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브 슈바이처, 레미 Remi, 종이에 잉크, 2012년, 21cm x 19.7cm

[문화뉴스] 자신이 만나는 삶들의 엑기스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인 후 초상화로 나타내는 작가 데이브 슈바이처가 13일부터 2월 19일 국내 첫 개인전을 스페이스비엠에서 개최한다.

데이브 슈바이처 작품의 결과물은 의도하지 않은 우연과 그림을 그릴 때 그가 느꼈던 감정과 몸의 움직임을 통해 나타난다. 추상적인 작품들은 모델이 됐던 사람이나 상황, 장소의 "내면을 그린 초상"이다. 데이브 슈바이처는 "실제의 묘사보다 추상적 발현이 더 사실적이고 대상의 참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2001년 12월 활동을 처음 시작한 데이브 슈바이처는 '포지티브(POSITIVE)' 시리즈로 주목받았다. 또한 '포지티브' 시리즈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기를 조각낸 후 색동보자기처럼 조각을 이어붙인 작업인 '두개의 민족, 두개의 나라. 하나의 미래' 시리즈를 통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사회의 문제와 불평등에 대해 언급하는 작업을 주로 하던 데이브 슈바이처는 작가로 활동하던 약 10여년간 알콜과 마약을 남용하면서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됐다.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스스로 정신 병원에 입원한 후로 병원에서 허락하는 미술 도구만으로 그림일기를 그리듯 데이브 슈바이처는 드로잉을 시작했다.

이러한 작업들은 데이브 슈바이처가 느낀 수치심, 절망, 용기, 아픔, 희망, 광기와 고통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생사의 고비를 겪으며 느낀 강한 감정들과 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그리고 극복의 과정을 담담히 기록한다. '정신병원에서 드로잉' 시리즈는 한 개인의 생로병사와 삶에 대한 솔직한 기록이자 우리 모두의 고통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데이브 슈바이처의 작품에서는 그가 말한 대로 '우연'으로 보이는 점이나 선, 면, 색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주로 빨간색과 파란색, 검은색으로 이뤄진 그의 작품은 보기만 해도 아픔이 묻어나오는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동화 같은 신비스러움이 담긴 작품들도 여럿 보인다. 정신병원에 있는 그를 바라보듯 그의 감정, 그의 세계관이 작품을 통해 쏟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1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그의 말을 통해서 더 직접적으로 감정을 느껴볼 수 있었다.

   
 

전시 기획 배경은?

ㄴ 정혜연: 이번 전시는 총 54점의 드로잉 작품으로 이루어졌다. 데이브 슈바이처의 드로잉들은 사연이 있다. 처음 2001년에는 개념 미술을 하고, 4년 전까지만 해도 2년 동안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이 그림들은 정신 병원에서 데이브가 그렸던 작품들이다.

 

정신 병원에 들어간 이유가 무엇인가?

ㄴ 정혜연: 2001년 첫 작업이 'HIV POSITIVE'였다. 이 작업이 언론이나 사회에 알려져서 유명해졌다. 그 이후에 많은 파티에 참가하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술과 마약에 접했다. 그리고 마약 중독이 너무 심해져서 거의 죽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더이상 버틸 수 없겠다는 마음에 스스로 정신 병원에 입원했다.

 

'HIV POSITIVE'가 무엇인지.

ㄴ 정혜연: 양성애자, HIV POSITIVE 감염자들 14명의 피를 받아서 그림을 그렸다. 본인의 피까지 섞어서 총 15명의 피를 이용하여 25점의 그림을 전시했다. 기획 의도는 "아름답기 때문에 피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편견을 깨자"는 것이었다. 본인도 양성애자라서 지인과 감염자들이 느끼는 고통이 '육체적인 고통보다 사회적인 편견이나 멸시에서 온다'는 것을 많이 목격하고, 느꼈다. 안타까운 마음에 'HIV POSITIVE'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

 

정신병원에서 어떻게 작업할 수 있었는지.

ㄴ 정혜연: 입원하고 2년 동안 괜찮아지면 잠깐 나왔다가, 안 좋아지면 다시 들어가는 식으로 생활했다. 정신병원 독방에서는 할 수 있는 것에 제한이 많았다. 공간도 협소하고, 할 수 있는 건 드로잉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수채화만 사용할 수 있었고, 유채는 전혀 사용하지 못했다. 수채화로만 작업했고, 마치 그림일기를 그리듯 매일 엄청난 양의 작업을 했다. 계속 개념 작업을 하다가 정신병원에서는 '제한된 공간에 홀로 남겨진 자신의 내면'에 대해 표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감정이나 삶, 생각, 기억, 주변 사람들 등에 대해서 그림을 그렸다.

   
 

 

전시회가 열리게 된 소감은?

ㄴ 정혜연: 전시회를 보여주기를 계속 바랐지만, 적당한 시기와 좋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데이브 슈바이처는 대표님이 3년 전에 소개를 해주셨고, 작년 초에 처음 만났다. 처음 봤을 때 생각보다 잘생겼고 굉장히 스마트했다(웃음). 대화도 잘 통해서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 원래 작년 5월 전시를 진행하려 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뤄져서 올해 1월에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로 전시하게 됐다.

