하녀들'이 그 얘기다. 꿈꾸는 것은 자신의 격이고 인간의 격이다. 그걸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겠다는 것이다. 핍박을 받았다면 돈 훔쳐 달아나도 되는데 쏠랑쥬와 끌레르는 그러지 않는다. 그리고 하녀들이 어울리지 않는 격조 높은 말을 쓴다. 인간의 무너진 격을 다시 세우려는 투쟁이다.

 

 

   
 

 

쏠랑쥬를 거쳐 마담에 이르기까지. 연희단거리패의 김소희는 독보적인 배우였다. 산울림에서 쏠랑쥬 역을 맡았을 때와 두 명의 쏠랑쥬를 바라보는 마담 역으로서의 기분이 궁금하다.

ㄴ 기분 좋다. 황혜림, 배보람에 이어 올해 김아라나, 서혜주까지. 초연 '하녀들'은 故 이윤주와 내가 같이 했다. 여배우가 사회적인 의식, 아주 깊은 내면을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다. 쏠랑쥬는 바닥에 있기 때문에 숭고함을 꿈꾼다. 이 하녀들은 수치와 모욕을 견딜 수 없다. 진흙탕에서 숭고함을 꿈꾸는 인물이다. 좀처럼 여배우에게는 찾아오기 힘든 주옥같은 대사나 관념적인 언어들이 어렵지만 매력적이었다.

보통 여배우에게는 감성적인 언어가 주어진다. 존재론적이고 관념적인 대사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역할은 거의 없다. 그런데 '하녀들'은 그 언어들이 주어진다. 그런 언어를 배우가 뱉어내려면 많은 걸 생각해야 하기에, 배우는 그 숙제를 통해 성장한다. 쏠랑쥬 역을 맡으며 나도 배우로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 역할을 쉽게 하는 배우는 없을 것이다. 무대 뒤에서 후배들이 연기하는 것을 귀로 듣고 있다보면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전에는 이 친구가 이 정도밖에 못했는데, 이제는 이걸 하네' 라며 혼자 생각한다. 뒤에서 후배들의 연기를 듣다 보면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성장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기특하다.

 

故 이윤주 배우와 마흔을 넘기면 나이든 하녀를 연기해보자고 다짐했던 것으로 안다. 만약 실현됐다면, 나이든 쏠랑쥬 김소희와 나이든 끌레르 이윤주의 모습은 어땠을까?

ㄴ 끝내줄 것이다. 장 주네가 원래는 나이 든 하녀들을 생각했다고 한다. 나이 든 하녀들의 이야기가 된다면, 그들을 그 나이까지 버티게 한 게 '연극'이 된다. 여태껏 실행을 못했으니 연극을 하며 버틴 것이다. 나이 든 하녀들이 나온다면 연극의 의미가 더 강해질 것 같다. 페이소스도 더 생기겠다. 체력적으로 많은 소모가 큰 작품이다 보니, 만약 정말 다시 하녀 역을 맡게 된다면 운동을 많이 해야 될 것 같다.

 

 

   
 

 

배우 김소희는 이윤택의 페르소나라 불린다. 오랜 기간을 배우로 지냈고, 배우로 수많은 작품에 참여했다. 내공이 쌓인 배우에게 '연출'은 어떤 의미인가? 연출가 김소희는 무엇에 중점을 두는가?

ㄴ 그 동안 내가 연출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연출을 잘 하는 분들이 워낙 많고 내가 연출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단 규모가 커지면서 젊은 단원이 많아졌다. 이윤택 선생님 혼자서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 현재 배우만 50여 명 있다.

계속 큰 작품만 할 수도 없고, 배우들이 계속 성장하려면 무대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나아갈 계기가 늘 필요하다. 작품이 계속 필요하니 연출도 필요하게 됐다. 외부 연출가가 와 주면 좋겠지만, 우리 시스템이 공동체 생활이다 보니까 그게 쉽지 않더라. 그래서 우리 극단 안에서 선배 배우들이 연출을 하게 됐다. 이승헌, 오동식 배우도 그렇게 연출을 맡았다. 김미숙 배우도 전통과 관련된 가족극의 연출을 맡고 있다. 나도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연출을 하게 됐다.

