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대두되는 선민사상의 위험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아띠에터) 조형근kareljay@mhns.co.kr. 글을 쓰고 싶은 음탕한 욕망이 가득하나, 스스로를 일단은 억눌러야 하는 현실.답은 유명해지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문화뉴스] 2016년 6월 말, 필리핀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대통령 이전에도 분명 취임 전에도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취임 이후는 한층 더한 광폭 행보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마약과의 유혈전쟁을 선포한 그는 지금까지 약 70여 일간 3천여 명에 달하는 마약 용의자를 사살했다. 보도에 따르면 불법 마약 유통을 90%가량 차단하는 등 그동안 부패에 신음하고 있던 필리핀을 구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월 말에는 필리핀의 또 하나의 걱정거리인 공산 반군과 무기한 휴전에 합의하였으니, 필리핀 내에서 두테르테에 대한 신임도가 90%를 웃도는 건 무리가 아닐 것이다.

필리핀 내의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외부에서 보는 두테르테에 대한 시각은 본국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회의적인 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필리핀의 내부 상황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말기 암 환자의 암을 제거하기 위해선 환자의 몸에 좋고 말고를 따질 만한 상황이 아닌 것과 같다는 옹호적인 입장도 있다면, 범죄의 처벌은 당연히 필요하겠으나 그것이 초법적인 수단으로 처리되는 게 정당화되서는 안 된다거나, 마약 범죄자의 인권 등을 고려하여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다. 적어도 우리 나라에서 보는 시각은 필자가 보기에 긍정과 부정의 입장이 반반 정도라고 생각된다.

필자가 두테르테를 보는 시각은 지금은 긍정적인 여론에 가깝다. 필리핀은 약 7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고, 덕분에 중앙 권력 또한 마닐라를 기점으로 근교 몇몇 대도시에나 미치지 지방 토호세력의 입김이 무척 강한 나라다. 과거 21년간 최악의 독재자였던 마르코스의 통치 하에 전국적으로 부패가 만연하고, 경찰 공권력의 청렴도 또한 바닥에 가까운데다, 손쉽게 구할 수 있던 마약, 총기 소지국가 등 치안적으로 불안한 요소는 전부 갖추고 있던 나라였다.

국가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치안의 안정은 필수적 요소로 봐야 하는데, 필리핀은 기본적으로 이 조건을 오랜 시간 동안 갖춰오지 못한 것이다. 두테르테는 이 불안한 필리핀 사회를 초법적 권한, 즉 법의 심판을 거치지 않은 '즉결처분', 다시 말해 '사살'이라는 방법을 통해 필리핀 내에 충격요법을 준 것이고, 이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적어도 단기적으로 확실한 효과를 결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이면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두테르테의 이러한 행보를 보고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바로 '정치적, 도덕적 올바름'은 반드시 올바른가? 에 대한 것이다.

범죄자의 인권을 고려한다면 왜 피해자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는가, 남의 인권을 먼저 유린한 사람에게 인권을 보장해 줄 필요는 없다. 범죄자는 강력하게 처벌받아야 하고 그를 통해 사회의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분명 옳은 말이다. 우리도 초등학교 때부터 수없이 나쁜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 왔다. 도덕책대로 세상이 돌아간다면 세상엔 법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범죄라는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두테르테는 지금 범죄와 비리에 찌든 필리핀을 틀림없이 구하고 있다.

   
 

허나 한편으로는 지금 이 모습은 마치 데스노트의 실사판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주인공 라이토는 사람을 즉결처분할 수 있는 데스노트를 손에 넣고 범죄자들을 빠른 속도로 처단했다. 경찰 조직은 라이토를 범죄자로 규정하고 살인을 중단하기 위해 구속 작전을 펼치지만, 실제로 라이토가 데스노트를 사용한 직후 범죄율은 급감했고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존재가 범죄자를 심판하고 있다는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상의 신 '키라'를 만들어내게 했고, 키라 추종자들이 득세하는 모양새를 갖추게 했다. 라이토와 두테르테의 차이점이라면, 라이토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조종했다는 점과 두테르테는 세상에 먼저 살인을 하겠다고 공표한 뒤 실행에 옮겼다 정도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왜 경찰은 범죄자를 심판하고, 범죄율을 낮추는 데 크게 일조한 라이토를 범죄자로 여겨 그를 체포하기 위해 노력했을까? 사회의 치안 유지를 위해 힘써야 하는 경찰 입장에서는 라이토, 키라에게 표창장이라도 내려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 이유는 라이토의 수단이 '초법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대개 법치주의를 같이 표방하곤 한다. 법치주의는 사람이 아닌 법이 국가를 통치하게 하는 수단으로, 바꿔 말하면 범죄자의 처벌 또한 법에 정해진 형량과, 절차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는 말이다. 라이토는 이를 어기고 죄질을 가리지 않고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사형'이라는 최고의 심판을 내렸다. 그리고 두테르테의 경우도 지금 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또한 마약 범죄 '용의자'에게 사살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하고 즉결 심판을 내렸고, 지금도 내리고 있고, 앞으로도 내릴 거라고 말하고 있다.

분명 지금 그의 방식은 흔히 표현되는 '사이다'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초법적인 심판이 불러오는 문제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가 독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무척 크다는 것이다. 애초에 법치주의는 폭력으로 유지되는 독재권력, 절대주의, 인치주의 등에 대항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지금은 두테르테가 필리핀 시민들이 원하는 범죄조직을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소탕하고 있기 때문에 자국에서 영웅으로 받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범죄가 전부 소탕된 뒤에도 이런 초법적인 권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지금 심판되고 있는 마약 조직 중 두테르테의 숙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라이토, 키라도 처음의 의도는 범죄자를 심판하여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라이토는 처음부터 자신이 데스노트를 이용해 새로운 세상의 '신'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종의 선민사상으로,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신이 초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전당포 노파를 죽인 것과 같다.

그러나 결과는 알다시피 라스콜리니코프는 자기모순을 이기지 못해 반 정신이 나간 상태로 지내다 자수하게 되었고, 라이토는 마지막에 범죄자로 체포되어 죽었다.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것을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다.

   
▲ 두테르테 대통령 지지자들이 도심에 내건 플래카드

만약 두테르테가 정말로 본인의 말대로 필리핀의 마약 범죄 소탕을 위해 앞으로도 소탕전을 계속하고, 마침내 마약 조직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신음하고 있던 필리핀에 경제 성장동력을 불어넣은 뒤에 법에 의해 주어진 자신의 임기를 마치고 조용히 뒤로 물러난다면, 그는 미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닦은 조지 워싱턴처럼 필리핀 내에서, 나아가서는 세계 역사에서 손꼽는 지도자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가 결국 자신의 권력에 취한다면 그는 여태까지 무수히 봐 왔던 처음에는 영웅이었으나, 끝내 독재자로 변질한 또 하나의 사람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가 어떤 사람으로 남게 될지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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