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자신의 노동환경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고통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서, 연대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참여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30대 여성들이 연대할 때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만들어갈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
 
올해 아시아여성영화제네트워크인 나프(NAWFF, Network of Asian Women's Film Festivals) 어워드 수상작인 '야근 대신 뜨개질'의 심사평이다. '야근 대신 뜨개질'은 지난해 제7회 DMZ국제다큐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선택 심사위원 특별언급 수상을 비롯해 다양한 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영된 작품이다.
 
'야근 대신 뜨개질'은 사회적기업인 '트래블러스 맵'에 다니는 여성 '나나'(이민혜), '주이'(이주희), '빽'(백진아)의 이야기로 출발한다. 사회적기업은 공공의 사회적 가치와 이윤창출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기업으로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트래블러스 맵'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자 하는 의미로 모든 직원이 닉네임을 붙여 활동한다.
 
   
▲ 영화 '야근 대신 뜨개질'의 한 장면.
 
세 주인공은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하는 자신들을 보며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닫고, 뜨개질이라는 취미 생활로 의미 있고 재미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 '나나'는 사회적기업에서 노동자로의 힘을 갖기 위해 노조를 설립해보려 하지만, 동료들의 동의를 얻기 힘든 상황에 봉착한다. 결국, 사표를 던지며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한다.
 
이처럼 '야근 대신 뜨개질'은 야근에 지친 여성들의 유쾌한 반란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을 연출한 박소현 감독도 '트래블러스 맵'에서 일한 바 있는 이력이 있다. 그는 이곳에서 '시로'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는데, 본인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에서 따왔다. 한편, 박 감독은 '우리 학교'(2006년) 조연출로 본격 장편 다큐멘터리를 시작했고, 이후 임신중절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은 '자, 이제 댄스타임'(2013년)의 공동제작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7일 개봉을 앞두고, 앞으로도 여성이 연대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박소현 감독을 만났다.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 사회적기업을 바라본 시선, 세월호 사건을 두고 어떠한 편집 방식을 보여줬는지, 최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소감, 영화계 내 성폭력 등 다양한 해시태그에 대한 의견 등을 소개한다. 먼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살펴본다.

 

지난해 개봉한 '위로공단'이 전체 여성노동사를 보여줬다면, 이 작품은 현재의 여성노동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작품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ㄴ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은 동네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일반사람들이 보는 정도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데,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다. "네 이야기를 해보는 게 더 낫지 않냐"였다. '왜 내 이야기가 아니지?'라는 생각을 해봤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학교 수업과 돈벌이를 해야 하는 노동을 병행하면서 살아왔다. 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다닐 때는 등록금도 내야 했는데, 사실 학기 중엔 워크숍 작품도 해야 해서 돈을 벌 수 없었다. 방학 때는 어딘가에서 일종의 위장취업을 했다. 2달 정도 일을 하니까 목돈을 만들 수 있었다. 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작업을 하는 것과 생계유지를 위한 돈벌이를 병행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 과정에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노동 문제와 나는 분리될 수 없었다. 처음엔 다큐멘터리 연출을 하게 될 줄 몰랐다. 극영화의 편집을 하고 싶었는데, 이 작품을 만들 때도 노동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는 작품의 정체성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노동 다큐'라고 해주셨다. 그래서 처음엔 친구의 질문도 의아해했다. 내가 봤을 때는 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영화를 현실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는 퇴사 후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같이 뜨개질 노동할래?"라고 물었는데, 나는 "뜨개질을 잘하지 못하니 너희를 찍어줄까"해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사회적기업이라는 곳에서 입사해 퇴사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나에게 던진 질문과 의문이 자연스럽게 뜨개질 모임을 통해 작품으로 발전된 것 같다. 꼭 '노동 다큐'라고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경험해서 던졌던 대화가 결과물로 나오지 않았나 싶다.
 
