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심의 걱정을 많이 했죠. 심의가 안 나올 거라고 생각해 차선책을 생각해놓기도 했죠. 하지만 웬만하면 '시발, 놈'을 정말 쓰고 싶었습니다."

 
여기 'C급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감독이 있다. '시발, 놈: 인류의 시작'을 만든 백승기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백승기 감독은 9일 오후 아트나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C급 영화'와 자신이 만든 '꾸러기 스튜디오'에 대해 소개했다.
 
영화를 너무너무 만들고 싶었던 2004년에, 영화를 너무 만들고는 싶은데 영화를 공부한 적도 없고 영화에 대한 어떤 자본도 기술도 없는 저 같은 사람이 영화를 만든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들이랑 고민하다가 우리끼리 캠코더 한 대로 영화사도 만들고, 극장도 만들고 영화제도 만들고 자체제작 시스템을 갖춰보자고 해서 처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06년에 '꾸러기 스튜디오'라는 'C급 영화' 전문제작사를 동네에 15평짜리 방을 얻어서 월세 20만원을 내고 시작했고요. 모토는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영화를 만들 수 있다"였습니다. 그 당시에 한참 디지털 캠코더도 많이 등장했고, 온라인을 통해서 영상을 올릴 수 있는 기반도 마련이 되면서 저희가 C급 무비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것은 A급, B급, C급으로 갈수록 낮은 단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확장된 개념입니다. 이른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확장된다는 건데요. A급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소수라면, B급 영화는 또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만들 수 있고, C급 영화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만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 9일 오후 서울시 동작구 동작대로에 있는 아트나인에서 영화 '시발, 놈: 인류의 시작' 언론/배급 시사회가 열렸다. 백승기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러한 뜻을 보여준 백승기 감독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미술 교사를 하면서 동시에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해, 현재 '꾸러기 스튜디오'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발, 놈: 인류의 시작'은 2014년 '숫호구'로 한국 독립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백승기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인류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상상력과 'C급 감각'으로 풀어냈다.
 
1,000만원이라는 소규모 예산으로 제작됐지만, 그 재미는 100억 예산이 들어간 블록버스터 못지않다는 평이 있는 가운데, 18일 개봉을 앞두고 백승기 감독을 만났다. 여러 이야기보따리를 확인하기 전에, 백 감독의 영화 소개 인사말을 살펴본다. 
 

 

영화 이름이 재밌다. '시발, 놈: 인류의 시작'을 제목으로 정한 이유는?
ㄴ 전 작품인 '숫호구'는 편집까지 다 끝낸 후에 제목을 마지막으로 정했다. 우리같이 저예산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유일하게 상업영화에 돈이라는 것에 제약을 받지 않고 경쟁할 수 있는 게 제목이라고 봤다. 제목센스는 돈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제목이랑 포스터에 승부를 보려고 해서 끝까지 보류한 후보가 50개였다. '아바타'를 소재로 했기 때문에 '아바타'가 들어간 가제도 있었다.
 
'숫호구'가 제목의 득을 크게 봐서, '시발, 놈: 인류의 시작'도 이름을 잘 지어야겠다고 봤다. 촬영할 때도, 제목 없이 '원시인 영화'로 했다. 제목을 정하면서 인류의 기원과 관련한 단어를 수집했다. 그러다 '시발'을 발견했다. 이 단어는 무조건 살려야겠다고 했다. 여기에 사람이라는 옛말인 '놈'을 붙였는데 완벽하다 싶었다.
 
제목의 심의 걱정은 안 했나?
ㄴ 심의 걱정을 많이 했다. 심의가 안 나올 거라고 생각해 차선책을 생각해놓기도 했다. 하지만 웬만하면 '시발, 놈'을 정말 쓰고 싶었다. 쉼표를 넣고 했는데, 다행이 심의가 나왔다. 어차피 '시발'이라는 단편영화가 한국에 또 있었다. 그래서 이게 문제는 아닐거라고 봤다.
 