연출을 시작하며 '관객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적어도 지겹지 않고 신선한 공연을 해야할 텐데'를 고민하게 됐다. 그런 작품을 해야 극단 후배들에게도, 관객들에게도 보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극 '갈매기' 프로그램북에 '연출가는 대본과 배우 사이에 아주 좋은 매개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썼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젊은 배우들에게 교육적으로 좋은 기회를 줄 수 있게, 또한 그들이 한 배우로서 매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다.

좋은 대본과 좋은 배우들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자로서 존재하고자 한다. 나는 관객들에게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작품을 만들려는 연출가다. 얼마 전에 이윤택 선생님한테 '워크숍 전문 연출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배우가 성장할 수 있는 워크숍 작품을 맡고 싶다. 좋은 대본을 만나고 의욕이 넘치는 배우들을 만나, 관객들에게 그 사이에서 뭔가를 찾아갈 수 있게 하는 작업, 나의 연출작업은 그런 식이 될 것 같다. 다음 작품은 아직 계획된 게 없다.

 

연극 '갈매기'가 연이어 호평을 받고 있다. 모든 등장인물을 '갈매기'로 만든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굉장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체홉은 극중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겪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을 고르게 소개한다.

ㄴ 보통 지금까지 많이 봤던 우울하고 침울한 '갈매기'를 생각하고 오시면 안 된다(웃음). 삶의 진실이 보이는 대로 작품을 만들었다. 모든 인물이 관객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연극이 영화나 TV와 현격히 다른 점은, '내가 오늘 여기 있다'는 것이다. 배우와 관객 모두 말이다. '오늘 우리는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에 이곳에서 만났다'는 것. 100명의 관객이 왔어도 한 관객은 100분의 1이 아니다. 관객 한 존재와 나의 한 존재, 옆에 앉은 저 사람과 나의 존재, 우리가 지금 이 순간 한 공간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나는 게릴라극장에서 '갈매기'를 보는 70여 명의 관객이 각자 다다른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관객이 연극을 볼 때 여러 잡생각을 하면서 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모든 인물이 다 '갈매기'라고 생각했다. 일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갈매기이다.

멀리 나는 것을 꿈꾸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 물론 몇몇은 멀리 날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다.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4명의 예술가(아르까디나, 트레블레프, 트리고린, 니나)가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상당히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게 바로 관객들 본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배우들에게 주문했다. 관객이 자신을 보며 다른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게 하라고 말이다.

 

 

   
 

 

올해 계획은?

ㄴ 극단 한 해 계획은 세웠지만, 딱히 내 삶의 계획은 따로 세우지 않았다(웃음). 개인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편이 아니다. 굳이 있다면, 30스튜디오와 게릴라극장을 잘 운영해서 두 극장이 함께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관객들이 알아주고 찾아와준다는 것. 이런 것들을 이루고 싶다.

 

마지막으로 관객 분들께 하고픈 말은?

ㄴ 요새 '하녀들'과 '갈매기'를 하며 느끼는 게, 어디서 이분(관객)들이 이렇게 시간을 맞춰서 와주셨을까, 퇴근하고 힘들 텐데 여기까지 찾아왔을까 생각하게 된다. 매번 관객들이 오시는데도 신기하고 너무 감사하다. 30스튜디오도, 게릴라극장도 연극을 보러 '찾아와야' 하는 곳이다. 찾아와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 연희단거리패는 고여 있거나 멈추지 않고 달려가려는 곳이다. 그분들이 찾아와주신다는 것은, 연극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우리의 노력을 알아봐주시는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더 다가와주시면 감사하겠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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