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예지(오른쪽)와 김재욱(왼쪽)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뉴스] 특유의 세심함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감독 조창호가 영화 '다른 길이 있다'를 들고 찾아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무거운 마음을 안고 속초행 버스 안에서 낯선 여성과 눈이 마주쳤던 오래전 기억과 한강 공원 얼음 위를 걸으며 죽음 가까운 체험을 했던 위태로운 이야기를 더해 조창호 감독은 얼음 같은 영화 '다른 길이 있다'를 만들어냈다.
 
조창호 감독은 '피터팬의 공식', '판타스틱 자살소동', '폭풍전야'에 이어 예술과 상업 그 가운데 선 '조금 더 순수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삶과 죽음'을 다룬 영화 '다른 길이 있다'는 특유의 색감에서도, 영화에서 느껴지는 온도에서도 자신만의 특징을 드러냈다. 차가움과 따뜻함, 삶과 죽음 등 극단적인 두 아이템을 섞이지 않게, 한곳에 모아두는 것도 조창호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영화는 전신 마비의 어머니를 돌보는 이벤트 도우미 '정원'과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경찰관 '수완'이 각자 흰 새와 검은 새라는 닉네임으로 사이트에서 만나 동반 자살을 도모하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90분의 러닝타임동안 나타나는 이 둘의 삶을 통해 우리는 고통과 연민, 삶과 희망을 모두 볼 수 있을 것이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 '제19회 상하이국제영화제', '제22회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2016 블랙무비-제네바필름페스티벌'에 출품한 적이 있는 '다른 길이 있다'는 멀고 먼 길을 돌아 드디어 관객을 찾아왔다.

* 본 기사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조창호 감독이 포토타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개봉 소감은?
ㄴ 조창호 :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웃음). 앞으로 기적이 많이 일어나겠지만, 하나의 기적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두 배우가 캐릭터를 만났을 때 든 생각은 무엇인가?
ㄴ 서예지 : 사실 '다른 길이 있다'가 개봉을 못 할 줄 알았다. 못한다기보다는 하지 않고 있어서 '언제 개봉할까' 내심 걱정했는데, 오늘 굉장히 감회가 새롭다. 지금까지 영화를 총 여덟 번 봤는데 볼 때마다 지치지 않고, 지겹지 않고 금방 끝난다는 게 영화에서 나타나는 희망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처음 캐릭터를 보는 순간 정원처럼 우울하고 암울한 느낌이 많이 들었지만, 희망을 찾고 싶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어서 아픔에 공감하고 희망도 얻은 좋게 봤다.
 
김재욱 : 나도 딱히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영화를 많이 봤고 애정이 있다(웃음). 배우로서 늘 기다리는 시나리오가 있다. 한 명의 영화 팬으로서 어떤 작품을 볼 때면 '나도 이런 작품을 출연해보고 싶다'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시나리오는 글로 봤을 때 배우가 어떤 느낌으로 읽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작품들이 있는데 '다른 길이 있다' 같은 경우가 나한테 딱 그런 경우였다. 읽는 순간 '아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내가 발로 뛰어다니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운명적으로 만나고 싶다고 희망하던 작품을' 다른 길이 있다'로 만났다. 시나리오를 보고 다음 날인가 다다음 날 바로 감독님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내가 시나리오에서 느꼈던 부분과 감독님이 그리고자 했던 작품의 방향성이 비슷해서 고민할 여지 없이 출연을 결정했다. 그리고 영상으로도 잘 나와서 너무 소중하고, 애정이 많은 작품이다.
 
   
▲ 김재욱 배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캐스팅에 관련된 후담이 있는가?
ㄴ 조창호 : 내가 캐스팅했다기 보다는 두 분께서 나와 나의 작품을 선택해주셨다.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싶고, 처음 만났을 때 생각이 난다. 개인적으로 수완이라는 역할은 '실제로 착한 사람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김재욱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이 사람 정말 착한 사람이구나'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느낀 거지만 이미 결정을 끝내놓고도 또 한 번 되돌아보는 듯한 느낌, 확신 앞에서 서성이는 느낌이 수완의 캐릭터와 닮아있어서 그런 부분 때문에 망설임 없이, 오히려 와줘서 고맙다는 마음으로 역할을 맡겼다.
 
서예지씨는 그냥 봐도 매력적이지만 같이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감언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빛이나 책을 읽고 나눈 이야기가 뒤돌아보면 꼭 맞는 것 같지도 않은데 앞에서는 꼭 맞는 것 같은 신뢰감을 주는 캐릭터였다. '나도 관객도 이런 신뢰감을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두 배우의 앙상블로 영화에서 시너지가 나지 않을까 했다. 정말 감사드린다.
 