   
▲ 영화 '시발, 놈: 인류의 시작'의 한 장면.
 
영어 제목을 보면 '숫호구'는 '슈퍼 버진(Super Virgin)'이었고, '시발, 놈: 인류의 시작'은 '슈퍼 오리진(Super Origin)'이었다. 연관성이 있는 건가?
ㄴ '슈퍼' 들어간 걸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나이를 먹고 할리우드 영화에 흥미가 떨어지고 있지만, 슈퍼 들어간 만화나 영화를 많이 봤다. 예전에 한 단편 중에 '완전체 소녀'가 있다. 지금도 하는 48시간국제영화제인데 대상을 받은 바 있다. 48시간 동안 영화를 만들어서 상영하는 제작 콘테스트다. 칸 영화제와도 연결되어서 세계영화제에서 뽑히면, 칸에서도 상영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슈퍼 걸(Super Girl)'이었다.
 
어느 순간, 시리즈물을 만들고 싶었다. '어벤져스'도 각기 다른 영화의 세계관이 묶이는데, 캐릭터들을 하나의 영화에서 종합선물세트처럼 나오고 싶어서 '슈퍼 시리즈'를 밀었다. 이번엔 기가 막히게 오리진(근원, Origin)이라는 단어가 있어서 하게 됐다. 세 번째 장편 영화도 '슈퍼'가 들어갈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쿠키 영상'에 세 번째 영화에 대한 암시가 들어간다.
ㄴ 3편으로 반드시 내보낼 것이다. 우리 모토가 돈은 없지만, 표현의 영역에서 주눅 들지 말자는 것이다. 할리우드와 다르게 한국영화에서 쿠키를 시도하지 않는 게 많다. 왜 안 하나 싶은 것도 있다. 쿠키 영상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독립영화인 '족구왕' 때도 쿠키가 등장한다. 3편은 우주영화로 기획하고 있어서, 이어지는 내용을 살짝 맛보기로 놓았다.
 
1,000만원이라는 제작비는 도대체 어떻게 나온 것인가?
ㄴ 해외 로케이션에 다 썼다. 반 정도는 기본적인 식비, 숙박비에 들어갔다. 이렇게 되니 내가 갑을 관계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친한 사람들에게 재능기부와 노동착취를 하는 것이다. 내가 악덕주 위치가 아니다 보니 그런 그림이 덜 나쁘게 그려질 뿐이지, 주변 후배나 제자, 친구, 부모님 등 여러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도움을 주셔서 가능한 작품이다. 출연료도 상징적인 출연료만 받았다.
 
   
▲ 영화의 일부 장면은 네팔의 히말라야에서 촬영됐다.
 
의상도 정식으로 하면, 천만원을 다 잡아도 모자랄 것이다. 의상을 만드는 친구 한 명이 가내수공업으로 다 만들었다. 최소한 재료비를 줬고, 재단하는 마네킹도 중고도 사줬다. 동대문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서 하나하나 바느질로 만들어 준 최고 은인이다. 재료비는 몇십만원 선이었고, 유인원 옷 13벌에 원시인 옷 성인 두 벌, 아기 것 하나까지 모두 다 만들어준 대단한 친구다. 옷을 가지고 나타날 때, 의심했다. 여기에 음악, 색 보정 팀 모두 엄청난 재능기부를 해줬다.
 
'시발, 놈: 인류의 시작'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ㄴ 유명한 말이 있다. 영화는 우리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인데, 동시대적인 부분은 너무 뻔하다고 봤다. 그래서 최초의 인류를 사용했다. 이 사람을 판타지로 만들었지만, 설정이 판타지이지 여기 나오는 인물은 현실 속 우리와 다르지 않다. 영악하기도 하고,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 친구는 처음이라는 상황에 부닥칠 뿐이지, 우리와 같다. 진화론과 창조론이 있다.
 
