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띠에터 강해인의 2016년 영화 결산 ③ 영화와 현실의 전치된 관계

   
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1년 중 상업 영화계가 주목하는 시즌이 몇 개 있다. 설날, 추석 등의 명절 및 연휴와 여름·겨울 방학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대규모 제작·배급사는 이 시기를 겨냥해 가장 잘 팔릴 영화 라인업을 구성한다. 덕분에, 이 시기엔 생산자들이 생각하는 대중의 트렌드가 집약된 영화가 시장에 걸린다.
 
올여름 성수기에 빛났던 영화는 '부산행'과 '터널'이었고, 올 연말을 노리는 영화로는 '판도라'와 막 개봉한 '마스터' 등이 있다. 관람을 한 세 편('부산행', '터널', '판도라')을 중심으로 현 상업 영화가 선택한 공통된 주제 및 현상에 대해 정리해보려 한다. 그리고 이 영화들과 정확히 반대의 지점에 있는 '내부자들'을 통해 영화계를 넘어 한국의 오늘을 기록하려 했다. 
 
   
▲ 영화 '부산행'
 
세 영화의 공통점(첫 번째, 두 번째)
'부산행', '터널', '판도라'는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로 각각 1,100만, 710만, 350만(12월 24일 기준) 관객을 동원했다. ('판도라'는 손익분기점까지 100만 관객을 남겨둔 상태다) 이 영화들은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는 공통점 외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았다. 크게 세 가지를 말할 수 있겠다. 
 
세 영화는 모두 '재난'을 다루고 있다. '부산행'은 감염되는 바이러스를, '터널'은 무너진 터널 사고를, '판도라'는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을 다룬다. 각기 다른 재난이지만, 이 재난이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고, 사람이 더 크게 키운 사고라는 점도 유사하다.
 
'부산행'은 제약회사의 실험이, '터널'은 부실한 공사가, '판도라'는 사용해선 안 될 원자로를 사용함으로써 사고로 이어진다. 세 가지 모두 미리 막고 예방할 수 있던 '인재'다. 모두 인간의 욕심, 이윤추구의 이기심이 만든 결과로 자본주의적 성과에 매달려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영했다. 많은 관객을 동원해 거대한 손익분기점을 넘어야 하는 '자본 친화적' 영화들이 '반자본주의적' 시선을 공유한다는 것은 역설적이면서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두 번째로 공유하는 것은 재난 앞에 무능한 사회 시스템이다. 사회 안정을 위해, 개인의 위기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사회 시스템은 이 영화에선 무능하고 때로는 피해자에게 적대적이다. 한 가지씩 짚어보자. 세 영화에서 언론은 사실을 은폐한다. 그들은 모든 사회 안전망이 정상적으로 작동해, 재난 상황이 곧 끝날 것처럼 연극을 한다.
 
   
▲ 영화 '터널'
 
'부산행'에서는 의미 없이 반복되는 뉴스와 그 속에 몰래 탈출하는 상류층, 정치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6.25 당시, 거짓 방송을 하고 서울을 도망갔던, 그리고 결국 말년에 '하야'한 전 대통령 이승만을 생각하게 한다. '터널'은 여기서 더 나가, 특종에 몰두하는 언론의 민낯을 보여준다. 터널을 향해 돌진하는 드론들은 재난을 스포츠 중계처럼 여기는 보도 행태를 풍자하고 있었다. '판도라'의 언론은 정부의 말을 전하고, 통제를 받으며, 재난 상황을 축소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보도를 한다. 그렇게 그들의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이때, 정부라는 조직은 무엇을 했을까. '부산행'과 '판도라'는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명목으로 피해자를 격리하고, 그들의 죽음의 문 앞에 버려둔다. 정부는 피해자들을 국가 안전망 밖으로 떠밀고, 더는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전 국가적 동요를 우려해 이런 사실을 은폐하려는 잔인함도 보인다. 언뜻 보기엔, 이 시스템은 공리주의적 원칙을 철저히 따르는 것 같다. 적어도 책임자들은 그렇게 믿으며, 자신들을 이성적이라 포장하려 했다.
 
하지만 '부산행'과 '판도라'는 이러한 책임자들의 태도를 저 혼자 살아보려는 이기심 및 무능이라 생각한다. 두 영화는 영화 속 정치인들의 궤변을 복잡한 문제에 얽히려 하지 않는 이기심으로 표현하며, 비판적 시선을 취했다. '터널'의 정치권은 더 코미디다. 피해자를 포퓰리즘의 기폭제로 활용하기 위해,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기념사진을 남기려 발악한다. 앞의 두 영화처럼 역시나 무능한 정부고, 사회 시스템은 피해자가 아닌 권력자를 위해 작동할 뿐이었다. 그래서 '터널'이 그들에게 준비한 한 방은 '개소리'라는 일침이었다.
 