영화에서 잊지 못하고 남아 있는 장면은?
ㄴ 김재욱 : 개인적으로 볼 때마다 달라진다.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제작년 처음 초청받아서 상영되기 전부터 감독님께 받은 가편집본을 몇 번 봤는데 최근에 춘천에서 상영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매번 바뀐다. 요즘에는 제일 가슴 아픈 신이 정원이가 방에서 아버지를 만나는 신이다. 볼 때마다 너무너무 아프다. "촬영할 때 많이 힘들지 않았니"하고 물었더니 예지도 그 부분에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상하게 애정이 가고 아픈 신이다.
 
서예지 : 정원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수완과 만나서 "난 느껴요" 대사를 치는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원은 늘 드러내지 않고, 아픔을 갖고 있는데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다 기억에 남는다.
 
   
▲ 서예지가 '정원'을 연기한다.
 
사는 게 지옥 같은 사람들이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어떤 모티브로 구성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ㄴ 조창호 : 어느 겨울에 시민 한강 공원에 갔는데 얼음이 얼어있었고,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무심코 얼음이 얼었다는 것은 깨닫고 쭉 걸어가 봤다. 중앙에서 갑자기 금이 가면서 위태로움이 느껴졌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되돌아가기도, 앞으로 가기도 힘들어서 몸을 뉘어서 나오다가 '이쯤이면 괜찮겠지'하고 쉴 때, 눈앞에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그때, 계속 나오던 동반자살 뉴스가 생각났다. 이게 아마 첫 출발이었던 것 같다.
 
춘천으로 이사를 가서 살고 있는데 그 도시에서도 역시 내가 살던 곳과 가까운 거리에서 동반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춘천이란 도시는 작은 도시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 춘천에 와서 죽음이라는 결론에 이르기 전까지 우리 주위의 분처럼 많이 배회를 했을 것이고, 그래서 나와도 스쳐지나간 적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의 스침이 어떠한 위로도 될 수 없는 상황이 절망스러웠고 스스로도 우울했다. 과거 얼음에서의 경험과 춘천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두 배우 모두 화려한 이미지인데 일상성이 나타나는 작품에 어울려서 놀랐다. 인물을 표현할 때 어떤 점에 포인트를 뒀는가?
ㄴ 서예지 : 잘 어울려서 놀랐다는 말씀에 감사하다. 고통이라는 단어가 사람이 겪는 어떤 것과도 비유가 안된다고 생각한다. 정원의 고통을 같이 느껴 보니까 절로 이입했다. 연기할 때 힘들었던 건 감독님의 말씀처럼 물리적 여건이 부족하면, 다 배우들이 직접 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그러나 감독님이 먼저 올라가 주셔서 우리가 뒤따라갔다. 수완이가 얼음 위에서 고통스러웠다면 정원이는 차 안에서 고통스러웠다. 연탄을 CG로 처리해주실 줄 알았는데 진지하게 '진짜 연탄을 마시면 안 되냐'는 말에 큰 결심을 하고 정말 정원이가 돼서 연기했다. 감독님께서 '컷'을 안 해주셔서 진짜 죽을까봐 불안했다. 다행히 '컷'해주셨다(웃음).
 
   
▲ (가장 왼쪽) 배우 김재욱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재욱 : 우선 역할이 잘 어울렸다는 말씀에 감사드린다. 시나리오를 기다린다는 그 감정의 연장선이었다. 이런 톤의 작품에 대한 갈증보다 제가 선호하는 톤의 캐릭터였다. 원한다고 주어지는 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배우로서의 재능이 제작자로서 가장 좋게 사용되려면 어떤 캐릭터를 받아야 하는가를 못 받았을 뿐이다. 늘 원했던 캐릭터였다. 수완이를 이해하는 데에 개인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했다기보다는 시나리오를 깊게 파고들었다. 수완이가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의 감정선을 굉장히 처연하게 표현됐고,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눔으로써 수완이에게 다가갔다.
 
얼음 위에서 촬영이 많았는데 얽힌 에피소드가 있는가?
ㄴ 김재욱 : 처음엔 굉장히 무서웠다. 날씨가 돕지 않으면 촬영할 수 없는 여건 속에서 감독님은 말씀보다 행동으로 설득해주셨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밤만 되면 사진이 왔다. 얼음 한복판에 서 있는 사진이었다.
 
감독님께서 '오늘은 여기까지 얼었다. 괜찮다'고 계속 세뇌 시켰다. 그래도 불안하다고 말하는 게 배우로서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에라 그냥 하자'고 했다. 막상 올라가면 굉장히 안정감이 든다. 감독님께서는 살려고 누웠다고 했지만 나는 이상한 해방감을 느끼면서 누워서 밤하늘을 봤다. 한강 한복판에 누워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 고요함 속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낀 좋은 경험이었다. 오히려 춘천의 얼음이 더 불안해서 목숨 걸고 찍었다.
 
