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추운 겨울보다 더 차가운 위로를 전할 영화 '다른 길이 있다'가 우리를 찾아왔다. '피터팬의 공식'으로 데뷔하여 '판타스틱 자살소동', '폭풍전야'로 특유의 섬세함을 보여준 조창호 감독은 조금 더 순수한 영화 '다른 길이 있다'로 다시 관객들을 마주한다.

'다른 길이 있다'는 보는 내내 위태로운 '살얼음' 같은 영화다. 첫 시작부터 그 바로 전까지 영화는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무서움을 담담하게 전한다. 잔잔한 영화의 분위기와 달리 우리의 마음은 거센 파도를 만난 것처럼 불안하다. 특히, '수완'이 얼음 위를 걸을 때면, 당장에라도 내려앉을 것만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아슬아슬한 그의 걸음에 집중하게 된다.

   
 

'수완'은 나약한 경찰관이다. 어릴 적, 엄마의 죽음을 목격하고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차 있는 존재다. 정신병원에 가짜로 입원한 아버지와 최근 헤어진 여자친구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아픔에만 집중해있는 어린 소년 같은 인물이다. 위태로운 검은 새, 수완은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봉지를 '무생물이 생물이 되는 것 같다'고 표현할 만큼 어쩌면 생명에 대한 의지가 있는 인물이다.

영화를 통해 생물이 된 무생물은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봉지만이 아니다. '얼음' 또한 영화를 통해 생물이 됐다. 차가운 날씨에 단단하게 얼어붙은 얼음에는 숨구멍이 있다. 숨구멍에선 마치 휘파람을 부는 듯한 숨소리가 난다. '얼음의 숨소리'다. 무생물의 숨소리를 들으며, 무생물이 되기 위해 걸어가는 수완의 모습은 단단한 얼음에 대비되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한 살얼음 같다.

   
 

이미 녹아버린 살얼음처럼, '정원'은 차디찬 물 같은 삶을 산다. 이벤트 도우미로 일하며 전신 마비의 엄마를 돌보는 정원은 보통의 사람들처럼 평범해 보이지만, 그 속엔 차가운 상처가 있다. 아물지 않는 상처로 고통받는 정원은 자살 사이트를 찾게 된다. 동반 자살할 사람의 닉네임이 검은 새이기 때문에 자신의 닉네임을 흰 새로 지을 만큼 삶에서의 주체성 없이 살아가는 정원은 죽음 앞에서만큼은 초연한 모습을 보인다.

정원이 춘천에 도착해서 가장 처음 찾은 것은 얼음의 숨구멍이다. 춘천에서 얼음 위를 걷던 정원은 얼음의 숨소리를 듣게 되고, 곧이어 얼음의 숨구멍도 찾는다. 눈을 거둬내고, 얼음의 숨구멍을 여는 정원의 손길은 부드럽다. 그 부드러운 손길은 살얼음판 같은 삶을 거둬내고자 하는 정원의 바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자살 여행'을 온 수완과 정원은 각자가 흰 새, 검은 새인 줄 모르고 만난다. '뜨락'에서 만나게 된 둘의 모습은 차갑기만 했던 다른 장면들에 비해 붉고 따뜻했다. 수완에게 "오늘 밤에 같이 있을래요?"라고 말하는 정원의 모습은 수동적이고, 의지 없이 살던 전의 모습과는 달리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그리고 정원에게서 아픔을 발견하게 된 수완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느낄 수 없던 전의 모습과는 달리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을 보였다.

조창호 감독은 "아픈 사람들끼리는 눈빛만 스쳐도 통하는 전류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고, 그의 생각은 영화에 그대로 나타났다. 수완과 정원은 만남을 통해서 살얼음 같던 삶의 모습에서 좀 더 단단해지는 모습을 보였고, 살아있음에 눈물을 흘릴 만큼 잘못된 선택의 아픔을 알았다. 이들은 단단한 얼음이 됐다.

   
 

작든, 크든, 드러나든, 드러나 있지 않든 간에 우리는 각자 아픔을 갖고 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고, 아픔에 대해 약해질 것인가 극복할 것인가는 그 사람의 사고와 행동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우리는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더 큰 아픔인 죽음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죽음 외에도 우리가 아픔을 이겨낼 '다른 길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길이 있다'는 살얼음판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단단한 빙판길을 선물해줄 영화다. 따뜻하게 녹여내면 살얼음은 다시 생기고 만다. 이냉치냉, 그냥 꽁꽁 얼려서 위태롭지 않게 걸어갈 다른 길을 만들어주는 영화다. 우리에게 차가운 위로를 전할 영화 '다른 길이 있다'는 19일 개봉할 예정이다.

문화뉴스 박다율 인턴기자 1004@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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