 
   
 
 
작품의 초반은 친구들이 뜨개질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러다 노동 문제로 주제가 바뀐 느낌이었다.
ㄴ 처음 이 영화를 만들려고 한 의도는 30대 여성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컸다. 주류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여성 콘텐츠를 보면 20대의 이야기이거나, 60대 이상 어머님들에 관한 이야기는 많았다. 그러나 30대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왤까 했다. 아무래도 육아 중인 여성들의 이미지나, 속칭 '골드미스'에 대한 이야기들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사는 30대 여성도 보여주고 싶었고, 재밌는 친구들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뜨개질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연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초반에 등장하는 '영등포 게릴라 프로젝트' 이후 이 친구들이 뜨개질을 하지 않았다. 너무 하지 않아서 왜 하지 않으냐고 물어봤더니 다들 야근 중이었고 바빴다. 이 친구들과 뜨개질하기 전, 이곳에서 일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이 있었다. '사회적기업'이라거나 진보를 표방한다는 곳에서 일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안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맺는 방식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회사가 추구하는 사회적인 가치와 얼마나 맞닿아있겠느냐는 고민을 했다.
 
사실 이 친구들은 회사 일 외에 집회 현장을 찾아가거나, 사회적 연대를 하는 곳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 했다.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뜨개질 작품을 모아 '강정 마을'에 천막을 뜨개질로 덮는 의도로 연대하는 팀이 있는데, 그곳에 뜨개질을 보내자고 하다가 결국 못했다. 맨날 야근하고 바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무엇이 이 친구들을 방해하느냐로 작품을 만들다 보니 노동 문제로 넘어가게 됐다. 그것을 시작으로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더니 결국 전원퇴사의 단계로 진행됐다.
 
   
 
 
초반부에 나오는 '영등포 게릴라 프로젝트' 장면을 보면서, 영화 '서프러제트'의 우체통 폭탄 시위가 떠올려졌다. 당시 촬영 에피소드가 있다면?
ㄴ 다큐멘터리인 '자, 이제 댄스타임'의 후반 작업을 할 때 이 작품 촬영을 시작했다. 처음엔 일단 메이킹 필름처럼 뜨개질하는 것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비도 없고, 시간도 별로 없어서 '자, 이제 댄스타임'의 서브 핸디캠으로 짬짬이 촬영하는 정도였다. 초반의 촬영분이 많이 없어서 그게 아쉽기도 하다. 여기에 '나나' 성격이 있는데, 비가 오더라도 날을 미루지 않는다. 아시겠지만 바쁜 사람들은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다. 그래서 우산을 쓰고 해서 촬영을 했고, 카메라가 떨린 기억이 난다. 또한, 사소한 이야기다. 뜨개질 결과물이 예쁘지 않아서 당황했었다. (웃음)

영등포를 설정한 이유가 있다면?
ㄴ 지금은 회사가 녹번역엔 있는데, 당시엔 영등포역에 있었다. '나나'가 영화 속에서 이야기하는 말이 있는데, "어딘가에 파라다이스가 있을 거야"다. 그러다 '나나'는 언젠가부터 저곳에 가도, 그곳에 가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나'는 내가 일하고 싶은 곳으로 변화시켜야겠다는 것을 갖고 있던 친구다. 영등포라는 동네가 친구들이 퇴근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길게 있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우리가 마음을 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영등포를 하게 됐다. 그래서 다들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는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ㄴ 그날은 '주이'만 출근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다들 몰래 나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 뜨개질을 아무도 보지 않았는데, 나이가 많으신 여성 한 분이 가까이 가서 만져 보셨다. '나나'가 작품에서 "내가 그걸 경험하면 내 경험이 되고,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닿을 수 있다"고 말하는데, 여성분들이 본인이 뜨개질을 해봤기 때문에, 저것을 뭐로 떴을까에 궁금하셨던 것 같다.
 
