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영화도 다시보자 '명화참고서'…'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석재현 syrano63@mhns.co.kr 영화를 잘 알지 못하는 남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영화를 보면서 배워갑니다.
[문화뉴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이야기다. 어느 주말 한 강의실, 나는 학회 첫 모임에 참석하였고 학회에서 다룬 내용이 장애인의 인권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다소 딱딱해져 가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갈 겸 화제를 잠시 전환시키기 위해, 학회 발표자는 주제와 관련된다 싶었던 영화 한 편을 상영했는데 이 때 처음으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게 되었다.
 
발표자는 분명 여주인공인 '조제(쿠미코)'(이케와키 치즈루)가 스스로 걷지 못하는 불편한 몸을 가지고 있기에 단순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특별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의외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조제'와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의 겉모습만 보고 치부해버린 것이며,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결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특별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 제목으로 등장한 '조제'와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게 된다면 말이다.
 
'츠네오'는 우연히 유모차를 끌다 놓친 할머니를 도와주게 되었고, 유모차 속에서 한 소녀를 만나게 되었다. 프랑수와즈 사강의 소설 주인공 이름인 '조제'를 사용하는 그녀를 본 '츠네오', 사랑인지 동정심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조제를 보살피던 그녀의 할머니의 사망소식을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1년 후, '츠네오'는 전 여자친구를 우연히 재회한 순간부터 자신의 가족에게 '조제'를 소개시키려 했던 자신의 마음이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고, '조제'는 '츠네오'의 감정을 감지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두 남녀는 헤어졌고, '츠네오'는 "이별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 한가지뿐이다. 내가 도망친 것이다"라고 독백했고, 전 여자친구와 다시 만나 길을 걷다가 주저앉으며 오열했다. 반면 '조제'는, 더 이상 남의 도움 없이 전동 휠체어를 타고 혼자서 장도 보고, 요리도 하며 담담하게 살아갔다.
 
   
 
 
그녀가 '조제'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건, 소설처럼 이상적인 사랑을 꿈꾸는 우리의 현재 모습을 대변하고, '조제의 장애'는 단순히 신체적 결핍이 아닌, 옛 연인과의 지나간 사랑에서 혹은 타인으로부터 얻은 마음의 상처를 의미한다. 그리고 '조제'가 혼자 보러가기 무서워했던 '호랑이'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가지고 싶은 도전, 용기를 뜻하며,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밖으로 나오면 죽게 되는 '물고기'는 '조제', 아니 우리의 모습이다. 이쯤 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 또는 단순한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한 소녀가 사랑과 이별을 경험하면서 환상과 현실, 그리고 절망과 행복, 그리고 성장통을 담아낸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조제'처럼 성장통을 겪거나, '츠네오'처럼 겁이 생겨 도망친 적이 한두 번 정도는 겪었을 것이다. 누구나 사랑하고 싶어하는 감정은 원하지만, 이별과 상처에는 지레 겁을 먹고 가급적이면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사랑도 결국 영원할 수 없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분명 다가오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끝이 다가오면 부정하기 보단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차피 우리 모두 완전한 존재가 아니니까.
 
   
 
 
'츠네오'와 헤어진 '조제'는 혼자가 되었고, 휠체어 같은 곳에서 내려올 때 곤두박질치듯 떨어진다. 하지만 '조제'는 더 이상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세상에 있는 또다른 '조제'들이여, 상처를 받을까봐 겁먹지 말자. 아픔은 성장을 위한 또다른 양분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Josee, The Tiger And The Fish), 2003, 15세 관람가, 드라마, 
1시간 57분, 평점 : 3.8 / 5.0(왓챠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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