   
▲ 영화 '판도라'
세 영화의 공통점(세 번째)
세 번째로, 세 영화는 하나의 비극을 수시로 환기한다. 한 나라 안에서 국가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한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물에 방치되어 가만히 있어야 했고, 언론은 오작동해 국민의 눈을 멀게 했으며, 권력자는 사건에 전혀 관심이 없던, 그 사고를 끊임없이 소환한다. 이렇게 '세월호' 이후 영화 속에 그려진 사회 시스템은, 현실 시스템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온 것만 같다. '있을 것만' 같은 상황이 아니라 '이미 목격한' 시스템의 붕괴 및 부재를 그대로 베껴온 듯했다.
 
('판도라'의 박정우 감독은 '씨네21' 1084호에서 세월호가 미친 영향이 거의 없다고 말했기에 '부산행', '터널'과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터뷰 내용을 보기 전에 작성한 글이기에, '판도라'에 적용한 현실을 베껴온 듯한 표현은 오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최초에 이 글을 작성할 시, '판도라'를 보고서 그 사건이 오버랩되는 것은, 제작자나 수용자에게나 필연적인 사고 과정처럼 보였다. 이 사건을 잘 모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을 보고서도 '세월호'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듯이 말이다)
 
봉준호의 '괴물' 역시 무능한 정부 및 시스템을 비판했지만, 올해의 세 영화가 보여준 비판과는 접근하는 방법이 조금 달라 보인다. 올해 영화들은 현실을 모방하는 차원이 아니라, 재연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극적 상상력 대신, 극적인 현실을 그대로 차용하는 듯한 느낌.
 

▲ '부산행' 3가지 포인트로 본 천만의 이유 ⓒ 시네마피아

 

온갖 기시감 덩어리의 영화는 뜨겁고 날카롭지만, '극' 영화로서 어떻게 봐야 할지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올해, 영화가 보여준 시스템의 문제는, 이제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스템에 대한 표현에서 세 영화의 성격은 극이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의 특성인 '기록'의 성격이 짙으며, 현실을 노골적으로 겨누고 있다. '괴물'이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던 부분(정말 그럴 것만 같았던 사회 시스템)을 대체하고 있는, 세 영화 속 현실의 복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영화가 현실을 따라 하는 이러한 표현방식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세 영화가 공통으로 반복하고 있던 현실의 재연, 즉 관객으로서 이미 알고 있고, 예측되는 걸 계속 본다는 건, 영화관에서 그리 흥미로운 관람 경험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시민'으로서 이러한 순간은 여전히 필요하다. 세 영화가 선택한 현실 복제는 이야기꾼으로서 뛰어난 선택으로 보이지 않지만, 현 대한민국에 필요한 이야기이자 목소리였다는 것에는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는다. 침몰하는 국가 앞에서 세 영화는 묵묵히 해야만 했던 의무를 선택했다.
 
정반대 지점의 영화, '내부자들'
영화만 현실을 그대로 베낀 것은 아니다.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은 영화가 얼마나 현실적이냐는 문제를 다른 차원으로 올려놨다. 영화는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영화는 어떻게 현실이 되는가, 인간은 영화를 어디까지 모방할 수 있고, 모방하려 하는가. "국민은 개, 돼지입니다." 발언, 삼성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 (영화보다 먼저였겠지만) 유흥업계 남성의 정계와의 연결고리…. 영화가 현실을 베끼듯, 올해엔 뉴스가 영화를 베낀 것 같은 어이없는 보도가 유독 많았다.
 
 
   
▲ 영화 '내부자들'
 
(영화, 드라마)보다 충격적이고, 반전이 넘치는 비정상의 시대다. 최순실 게이트가 열린 후, 극 영화와 드라마는 그녀가 쓴 대서사시 앞에 거대한 위기를 맞았다. ('마스터'는 영화계에서 그 첫 번째 희생작이 될 수도 있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 극적인 놀라운 시기. 영화와 현실이 서로의 위치를 망각하고, 전치된 듯한 해. 그게 2016년의 자랑스럽고, 드라마틱하며, 다이나믹한, 그리고 창조적인 대한민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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