   
 
 
여기에 나이 많으신 남성분이 누가 지저분하게 여기에 이걸 걸어뒀냐고 한 장면도 찍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있었는데, 편집하다가 버스 기사님이 전화하셔서 신고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퍼포먼스를 생각한 것도 우리가 너무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인데, 잠깐 이곳에 이런 게 있었다는 시선을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작품에선 자세한 이야기가 편집됐지만,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 765 프로젝트'가 소개됐다. 영화 '밀양 아리랑'도 중간에 등장했다. 어떤 이야기인가?
ㄴ 친구들이 '영등포 게릴라 프로젝트'를 성공한 후, '밀양 765 프로젝트'라는 바느질 퍼포먼스를 기획하게 됐다. 이 친구들이 집회 현장에 나와서 구호를 외치거나 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감수성은 다들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고, 우리만의 다른 방식으로 연대할 수 없겠느냐고 생각해, '765kv 송전탑' 건설을 반대 시위가 아니라 바느질로 '765'를 새겨 사람들이 검색해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바빠서 중간에 하지 못하게 됐다.
 
이 영화는 작년 9월에 완성되어서, 영화제나 공동체 상영을 쭉 돌았었다. 그 이후 개봉을 준비하면서 새로 편집을 하게 됐다. 작년에 완성한 장면엔 광화문광장에 그런 식으로 처음으로 나간 뒤, 더 용기를 내서 밀양에 농활을 셋이서 가는 장면이 나온다. '밀양 아리랑'에 출연하는 영자 어머니 댁으로 갔다. 
어머니와 대화를 하는데, "송전탑 싸움을 할 때 처음엔 나만 싸우는가 생각했는데, 이 싸움에 여러 사람을 만나 행복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이 친구들이 코바늘로 뜬 노란 리본을 달아드리는데, 어머니가 "손으로 직접 뜬 게 중요하다. 고맙다"는 말을 남기는 장면이 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자 어머니는 상영회에서 화면을 통해 만났는데, 결국 가서 만나게 됐다. 
 
그리고 이 친구들이 부산 여행을 갔는데, 어떤 행사에 참석하다가 그때 스쳐 지나간 분을 밀양에서 또 만나는 장면도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나만 아는 사람들이 엮이고 만나는 것을 편집해서 보는 재미가 나만 있었다. (웃음) (왜 편집이 됐나?) 개봉 버전엔 러닝타임도 줄였고,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연대의 확장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일부가 편집될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대사에도 나오지만 '세월호 사건' 이전과 이후의 편집점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뜨개질하면서도 세월호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길게 등장한다. 작품의 균형을 맞추면서 편집하기 어렵지 않았는가?
ㄴ 실제로 영화를 어떤 분들과 보냐에 따라 방점을 찍는 게 달랐다. 어떤 곳에선 사회적기업이, 어떤 곳에선 사회적 연대가, 또 어떤 곳에선 생애주기에서 30대 여성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다루기도 했다. 그래서 작품을 만들 때 힘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피드백을 구할 때마다 혼란스러웠다. 결국,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나를 지지해주거나 나와 늘 비슷한 또래들의 조언이 나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의 경험에 따라 만들어지는 시선, 문제에 대한 내가 찾은 답이 바뀔 수 있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날개', '영', '변'으로 이뤄진 남자, '나나', '주이', '빽'이라는 여자. 이 3명의 구도가 대립한 것 같다는 의견도 있다.
ㄴ 생물학적인 남녀구도라기보다, 남성 중심의 언어가 문제 같았다. '나나'와 '주이'가 노조를 준비하다가 "꼭 노조준비위원회라는 이름을 써야 하냐"는 이야기를 한다. '나나'는 우리가 설득해야 하는 사람은 다른 언어를 쓰는 '변'과 '날개'라고 하는데, '변'과 '나나'가 테이블에서 하는 대화가 이 작품이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가 함축된 것 같다.
 
'변'이 했던 말들은 우리가 익숙하게 들은 언어다. 대의를 위해, 뭔가 좀 더 큰일을 하기 위해서 희생이 따라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공정여행이라는 이름을 달고 임팩트를 크게 하지 못하면 너희가 행복하고 즐거운 게 무슨 의미인가인데, '나나'는 그 반대 이야기를 한다. 내가 행복하고 즐거운 게 우선이라고 이야기한다.
 