한쪽은 인간은 창조되자마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이고, 한쪽은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나와 열등하게 만들어졌다고 나온다. '불을 찾아서' 영화만 봐도 인간의 지능이 창조론과 비교하면 훨씬 떨어져 있다. 그래서 딱 최초의 인류를 우리의 상황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말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이 인류를 통해, 남녀의 혐오 문제, 갑을 관계, 권력 모순, 종교적 풍자 등 여러 가지 것을 담고 싶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존재이고, 우리는 왜 불행하고 소통을 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담게 됐다.
 
작품 초반에 어린이 성경 만화가 나오는데, 어떻게 삽입하게 됐나?
ㄴ 영화를 만들어야 해서 성경을 참고하는데, 사실 두껍고 무슨 소린지 몰랐다. 문장들을 통해 엄한 상상력을 받았다. 성경 말투가 있다. 그냥 맨정신으로 들으면 뭔가 했다. 그걸 오히려 창의적으로 생각하니 영감을 주는 문구가 많았다. 그러다 어린이 성경이 있었다. 동화처럼 재밌게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저 성경책 때문에 즐겁게 봤다.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콘티처럼 되어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다.
 
   
▲ 백승기 감독이 만든 영화 바이럴 영상. ⓒ 백승기 감독 페이스북
 
이번에 본인이 만든 바이럴 영상을 봤다. 상영관이 적은 것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재밌게 소개한 영상인데, 어떻게 기획하게 됐는가?
ㄴ 미술공부를 할 때부터 아이러니한 것이 있었다. 입시를 위해 똑같이 그리는 훈련을 받는데, 사람들이 누구나 다 좋아한다. 작품 내용이 쉽기 때문이었다. 개나 사람을 어렸을 때부터 재밌게 그리니 좋아한다. 그런데 이 미술이 아이러니한 게 입시를 할 때는 똑같이 그리는 걸 가르치더니, 대학에 가선 그걸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쳐준다. 먼지 몰라야 신비감도 생기고, 있어 보이고, 작가처럼 보인다는 그런 아이러니가 있었다. 이게 뭐하는 것인가 싶었다. 점점 더 그런 훈련을 받을수록, 주변의 일반 사람들, 부모님까지 내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이 남들이 보기엔 형편없어 보일 수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재원을 사랑하지 않으면 인생이 더 비참하다. 경차가 있다면, 경차의 장점을 살려서 탈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마인드가 필요한데, 지금 벗어나려 하고, 내 눈앞에 있지 않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과 허영심이 인간을 힘들게 한다고 봤다. 그래서 영화에도 적용했다.
 
누군가에게 1,000만원은 큰돈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나에겐 외국 로케이션도 갈 수 있는 돈이었다. 10여 개의 상영관이 누군가에겐 적은 것이지만, 단관 개봉이라도 하고 싶은 이들에겐 소중한 것이다. 10개 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하기 위해, 챔피언스리그 조추첨을 소재로 한 영상을 통해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10개 상영관은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딱 적당하다는 의미였다.
 
   
 
 
백승기 감독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백승기 미술교사'가 있다. 독특한 이력인데, 어떻게 영화감독이 되기로 했나?
ㄴ 순서대로 따져보면, 교사하기 전에 '꾸러기 스튜디오'를 먼저 운영했다. 어린 시절 현실을 모르고 영화감독을 꿈꾸다가, 미술이 혼자 하기 편해서 미술을 하기 위해 인천예고, 인하대 미술교육과를 다녔다. 하지만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대학교에 다니면서 스튜디오를 만든 것이다. 저예산이지만,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만들었다. 영화를 향해 달려가다 돈을 벌어야 하니 미술에 기댔다. 영화는 돈을 쓰는 직업이지, 버는 직업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미술교육자격증이 있어서 교사를 하게 됐다. 애들과 미술 시간에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미술 시간에 동영상 편집도 해서, 애들이 수행평가로 만든 영화가 400여 편 정도 된다. 사실 애들과 영화 동아리를 해서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진짜 70분짜리 첫 장편이 하나 있다. 나중에 특별전이라도 하면 한번 해보고 싶다. '출동! 43호'라는 작품인데, 방과 후 애들과 주말에 모여 보조금도 없던 시절 1년 걸려 제작한 영화다. 그런 활동을 해서 영화 창작의 끈은 놓지 않았다. 지금은 그러다 영화 쪽에 집중해야지 해서 교사를 쉬고 있는데, 아마 돈이 떨어지면 또 돌아갈 순 있다.
 
