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이너 요리스 라만(Joris Laarman)

[문화뉴스 MHN 권혜림 기자] [문화 人] 요리스 라만, "3D 프린팅은 새로운 기술 아니야…디지털 시대의 언어를 찾는 게 관건"(인터뷰)①

당신의 이번 작업이나 이전 작업들을 보면 의자가 많다. 가구 중에서도 의자를 주로 만드는 이유가 있는지?

ㄴ내가 의자로 주로 디자인 작업을 하는 이유는 의자가 다른 가구에 비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자는 시대를 반영한다. 

당신이 의자를 볼 때, 약간의 지식만 있다면 어느 시대의 의자인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 앉아있는 이 의자는 1890년대에서 온 스타일이다. 그리고 저 쪽에 (손으로 가리키며) 강철로 만들어진 의자는 1920년대 스타일이다. 당시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발명돼 막 유행하기 시작한 '모더니즘'(Modernism)이 아주 잘 반영된 디자인이다. 

▲ 'Microstructures Gradient Aluminum Chair', Joris Laarman ⓒ국제갤러리

재미있는 점은 1920년대 당시에 저 의자가 처음 나왔을 때 앉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철'(steel)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모더니즘 시대 이전에 의자에 대한 이미지는 '안락하고 편안한' 것이었는데 철로 생산된 의자가 나오니 누가 앉으려 하겠는가. 세상이 아직은 모더니즘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지 않았던 것이다.

여하튼 우리는 이 의자를 보고 모더니즘을 떠올릴 수 있고 1920년대에 유행한 모더니즘 정신이 반영돼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잘 알겠다. 당신이 추구하는 것 또한 시대의 디자인을 반영하려 한다는 것 아닌가?

ㄴ그렇다고 할 수 있다. 방금 예시를 든 '모더니즘'이란 것도 하나의 시대적 '스타일'이다. 산업화를 기점으로 이전 시대에선 럭셔리가 시대적 트렌드였다면 이후엔 '단순함'이 시대적 유행이자 상징이었던 것이다 . 나는 이런 관점에서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형태의 언어'(new form of language)가 어떤 것인지 찾고 있다. 사회가 다시 한번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 디자이너 요리스 라만(Joris Laarman)

 

디지털 시대의 디자인에 대해서 말했는데, 그럼 당신의 랩이나 당신이 추구하는 디자인은 어떤 것이라 할 수 있는가?

ㄴ나는 예상을 하지 못한 형태를 디자인에 부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효율성'에 반대되는 '유머'와 '휴머니즘'이 있는 디자인을 만들고 싶다.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디자인이다.

우리 랩은 신도구를 개발하기도 하지만 산업현장에서 쓰이는 작품을 만든다. 동시에 예술적이고 시적인 표현을 구현하는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산업시대 디자인은 기하학과 부품에 중심을 두었다면, 디지털 시대는 큰 도구를 사용하고 자유로운 탐구가 가능해졌다. 생산 방식에 있어서도 산업시대의 디자인은 내가 디자인하고 중국 공장에서 제작하고 발송하는 형태였다면 디지털시대는 내가 디자인한 청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하여 로컬에서 제작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한 방식이다. 

▲ 3D 프린팅으로 제작된 스틸 전등

내 생각에 디지털 시대의 디자인은 유선적인 형태의 디자인이다. 방금 말한 바와 같이 산업화 시대와 대비되는 유기적인 자연스러움이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기술적 알고리즘으로도 구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디르크 판 데르토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도 3D 프린트 기술로 작품을 제작하지만 (FDM 방식으로 플라스틱을 녹여 손수 제작하는) 아날로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매 작품마다 오리지널을 생산한다는 게 특징인데, 같은 3D 프린트 디자이너로서 이러한 아날로그 접근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ㄴ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내 생각에 '손으로 만들 수 없는' 디자인은 그 자체에 독특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하면 매번 오리지널이 생산된다는 점이 소비자에게 특별한 느낌을 줄 순 있지만 복잡한 디자인은 구현이 어렵다. 예측 불가능하지만 재미있고 독특한 디자인은 아날로그 방식보다는 복잡한 알고리즘 구현이 가능한 디지털 방식에서 좀 더 많이 나오지 않나 생각한다.

▲ Microstructures Gradient Lounge, Joris Laarman ⓒ국제갤러리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잠시 기술(technology)에 관한 이야기로 말머리를 돌려보자. 당신이 생각하는 기술과 인간의 삶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ㄴ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란 걸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전반적인 면에서 효율적으로 변하고 있다.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다. LA에 가면 디즈니랜드가 있는데 처음 디즈니랜드가 들어선 이유는 LA의 다운타운이 너무 못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들여서 이 아름다운 빌딩을 만들었다. 지금은 LA 다운타운의 심볼이 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하지만 너무 효율적으로 만드는 바람에 사람들은 LA 다운타운에 디즈니랜드 말고는 어떤 아름다운 것들이 있는지 잘 모른다. 이게 포인트다.

사람들은 차 안에 뛰어들어서 그들이 가고싶은 목적지로 곧장 향한다. 구글 맵인지 뭐시기인지하는 네비게이션을 찍고 목적지로 가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네비게이션이 우리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작은 길'로는 데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They never take you to the little street to say hi to somebody.)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연구들을 수없이 하고 논리적인 백그라운드를 만들려고 하지만 실상은, 아침에 빵집에 가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사람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면 지금보다 테크놀로지가 발전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하는 것은 아니다.

공감이 가면서도, 한편으론 많은 이들이 인공지능(AI)의 도래를 기대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시대적 관점에 역행하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ㄴ인간의 삶과 기술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인공지능의 도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해를 돕기위해 다른 관점에서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생각해보자. 시간과 에너지는 아낄 수 있겠으나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원시적 관점에서는 당신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삶이 그런 것이라는 거다. 새로운 경험이 우리의 일상적인 루틴을 파괴한다. 우리가 로봇이 아닌데도 말이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그런 점에서 무서운 게 아닐까 한다. 로봇은 수단(tool)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고용하는 로봇이 우리(인간)의 일을 빼앗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applejuice@mhnew.com 사진ⓒ문화뉴스 MHN 권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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