'변'이 쓴 언어가 우리에게 익숙한 생물학적인 아닌 젠더 관점에서 남성 언어라고 이야기했다. '나나'가 우리에게 익숙한 것에서 이젠 다른 방식의 언어나 소통을 찾아야 할게 아니냐는 질문을 관객들에게 그 테이블 장면을 통해 던져보고 싶었다. 남녀 대립보다 그 안에 보이는 언어들의 대립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사회적기업의 장점과 더불어 단점도 한 번에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본인이 생각하는 사회적기업의 가치는?
ㄴ 사회적기업의 종류가 진짜 다양하다. 그런데 책도 별로 없고, 자료도 찾기 힘들다. 잘 모르실 거다. G버스의 TV 광고 중에 '나나'가 싫어하는 게 있다. 장애인, 노인과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만 사회적기업이라는 시혜적 시선으로 홍보하는 게 많이 있다. 그게 아니고 회사마다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사회적기업을 하는데, 천차만별이다.
 
보통 사회적기업은 공공의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이윤을 동시에 차출해야 한다.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그게 가능한 일인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비영리 NGO 단체가 이윤을 내야 하는 느낌이다. NGO와 비슷한 일을 하는데, 수익을 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숙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회사다. 가치뿐만이 아니라 혁신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물음표를 던졌다. 그야말로 진보적으로 앞으로 더 나은 것에 대해 실험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도 돈도 벌어야 하니 힘들다.

10년 후,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엮어보는 것은 어떨까?
ㄴ 2탄 찍을 생각이 지금은 없지만, 그런 생각은 들었다. 첫 장편 연출작인데, 내가 이걸 만드는 과정에서 출연자들과 나와의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너무 많은 연대가 있었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만들어가면서 나는 이런 것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영화를 통해서 연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영화를 만들면서 행복을 느꼈다. 이 작품을 만든 때가 30대였으니, 30대 또래 시기에 들었던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친구들이 아니라 알고 있는 다른 친구들과 10년 후에 뭘 이루고 싶은지를 찍어 놓은 게 있다. 10년 후에 비슷한 어떤 대상이 될지 모르겠지만, 40대, 50대, 60대 때 같이 연대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게 여성들이면 좋겠다는 혼자만의 생각은 있다. 그 연대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는 생각해 봐야겠다.
 
   
▲ '자, 이제 댄스타임'의 한 장면.
 
자연스럽게 여성인권 문제로 넘어간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낙태와 관련된 이야기가 주목받고 있다. 다큐멘터리인 '자, 이제 댄스타임'도 그러한 주제였다. 공동제작, 조감독, 구성, 편집을 맡았는데, 작품 이야기를 해달라.
ㄴ 2010년 말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 2011년에 촬영을 주로 했다. 또래 가임기 여성 감독인 4명이 맡았는데, 나는 뒤에 합류했다. '야근 대신 뜨개질' 모임 형태와 비슷한 출발이었다.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프로라이프 의사회에서 낙태 수술을 한 의사를 고발한 내용을 하게 됐다. 수술해주는 병원을 찾기가 힘들어 중국 원정에도 가는 이슈가 떠오를 때였다. 서로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됐다. 그러면서 같이 그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특히 독립 다큐멘터리가 팀 작업이 아니어서 외롭다. 감정적인 외로움도 있지만, 예산 문제도 있어서 공동제작 형태로 역할을 맡고, '물물교환'을 연출한 조세영 감독이 연출하고, '이태원'을 연출한 강유가람 감독이 프로듀서를, '의자가 되는 법'을 연출한 손경화 감독이 촬영하고, 나는 조감독으로 합류해서 만들어졌다. 아주 힘들었다. 새로운 시도였고, 선례가 없었다.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집단에서 만들어지는 것과는 달랐다.
 