2013년 '세상이 이런일이'에 출연했고, 이번에 900회 특집에 출연한다고 들었다.
ㄴ 교사 시절에 출연했었다.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사람이다 보니 영화 스타일 상 키치적인 분장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평상시 수업 때도 응용이 많았다. 분장하면서 수업하고, 만든 영상을 통해 수업하고 했더니 제보가 됐다. 애들을 위해 재밌게 수업하는 모습이 그려졌었다. '숫호구'에서 박사 뒤에 파란 아바타 복장이 있는데, 그 복장으로 출연했었다. 900회 특집엔 지금 화제의 주인공들이 뭐하는 지 재조명을 하는데, 내가 교사가 영화감독 되어서 개봉도 한다는 좋은 타이밍인 것 같아 취재를 오신 것 같다. 아이들과 영화를 찍는 것도 촬영했다.
 
   
 
'꾸러기 스튜디오'에서 다양한 패러디를 했는데, 어떤 것이 있는가?
ㄴ 패러디는 큰 작품을 많이 했다. 더 많이 보여줘야 했다. 우리가 막장으로 찍지만, 대작도 우리 버전으로 만들 수 있었다. 잭 블랙의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보면 할리우드 영화를 다 저예산으로 풍자한다. 그래서 '가위손' 패러디 '망치손', 일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패러디 '은하전철 999', '다빈치 코드' 패러디 '달마도 코드', '300' 패러디 '3', '프리즌 브레이크' 패러디까지 찍었다. '아바타' 3D 개봉 때는 3D에 도전하고 싶어서 적청안경으로 3D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 패러디 작품의 '제작 경력' 과정 끝에 장편작 '숫호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상영됐다. 자비에 돌란 감독이 '칸의 총아'라면, 백승기 감독은 '부천의 총아'라는 말도 있다.
ㄴ 부천이 어찌 보면 나한텐 은인이다. 우리나라 크고 좋은 영화제가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등 많다. 영화를 만들면서 제일 가고 싶은 곳이 부천이었다. 가깝기도 했고, 어렸을 때부터 개막식과 폐막식, 레드카펫 영상을 봤다. 판타스틱이라는 말도 매력적이었다. 저기서 상영할 영화는 재밌고, 왠지 모르게 제일 끌리는 영화였다.
 
아버지도 단편영화를 계속 만들고, '숫호구'도 만드니 "너는 저런데 안 나가니?"하셨다. 우리끼리 '숫호구'를 만들 때도, 나중에 부천 같은데 가면 좋겠다 했다. 기가 막힌 게 '숫호구'를 열 군데 정도 크고 작은 영화제에 다 지원했다. 다 떨어지고, 마지막 한 군데 남은 게 부천이었다. 당연히 안될 줄 알았다. 부천 발표 하루 전에 술 마시는데, 패배의식으로 자존감이 낮아졌었다. 영화를 왜 찍어야 하나 싶었고, 세상은 우리 영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부천에서 전화가 와서 감동을 했다. 교사할 때였는데, 소리 지르면서 운동장 뛰어다니고, 만나는 애마다 하이파이브를 했다. 부천영화제 덕분에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았고, 이렇게 배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다. 차기작도 만들게 됐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작은 영화를 발굴하는 데 큰 역할을 아주 잘했다고 본다.
 
   
▲ 영화 '숫호구'의 한 장면. 백승기 감독이 직접 출연했다.
 
