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내셔널리그와 같은 기업+야구장 물색이 중요

▲ 실업야구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김응용 회장의 숙원사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협회장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 (1편에서 계속) 실업야구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되었지만, 문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2002년을 끝으로 실업야구가 완전히 폐지된 이후 야구선수들의 생계 수단은 프로야구가 유일했다. 이에 실업야구를 다시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폐지로 갈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을 되짚어 보는 작업부터 선행되어야 한다.

실업야구의 몰락 사례로 본
부활을 위한 전제조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은 실업팀 현대 피닉스를 중심으로 대학 야구 선수들로 구성됐지만, 이후에는 프로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가 가능해졌다. 이에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는 프로 선수들이 태극 마크를 다는 등 상황 변화가 진행됐다. 따라서 굳이 실업 야구 선수가 아니더라도 규모 있는 국제 대회에 프로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게 됐다는 점, 거액의 계약금을 앞세운 프로 구단들의 머니 게임에서 실업 야구팀이 다소 약세를 보였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실업 야구의 쇠퇴를 가져온 셈이다. 결정적으로 1997년을 기점으로 몰아친 IMF 사태는 긴축 경영을 해야 하는 기업들 입장에서 스포츠단을 해체하는 방법으로 구조조정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실업야구의 해체가 시작됐고, 나머지는 현재 프로야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야구단이 재편되어야 했다. 리그의 완전 폐지는 2002년에 이루어졌지만, 실질적으로는 IMF 사태가 발생했던 1990년대 후반을 전후하여 실업야구가 쇠퇴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 시기에 농협, 한국화장품과 같은 팀들이 모두 해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전례 때문에 실업야구의 부활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실업 리그 재개에 대해 이제 막 논의가 시작됐을 뿐, 제도적인 부분부터 시작하여 실업야구팀에 참가할 팀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야구 선수들을 일반 직원과 동등하게 대우하면서 야구단을 운영할 수 있을 만한 역량을 가진 중견 기업을 찾아내는 일도 필요하고, 축구 K리그나 내셔널리그처럼 지방자치단체 혹은 공기업을 활용하는 방법 등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킬 만한 완벽한 대안이 나와야 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야구장 문제다. 또한, 아직은 학생야구 선수들의 최종 꿈이 프로야구 진출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실업야구가 부활한다 해도 우수 인재들의 프로화 현상이 가속되면, 또 다시 창단 후 쇠퇴하는 현상이 반복될 수도 있다. 실제로 IMF 영향이 있었다고는 해도 앞서 실업 리그가 폐지된 것도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팬들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곳에서 야구 경기를 진행한다면, 그들만의 리그로 끝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사회인 야구팀과 독립리그 팀의 실업 리그 참가 가능성은?

일각에서는 사회인 야구팀의 실업 리그 진출에 대해 거론하지만, 이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현재 사회인 야구를 하고 있는 구성원들은 직장인 야구가 아닌, 취미활동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친목 단체이기 때문이다. 각자 직장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주말 등을 이용하여 여가를 즐기는 것에 포인트를 두고 있는 만큼, 이 구성원들을 실업팀으로 구성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전원을 실업야구팀으로 전원 이직시켜야 하는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에 그렇게 쉬운 작업은 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축구의 성남FC나 대전 시티즌처럼 시민 구단 창단 쪽으로 먼저 푸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상무 외에 육, 해, 공군에서 야구 선수들을 부사관이나 장교 임관 과정을 거친 이후 실업야구팀에 합류하는 방법도 좋은 대안일 것이다.

그렇다면, 독립리그 구단의 실업 리그 참가는 가능할까? 물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의견에 대해 한 가지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서울 저니맨이나 연천 미라클, 성남 블루팬더스 같은 독립야구단은 궁극적으로 프로행을 꿈꾸는 이들의 집합소이기 때문에, 실업야구와는 분명히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독립야구단이 현재 선수들 자비로 운영되는 이유는 딱 하나다. 프로야구와 같이 안정적인 재정구조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스폰서나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러한 기업이 등장한다면, 독립리그가 아닌 실업 리그로도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들여서라도 반드시 프로행에 도전하려는 선수들의 수요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한 수요들을 모아 실업 리그와는 별도로 독립리그가 진행될 수도 있을 수 있다.

▲ 인프라 없이는 실업야구의 부흥도 없다. 보은 스포츠파크(사진)처럼 마음껏 야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조금 더 마련되어야 한다. 사진ⓒ김현희 기자

실업 리그의 부활을 위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선결 과제는?

사실 2002년을 끝으로 실업 리그가 완전히 폐지됐던 것도 리그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성장 가능한 사업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프로야구 퓨처스리그도 유료 관중 숫자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운영되는데, 실업 리그가 부활한다 해도 적은 관중 숫자에 중계방송까지 전무하게 된다면, 그 명맥은 얼마 유지되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실업 리그를 얼마나 많이 활성화시키느냐가 관건이다. 고양 다이노스처럼 퓨쳐스리그 유료 관중이 다수 발생하는 자생력을 키우는 것, 여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또 다른 대안 중 하나로 K리그의 FA컵처럼 프로/실업 토너먼트전을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이다. 또한, 고교야구를 중계방송해주는 IB SPORTS처럼 실업야구를 중계해 주는 케이블 TV 채널도 반드시 있어야 흥행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협회에서는 자본과 관련된 문제를 속히 풀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야구를 했던 선수들을 일반 직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직종의 기업을 빨리 섭외해야 하는 일이 바로 그러하다. 즉, 선수들이 실업야구 은퇴 이후에도 일반 직장인으로서 생활하여도 이상이 없어야 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예전 프로화가 되기 이전의 실업 배구 시절을 되짚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당시에는 'LG화재 이경수 사원', '삼성화재 김세진 대리'가 배구를 했던 시절이었다. 또한, 현대자동차에서 배구를 했던 에이스 마낙길 해설위원은 은퇴 후 현대자동차 지점장으로 근무를 했다. 이와 같은 선순환구조를 빨리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실업야구 중계권 협상을 포함하여 실업야구를 할 수 있는 야구장 확보 역시 반드시 진행해야 할 사업 중 하나일 것이다.

만약에 실업 리그가 부활하면, 의외의 부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바로 야구를 하면서도 공부에도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이 그 대상이다. 이미 '문화뉴스'를 통해서 공부하는 야구 선수들이 해외 유학을 선택할 수도 있음을 보도했지만, 실업야구가 부흥하면 유학 외에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야구를 할 수 있는 길도 자연스럽게 열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야구로 성공하려는 엘리트 선수들은 프로를 꿈꾸면 되고, 그보다는 못하지만 공부도 평균 이상 하는 선수들은 실업 리그를 도전해 볼 만하다. 그렇다면, 일본처럼 프로와 실업 리그가 공존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실업 리그가 부흥하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실업 야구 선수들을 국가대표로 대거 뽑을 수 있는 바탕도 마련될 수 있다. 지금의 프로야구에 비유하자면, 실업 리그에 삼성전자 이승엽 차장, LG U+ 박용택 과장이 야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직 논의 단계에 있는 만큼 각종 과제를 해결한 이후 빠른 시일 내에 실업 리그가 재개되기를 기원해 본다.

※ 주요 테마 및 질문 제공 : 네이버 라디오 팟케스트 '주간야구왜' 권순철 PD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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