'자, 이제 댄스타임'은 여성의 몸에 관한 이야기로, 임신과 출산을 이야기하면서 '임신중절'의 본질을 말하고자 했다. 후반 작업 중에 본인들이 하고 싶은 작품 이야기가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뜨개질 이야기로, 의자 이야기로도 이어졌다. 그런 것들을 공유하면서, 연대감도 피어난 것 같다. 사실 '자, 이제 댄스타임'이 세 번째 조감독 활동이었는데, 그 작품으로 접게 됐다. 나이가 저보다 많은 남성 감독님들 밑에서 조감독을 많이 하다가 처음으로 또래 여성작업자들과 한 경험이 너무 좋았다. 연대감이 주는 힘의 확신을 많이 얻게 됐다.
 
   
▲ 지난 6일, CGV 왕십리에서 열린 영화 '야근 대신 뜨개질'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박소현 감독이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
 
최근 등장한 '#ㅇㅇ_내_성폭력' 해시태그도 연결해서 이야기하면 될 것 같다. 본인의 생각은?
ㄴ 해시태그가 떠오르면서 아마 많은 여성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도 이 이야기를 쓸까 말까 한 게 살면서 너무 많다. 그게 어디 영화계 내 성폭력, 문단 내 성폭력뿐만은 아닐 것이다. 회사, 학교 등 얼마나 많겠는가.
 
어제(8일), '자, 이제 댄스타임' 제작진이 만든 상영회를 했는데, "2011년 당시 낙태 경험이 있는 남성, 여성 인터뷰이를 찾습니다"라는 웹자보를 만들어 공개했었다. 내 경험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은 힘든데, 최근 이슈가 떠오르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 그때 장소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낙태 경험이 일간지 칼럼에도 실리고 있다.
 
여성들이 '강남역 사건' 이후, "내 이야기를 이렇게 들어주는 내 편이 있다"라는 연대감에 목소리를 이전보다 더 많이 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이러한 맥락으로 좀 더 지지하기 위해 어렵게 자기 경험을 이야기한 분들의 목소리 힘을 보태기 위해 다시 한 번 하게 됐다. 해시태그로 성폭력을 고백하기까지 힘들었을 것이다. 쉬운 일도 아닐 텐데, 이제는 이야기할 때 계속해서 지지해주는 목소리가 뭉치고 뭉쳐져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목소리를 내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나도 사실은 이런 경험이 있다고 누군가가 말하면, 이에 동조하면서 다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동력이 생겨난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의도로 만들어졌다. 누군가에겐 소소하고 취미 생활로 생각하겠지만, 나만이 갖고 있던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었던 일들을 더 표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본다.
 
   
▲ 박소현 감독이 "첫 코 뜨기, 시작은 '야근 대신 뜨개질'로"라는 메시지가 담긴 포스터를 들고 있다.
 
지난달 공개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바 있고, 이와 관련한 시국선언에 서명하기도 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소감은?
ㄴ 나는 영광이다. 내가 한 것은 세월호 관련 법에 그냥 이름 하나 서명해서 올린 거 하나뿐인데, 내가 뭐라고 나라에서 블랙리스트를 올려줬나 싶으니 웃기다. 오히려 진짜 오를법한 분들이 빠지셔서, 그분들이 창피하다고 하신다. 여러 가지 서명으로 연대하고 있는데,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작지만, 서명으로나마 뭐라도 내 마음을 표현한 게 자랑스럽다. 그거라도 하지 않았으면 부끄러웠을 것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ㄴ 여성 연대를 주제로 계속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이유는 여성들이 연대하는 방식이 좀 더 재밌기 때문이다. '야근 대신 뜨개질'의 의미는 그렇다. 야근이 첨단산업사회, 신자유주의에서 경쟁을 상징하는 것으로 봤다. 뜨개질은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노동이다. 그런데도 뜨개질과 같은 좀 더 섬세한 소통이나 관계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봤다. 일하는 시간도 줄여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좀 더 돌보고, 주위를 돌아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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