지난해 '시발, 놈: 인류의 시작'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하지 않았나?
ㄴ 부천에 두 번째로 작년에 가게 됐다. 그땐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가편집만 됐었다. 다른 곳에서 먼저 보여줄 기회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잘되지 않아, 이를 갈고 1년 더 노력해서 부천을 간 것이었다. 이게 가편집 상태여서 작품이 애매했었다. 세 번째로 가면, 더 열심히 만들어야 한다. 물론 부천한테 감사하다. (웃음)
 
'숫호구', '시발, 놈: 인류의 시작'을 보면 직접 연기도 하는데, 따로 배운 것인가?
ㄴ 연기를 따로 배운 것은 아니다. 나이키 광고에 환장하는 나이키 마니아다. 누구나 가능성이 열려 있고,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는 마인드가 좋다. 극 중에서도 광고 멘트가 나오는데 "저스트 두 잇" 정신으로 하게 됐다. 연기를 해본 적이 없는데,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해보는 건데 조금 부담감이 생겼다.
 
'숫호구'땐 생활연기인 생활 속에 느끼는 열등감을 보여주고자 했다.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부담됐다. '숫호구' 개봉 후엔 모 드라마 오디션 제안도 왔다. 그래서 그냥 갔더니, 자유연기를 막 시켰다. 준비한 게 없었고, 시스템에 바로 들어가니 당황했다. 정신없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나와서 결국 탈락했다.
 
그때 생각했다. 아직 배우와 감독의 경계를 넘나들긴 어렵고, 우리끼리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시발, 놈: 인류의 시작' 때는 손이용 배우가 원톱이어서 촬영 분량을 줄였는데, '숫호구'보다 촬영이 어려워 분량을 줄였다. 야생 촬영이 연기에 방해되는 것 같은데, 세 번째 영화는 비중을 더 줄이려 한다. 물론, 친한 감독님이 연기 기회를 주신다면 해보고 싶다.
 
   
▲ 손이용 배우가 백승기 감독의 두 작품에 주연으로 연속 출연했다.
 
 
'숫호구' 때도 출연한 손이용 배우는 어느덧 백승기 감독의 페르소나가 됐다.
ㄴ 저 친구는 동생이지만 동생 같지 않다. 고등학교 후배다. 내가 인천예고 1기였고, 손이용이 4기 졸업이다. 예고가 남학생이 적다 보니, 서로 커뮤니티가 잘 연결된 편이다. 졸업 후에 후배들이 '이상한 놈' 하나 들어왔다고 했다.
 
그래서 한 번 보러 갔다. 운동도 잘하고 쾌남이었다. 뭔가 지금은 독기가 많이 빠져 있는데, 그땐 독기가 있었다. '슬램덩크'로 따지면 농구를 배우지 않은 초반의 '강백호' 같은 느낌이었다. 호기롭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친구였다. 커서 다시 만나니, 성숙미가 더해지고 영리하기까지 했다. 이 친구가 어느 현장에 가도 잘해낼 수 있는 스타일이다. 지금도 도움을 많이 받고, 영감도 많이 받아서 후배나 동생이기보단 좋은 파트너 같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가?
ㄴ 기회를 준다면, 큰 영화를 거부할 생각은 없다. 예산이 많이 투자되면 투자되는 대로 최고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열심히 도와주는 사람들이니, 역으로 다시 투자해 제대로 좋은 환경에서 좋은 퀄리티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있다. 그걸 차지하고라도 C급 정신, C급 마인드는 포기하고 싶지 않다.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 있고, 그래서 선택한 부분이 있다.
 
한국에 많은 거장 감독이 다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투자가 있으면 있는 대로 표현의 영역을 계속 보여주고 싶다. 5만원으로 '망치손', '3'도 만들고 했는데 못할 것이 없다고 본다. 다음 영화는 우주 영화인 '그래비티', '인터스텔라'같은 것을 준비하는데 아직 예산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어떤 영화를 만들지 준비하고, 천만원이던 백만원이던 간에 지치지 않고 만들고 싶다.
 
이젠 자기 인생을 처절히 투자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즐겨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영화 하려면 집안에 돈 많거나, 많은 희생, 각오가 필요하다고 한다. 처절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 사람처럼 즐기고, 투잡을 뛰면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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