ㄴ 데이브: 몇 년 전에 심각한 술, 마약 중독에 걸렸다는 것을 깨닫고 삶과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삶을 택했다. 살기 위해서는 술과 마약을 끊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2년 정도 들어갔다. 병원에 있을 때는 도구를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작은 종이에 드로잉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일기처럼 그림을 그렸고, 그 때문에 그 그림을 그릴 때 어떤 감정이었고, 어떤 생각이었는지 다 알고 있다. 다만, 건강이 굉장히 안 좋을 때 그렸던 그림들은 잘 기억이 안 나는 것들도 있다. 나는 작품활동 덕분에 오랜 기간을 버틸 수 있었고, 내가 살아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매일 작품 활동을 했다. 작업할 때는 희망, 슬픔, 고통을 극복한 성취감 등 다양한 감정들이 가장 중요했다.

ㄴ 정혜연: 참고로, 지금은 술을 완전히 끊었다(웃음). 끊은 지 4년 됐다. 요즘은 음식을 먹을 때 조금의 알콜이라도 들어있을까 봐 식초도 잘 안 먹는다.

 

기억나는 작품이 따로 있는지.

ㄴ 정혜연: 'remi alone in the world'라는 작품이다. 유명한 원작 동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이다. 레미라는 어린아이가 전 세계 여러 곳을 자신의 강아지, 원숭이와 여행을 한다. 항상 그 아이가 느끼는 것은 '세상에 혼자라는 외로움'이었다. 데이브 슈바이처는 그림에서 한 번도 하트 모양을 써본 적 없었는데, 레미가 느끼는 외로움에 공감하고,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소리치며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하트 모양을 썼다고 했다.

 

   
 

작품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특별히 있나?

ㄴ 데이브: 작품을 보면, 감정이 다 다르다. 순간순간 느끼는 것이 다른데 그것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ㄴ 정혜연: 데이브는 굉장히 극단적인 감정 기복을 가졌다.

ㄴ 데이브: 작품에 표현한 감정들이 다르듯이 작품마다 시그니처도 다르게 표현했다. 우울한 그림에 나타난 시그니처는 힘이 없고, 긍정적인 그림의 시그니처는 굉장히 자신감 넘친다.

 

가장 힘들었을 때 그린 그림이 무엇인가?

ㄴ 데이브: 기분이 안 좋을 때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을 치곤 한다. 정말 심하게 기분이 안 좋으면 그 바닥마저 없고, 지탱할 것 없이 공중에서 자꾸만 추락하는 느낌이 든다.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까지 하게 된다. 병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작품이 가장 힘들었을 때 작품이다. 'sadness needs company'라는 말이 적혀있는데, 이 문장 자체를 적어넣을 때도 손이 자꾸 떨렸다. 맨날 파티하고 놀 때는 모든 사람들이 날 사랑하는 것 같았지만, 정말 아프고 안 좋아졌을 때 진짜 친구가 누구고 누가 날 사랑하는지 알게 됐다. 날 지탱해줬던 가족과 친구들 덕분에 나는 아직 살아있다.

ㄴ 정혜연: 그때 데이브는 정말 다 죽을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ㄴ 데이브: 중요한 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주변에 알리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날 도와주면 더 빨리 회복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할 때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인생을 바꾸고자 노력하면 변할 수 있다. 나는 해냈고, 지금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알버트 슈바이처'와 '장 폴 사르트르'와는 어떤 사이인가?

ㄴ 데이브: 미술을 전공하지 않고, 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했다. 데카르트의 책을 읽던 중 자꾸만 슈바이처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봤다. 알고 보니, 알버트 슈바이처는 내 증조할아버지의 삼촌이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최근에 알게 됐는데 장 폴 사르트르의 조카가 우리 엄마였다. 두 명의 노벨 수상자가 내 사촌이다.

 

현재는 어떻게 작품 활동을 하는지.

ㄴ 데이브: 지금은 스냅샷을 찍듯 그림을 그린다. 감정을 한 번에 쏟아내는 그림이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할 수 없다. 정신병원에 있을 때와 다른 점은 조금 더 규모가 커졌다는 점이다. 한국에 와 있을 동안에도 6 작품 정도를 그렸다. 올해 11월에는 HIV POSITIVE 작업을 다시 하고 싶다.

 

특별히 좋아하는 색깔이 있는가?

ㄴ 데이브: 나는 파란색과 빨간색을 좋아한다. 한국의 색이기도 하다(웃음). 파란색과 빨간색은 감정을 드러내는 데 좋은 색깔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작품에서는 빨간색을 따뜻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색깔로 썼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굉장히 폭력적이고 강렬한 색깔로 빨간색을 사용했다.

 

작품의 이름이 특별하다. 어떤 방식으로 이름을 짓는지.

ㄴ 데이브: '신경질적인 플루트 연주자'라는 작품은 내 자화상이다. 버릇 중에 손톱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데, 시적으로 표현했다기보다는 내 맘대로 이상하게 표현했다(웃음). 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하다 보니 가끔 이렇게 특이한 작품 제목이 나온다.

   
▲ 데이브 슈바이처, 우리는 여름휴가를 간다, 종이에 잉크, 2012년, 21cm x 19.7cm

[글] 문화뉴스 박다율 인턴기자 1004@mhns.co.kr
[사진] 스페이스비엠, 문화뉴스 김민경 기자 avin@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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