위험한 에피소드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ㄴ 김재욱 : 그 전에 덧붙이자면, 정원이를 연탄에서 구하는 게 수완이다(웃음). 그게 3일차였던 것 같은데 아마 촬영 초반에 찍었다. 해가 지고 있어서 급하게 촬영했던 기억이 있다. 차 유리가 진짜 유리라는 이야기를 안 해줬다. 촬영 끝나고 손을 보니 엉망이 돼있었다.
 
   
 
 
조창호 : 기억이 나지 않는다(웃음). 굉장히 아프고,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캐릭터를 영화로 만들 때는 감독의 윤리적인 태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내가 이런 짓을 할 리가 없고 실제 얼음 위는 직접 경험을 해서 '최소한 사고가 발생했을 시 건질 수 있다'라는 확신을 주며 촬영을 진행했다. 그리고 나는 스태프 둘이 물에 빠졌지만 '절대 수완에게는 알리지 말라'며 치밀하게 준비하는 감독이다. 차 유리는 내가 어린 시절 많이 깨봤기 때문에 잘 다치지 않았는데, 재욱 씨는 잘하지 못해서 다쳤다. 예지씨의 연탄가스는 미안하다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웃음).
 
어두운 밤에 길을 알려준 여자친구 혜미의 모습은 과거에 있었던 일인가?
ㄴ 조창호 :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여러 사람이 혜미의 모습이 과거에 있던 일인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혜미는 현재에 사는 인물이다. 수한이 절망의 끝에서 보는 혜미와 자기 아픔에 갇혀서 옆에 있던 혜미의 아픔을 볼 수 없었던 수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수완은 자기 연민에 빠져서 보지 못했던 타인의 아픔을 자기 죽음 앞에서 볼 수 있었다. 적어도 입원실에서 깨어났을 때, 어젯밤 그녀가 아니라 죽음의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던 흰 새를 만나기 위해 달려간 것은 그것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완이 죽음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ㄴ 조창호 : '수완의 진짜 죽음의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부분은 내가 영화를 만들고 시나리오 쓰면서 가장 집중했던 부분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이유를 들어보고 이유가 밝혀지면 사람들은 가늠한다. '이게 죽을만한가?' 그런데 내 생각에는 천 개의 죽음이 있다면 천 개의 사연이 있고, 어떤 죽음에 대해서 평가내리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풍욕이다.
 
당사자가 아프면 아픈 거다. 아주 쉬운 예로 똑같이 대입 시험을 망쳤어도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과 엄마에게 "엄마, 나 수능 망쳤어"라고 말하며 태연한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의 선택에는 살아온 환경이나 성격 등 여러 가지 일과 상황이 겹쳐진다. 아픔을 물리적으로 잴 수는 없다.
 
   
▲ (왼쪽부터) 배우 김재욱, 조창호 감독, 배우 서예지가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얼음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소리들이 어떤 순간에 찾아오는 것인가?
ㄴ 조창호 : 실제 '얼음 숨구멍'이라는 게 존재한다. 다 얼어있는 것 같지만, 뚫려있는 곳이 있다. 얼음과 물결이 어떠한 작용을 하면서 '얼음 숨소리'를 낸다. 영화상에서 나온 소리는 촬영하면서 실제로 났던 소리다. 우연이나 운명이라는 말로 두 사람의 여행을 해결하기엔 부족해서 확률이란 개념을 가져왔다. 감독의 바람으로, 두 주인공이 선택한 여정이 확률로 유지됐으면 좋겠다. 얼음 구멍을 통해 생과 사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그런 이미지가 죽음을 선택하는 이미지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ㄴ 조창호 : 요즘 여러 사건이 일어나고, 저희가 피곤한 인생을 살고 있는데 여러분께서 이 영화 보셨던 순간만이라도 요 며칠 중 괜찮았던 시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서예지 : 저희 영화를 말하기에 앞서 모든 영화는 피와 땀이 묻었다. 그런데 '다른 길이 있다'는 진짜 피, 진짜 땀이 묻어있다. 감독님이 정말 하나하나 다 해보셨다. 연탄가스를 미리 마셔보진 않았지만(웃음). 춘천 도시의 길들이 다 차로만 나타나고 배우들이 나오지 않으니까 알아서 찍어주실 줄 알았는데 몇 시간 일찍 불러서 촬영했다. 춘천을 엄청 돌아다녔다. 저희 영화는 진짜 피, 땀 흘렸으니까 2,3번 봐줬으면 좋겠다.
 
김재욱 : 규모만 작을 뿐이지 '다른 길이 있다'는 절대 작은 영화가 아니다. 큰 영화는 얼마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느냐에 따라 달린 것인데 '다른 길이 있다'는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다. 도와달라.
 
[글] 문화뉴스 박다율 인턴기자 1004@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이민혜 기자 pinkcat@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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